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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에서 6·25 전쟁 이후 외세가 아닌 남북 당사자 간 항구적 평화를 담보하기 위한 중요한 합의사항들을 이끌어냈지만 오히려 불안요인들을 키운 것이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전쟁의 공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그 핵심에 군축이 있다. 군축의 전제조건은 당연히 휴전상태의 종언을 고하는 종전선언이다. 하지만 그 종전선언이 되레 역설적으로 몰고 올 잠재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
종전선언의 전제조건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이른바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구체적인 선 조치다. 문제는 판문점 선언 3조 4항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명시적일 뿐 세부 일정이나 절차 등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마지막 갈무리를 미국으로 넘겨야 하는 상황이 있기에 그 공이 북-미 회담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수순을 이해한다. 그 대신 우리는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라는 것에 지나친 셀프-옵션 부담을 갖지 말고 섣부른 명분에 빠져 종전선언을 서두르면 안 된다.
종전선언은 외견상 남북 간 군사적 전시상태를 풀고 평화를 시작하는 중대한 첫 걸음인 것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전으로 확전된 6·25 전쟁에서 우리 혼자의 지위만으로 온전한 종전의식을 완성할 포지션에 있지 않다. 종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미국 등 국제연합군(유엔군)과 중국(중공)이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이미 노골적으로 남북정상 판문점 회담이 끝난 직후 평화협정 단계에서 자신들의 정전협정 지분권한을 사용하겠다고 야심을 드러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종전선언에서 평화협정으로 가는 로드맵에 비핵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지만 중국은 비핵화를 후순위에 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 직전 급거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정권이 중국 뒤에 숨은 사실이 왠지 께름칙하고 걱정되는 사안이다. 북-중이 종전과 평화협정보다 비핵화를 후순위로 배수진을 칠 경우 우리는 종전선언 후 우리만 대북 군사 대응능력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하는 군축에 나서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종전선언 후 유엔군사령부 해체가 뒤따라야 한다. 유엔군사령부는 6·25 전쟁 후 북한을 겨냥한 군사대응과 제재를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을 해 놓고 유엔사를 존치시킨다면 북한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댄 채 전쟁중단을 약속하는 것이기에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어 그 연장선상에서 한·미연합사령부도 존재 당위성이 사라지면서 해체 수순을 밟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우리는 유사시 소위 유엔사 후방기지들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정전(휴전)체제가 유지됐을 때 우리는 유엔사 후방기지인 요코스카 기지, 오키나와 및 가데나 공군 기지, 후텐마 해병대 기지, 요코다 공군기지, 사세보 기지 등 7곳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가공할 무력 전략자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미 7함대의 모항인 요코스카 기지만 해도 항공모함과 이지스함 등 미국의 전략 함정 10여척이, 가데나에는 첨단 전투기·공중급유기·조기경보통제기·정찰기 등이 각각 한반도 유사시 항시 출전 상태로 대기하고 있다. 오키나와에도 대북 공격을 초기에 억제하고 진압할 전략 공군기들이 준비돼 있을 뿐만 아니라 미 해병원정군까지 배치돼 있다. 부산 코앞에 있는 사세보에는 전쟁 수행시 필수적인 각종 탄약과 무기들이 수백만톤 저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유사시 이들 기지와 무기들은 우리와 전혀 무관해진다.
물론 남북 간 평화체제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이들 기지들과 전략무기들은 당연히 필요없다. 하지만 검증 가능한 비핵화가 확인되지 않거나 나아가 재개발 방지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 유엔사 후방기지들이 무력화 된다면 우리는 섬뜩한 핵 공포에 언제든 들어가고 만다. 나아가 세계 최대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생화학무기도 온전한 폐기와 재생산 불능까지 검증되지 않으면 핵무기 보다 무서운 공포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북한이 종전선언 이후에도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중국을 배경 삼아 핵과 화학무기에서 애매한 상태로 입장을 견지할 경우 우리도 최후적으로 유엔사를 해체하지 않는 강수를 둬야 한다. 실제로 유엔사는 정전협정 유지관리 외에도 전후 한국을 돕는 포괄적 업무권한도 부여받았다고 봐야 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해석이 분분하지만 우리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체결된다고 해도 북한의 분명한 태도 여부에 따라 유엔사 해체여부를 검토해도 되는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종전선언 후 유엔사와 연장선상에 있는 한·미연합사의 해체도 수순으로 거론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한·미연합사는 한국군의 방위능력 향상과 유엔사의 역할 축소 등으로 탄생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성격 때문에 한·미연합사도 오히려 상황에 따라 해체여부를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또한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이양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온전한 주권국의 위상 확립과 자주국방의 마지막 방점에 전작권 환수가 있다는 것은 옳다. 하지만 그 전제 조건은 어떤 국가의 공격에도 맞설 수 있는 무력의 완성이 따라야 한다. 자주적인 군사 대응능력에는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 모두 포괄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들을 상대할 무력을 갖추지 못하는 이상 미국의 방위우산과 방위네트워크는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종전-평화협정은 아울러 155마일 휴전선에서 북한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는 우리 군장병들의 존재 당위성을 사라지게 하는 일임을 경계해야 한다. 목숨을 담보할 애국의 상징인 병역 의무가 사라진다면 절차적으로 평화선이 될 현재의 휴전선에서 우리 군은 전면 철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비무장지대가 평화지대가 되기만 한다면 남북의 군과 무기는 DMZ 또는 인근에서 모두 철수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나아가 남북은 모두 휴전선 배후의 군부대들까지 대거 후방으로 물려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북 핵이나 북 화학무기 선 폐기 외에도 추가적으로 반드시 전제돼야 할 핵심사안이 또 있다. 대북 무력은 군축 로드맵을 밟지만 통일 후 한반도 첨단 군사력은 지금보다 훨씬 강화돼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군개혁에 대해서는 대북용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이해를 반드시 얻는 일이 그것이다. 이는 한반도가 통일된 국가로 출범했을 때 꼭 필요한 선제적 개혁이자 자주국방력의 증강이라는 점에서 훗날 남북의 국민 모두가 이해를 같이할 사안이기도 하다. 결국 군축의 중장기 로드맵은 군축과 동시에 미래군 기반강화라는 투트랙으로 진행돼야 한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지금 경제적으로 목말라 하고 있다. 선군을 내세워 군을 신격화 하면서까지 권력을 유지시켜 왔지만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면 정권을 지켜내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문제는 선군에서 경제로 바통을 바꾸려는 그 경계선상 최후의 버팀목에는 여전히 핵과 화학무기가 손에 들려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북한의 배고픈 상황을 애써 간과한 채 선제적 평화라는 환상을 급하게 쫓으면 안 된다. 자칫 코너에 몰린 북한의 절박한 죽음의 오아시스 속에 빠질 수 있다. 북한이 돌연 입장을 바꿀 가능성을 시나리오에 넣어야 하는 것이 평화를 담보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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