모성의 탄생과 ‘어머니다움’ 의미의 재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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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경의 인문 책방…섀리 엘 서러 <어머니의 신화>와 드라마 <마더>

모성의 역사적 신화를 돌아보고 다양한 모성의 가능성을 읽는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8-03-31 18:19:14

며칠 전 종영한 드라마 ‘마더’의 여운이 너무나 강렬하다. 많은 이들의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이 드라마를 본 이들의 마음에 남겨진 여운은 상당할 것이다.

드라마의 제목은 놀랍게도 드라마에 대한 선입견을 깨부순다. ‘마더’. 마치 엄마라는 역할의 숭고함과 무한 헌신을 조명할 것 같은 드라마의 이미지는 드라마의 시작과 함께 무너지고 만다.

아이를 낳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상은 언제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이 드라마에서 모성의 그 자연성은 철저히 의문에 부쳐진다. 정말 여자는 아이를 낳는 순간 어머니로서의 본성을 갖게 되는 것일까.

셰리 엘 서러의 ‘어머니의 신화’는 ‘어머니’ 이미지의 역사성을 탐색한다. 드라마 ‘마더’는 우리의 통념과는 다른 어머니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근대 이전의 어머니에게는 지금과 같은 양육의 희생성이 강조되기 않았고(때로 영아 살해가 정당화되기도 했다), 모성이 양육자의 본성으로 신화화된 것은 무엇보다 근대 이후다. 여기서부터 ‘어머니다움’의 의미가 새롭게 반추돼야 한다.

다른 관계 맺기: 핏줄에서 동일시로

드라마의 시작은 아동 김혜나(허율 분)에게 가해지는 아동학대를 조명하면서부터였다. 김혜나의 반을 가르치기 위해 부임한 임시교사 강수진(이보영 분)은 김혜나가 경험하는 아동학대를 고통스럽게 목격한다.

이미 입양의 경험을 갖고 있고, 친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사실에 상처를 안고 있던 강수진은 집 앞에서 비닐봉투에 봉해진 채 버려진 김혜나를 안고 도주를 감행한다.

도주와 함께 서로를 엄마와 딸로 부르기 시작한 이 새로운 모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들을 연계한 것은 핏줄도 입양의 제도적 절차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아동학대라는 공동의 상처를 통해 서로에게 강렬하게 감정이입한다. 감정이입을 통해 연결된 이 관계망은 이 작품에 나오는 가족관계들 전반으로 확장되며 그 의미를 확고히 한다.

강수진의 어머니는 이혼 후 입양을 통해 딸들로 구성된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어 낸다. 혼인의 합법성도, 출산의 자연성도, 가부장 남편의 권위도 모두 부재한 이 가족 구도는 이 사회의 정상적 가족 프레임으로부터 크게 이탈한 세계라 할 수 있다.

자식들이 모두 ‘딸’인 것, 양육자가 이혼 여성인 한부모가정이라는 것, 남성 캐릭터들이 모두 (주연이 아니라) 조연의 역할을 한정된다는 점은 가족과 이 사회 내의 여성의 위치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요소들이다. 입양을 계획한 강수진의 어머니 강영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성공한 영화배우라는 점 역시 가족에 희생하며 공적 자아실현의 계기를 놓치는 모성의 신화적 이미지와 충돌한다.

모성에 반문하는 새로운 사회

이 작품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보영은 드라마 종영 후 한 인터뷰에서 출산과 양육 경험의 불합리함을 호소한다. 왜 아빠는 아이를 잠시 안기만 해도 자상한 아빠가 되는 것일까. 산후조리원에서 주변으로부터 밤중 수유를 하지 않은 자신은 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것일까.

이러한 물음은 ‘어머니’에게 부여되는 모성의 죄책감이 어떤 것인가를 되묻게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모성의 이미지는 매우 다양한 역사성을 띠며 등장했다. 근대 이전에 ‘아동’은 지금처럼 보호돼야 할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여성 양육자의 이미지 역시 지금과 달랐다.

이는 역으로 모성이라는 것이 결코 자연적이지 않다는 것,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어머니들이, 너무나 다양한 역사성을 수반하며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오늘날 ‘어머니’로서 여성에게 부여되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오늘날 모성은 모유 수유에서부터 유기농 음식을 먹이며 아이의 건강관리 책임지는 존재, 그리고 이후 아이의 진학을 위한 학습 컨설턴트로서의 의무를 요구받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 모성으로서의 존재의무는 ‘워킹맘’의 이중고를 통해 책임의 무게를 극대화한다. 워킹맘의 이중고, 아이에 대한 밀착된 감정노동의 관계는 가족 내에서 여성 개인의 존재감을 지우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러한 책임의 이중고 속에서 여성 개인의 삶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때로 나쁜 엄마일 수도, 좋은 엄마일 수도 있으며, 어머니가 아닌 자기 커리어를 갖는 개인일 수도 있다. 드라마 ‘마더’와 책 ‘어머니의 신화’가 동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 모성 신화 속에 묻힌 여성들의 현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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