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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이 주최하고 경기도, 구리시, 남양주시, 구리·남양주교육지원청,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가 주관하는 ‘2018 차세대리더 겨레 얼 찾기 꿈의 학교’는 지난달 14일 개교식을 가졌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120명의 학생들은 3개 팀으로 나뉘어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 있는 역사유적지와 기념관을 답사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달 28일은 충무공 탄신 473주년 되는 뜻 깊은 날이다. 초등 5~6학년 학생 30명이 천안 독립기념관과 아산 현충사를 답사하고 충무공묘소를 참배하는 일정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날따라 도로사정이 좋지 못한데다가 독립기념관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일정상 충무공 묘소 참배 대신 현충사에 있는 영정에 묵념하기로 했다.
버스가 도착하자 필자는 학생들에게 화장실을 들렀다가 현충사 입구로 모이라고 안내했다. 그런데 삼삼오오 모여 있던 학생들이 입구 앞에 놓인 전시대의 문구를 읽어보더니 상기된 얼굴로 “이런 건 바꿔야 돼!”하며 주먹을 불끈 쥐더니 뭔가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누가 시킨 게 아니라 그야말로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전시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산 현충사에 모셔진 충무공 영정은 지난 1953년 충무공기념사업회의 의뢰로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작품이다. 지난 1973년 현충사 성역화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국가표준영정 지정 사업이 시작되자 제1호 표준영정으로 지정됐다. 영정의 충무공 모습은 이후 100원짜리 동전, 교과서, 각종 책자, 기념사업 등에도 사용됐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정을 그린 화가가 친일논란에 휩싸인 인물이라는데 있다.
1912년생으로 이당 김은호 화백의 문하로 미술계에 입문한 장 화백은 1941년 조선총독부 주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푸른전복’으로 총독상을 수상했다. 지난 1942년과 1943년에는 창덕궁상을 받았다. 또 1943년 반도총후미술전과 1944년 결전미술전에 항전을 독려하는 작품을 출품했다. 그 외에도 각종 친일미술단체를 주도하면서 강제 징용·징병을 적극 독려한 공로로 일제로부터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하지만 일제가 패망한 이후에도 공개적인 반성이나 참회 없이 한국 화단의 중심 작가로 이름을 날리며 서울대 미대와 홍익대 미대 교수로 활동했다. 심지어 “일제 잔재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가를 일반에게 묻고 싶다”며 자신의 친일행적을 철저히 부정했다. 이러한 친일 경력을 이유로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그 이름이 올라갔다.
현재 지정된 94점의 국가표준영정 중 6점이 장 화백의 작품이다. 그 중에 1932년 상하이 홍코우공원에서 도시락폭탄을 던져 중국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등을 폭사시켜 일제에게 총살을 당한 윤봉길 의사가 포함돼 있다. 지난 2007년에 지정이 철회된 유관순 열사의 표준영정도 그의 작품이었다. 이 외 12점의 표준영정이 친일작가들의 작품으로 나타났다.
표준영정이란 그 시대에 나라에 크게 이바지했던 위인들의 초상화다. 이것을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나라를 배반했던 친일작가들의 작품으로 지정하고 정부에서 매년 막대한 저작권료를 본인 또는 유족들에게 지불하고 있다. 이것은 매국을 정부가 권장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이같이 해괴망측한 경우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같은 시기에 이순신 장군의 13대 종손인 이종욱 선생은 신흥무관학교를 나온 후 국내에서 독립군 활동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잠입해서 활동하다가 신의주에서 붙잡혀 1년여 옥고를 치렀다. 이후 백암 강습소 등에서 민족의 정기를 고취하는 활동을 벌이다 지난 1941년 사망한 것과는 너무도 대비된다 하겠다.
장우성 화백처럼 해방된 나라에서 친일파들이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하며 대활약을 하게 된 배경에는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 해체와 반공주의자로 변신한 친일파 중용이 큰 역할을 했다. 또 일본 육사 출신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군 소장 때 군사쿠데타로 집권해서는 장기독재하면서부터 친일파들의 세상이 됐다.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문경에서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던 박정희는 평소 꿈꾸던 군관이 되기 위해 만주국군에 신청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탈락되자 지난 1939년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 문구와 자신의 이름을 혈서로 쓰고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동봉해 만주국 신경군관학교에 2기로 입교하게 된다.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로서 충성을 다할(犬馬之勞) 결심입니다.”
박정희는 지난 1942년 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공으로 일본 육사 57기로 편입됐다. 지난 1944년 일본 육사까지 졸업한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해 관동군 제8사단에서 활동했다. 일왕에게 충성맹세와 함께 영혼까지 바쳤던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이기에 그는 위관장교임에도 생계형이 아닌 친일파로 분류된다. 게다가 조국 일본을 위해 혈서까지 썼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안 이상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한글현판이 걸려있는 새 현충사의 충무공 영정에 고개 숙일 수 없기에 그리로 가지 않았다. 숙종 임금이 내린 현판이 있는 옛 본존에서 비록 영정은 없었지만 참배하고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사시던 옛 집에서 장군의 민족정기와 애국심을 듬뿍 느끼고 돌아왔다.
버스 안에서 학생들은 한결같이 “일본군의 침략에 맞서 싸워 나라를 지킨 이순신 장군을 친일파가 그린 영정으로 추모ㆍ기념하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충무공 탄신일에 기성사회의 잘못된 가치관을 체험하게 된 학생들의 허탈감과 분노를 진정시킬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날 학생들은 엄마의 핸드폰을 빌려 ‘2018 차세대리더 겨레 얼 찾기 꿈의 학교’의 밴드에 관련 신문기사를 올리고 “영정을 바꿔 달라”면서 어른들을 잘못을 질책하는 댓글을 달았다.
충무공 영정 교체 여부는 향후 어린 학생들의 가치관에 큰 혼란이 올 것이다. 친일의 본체 청산은 커녕 이런 작은 친일의 잔재조차 지우지 못하는 나라가 국가 위기 시 학생들에게 어떻게 위국헌신을 바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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