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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경의 인문 책방…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가상현실은 세계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8-05-12 10:39:05

지난 봄 개봉해 큰 화제를 모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게임의 가상현실에서 어떻게 인류가 자신들의 욕망을 투사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대가의 작품이면서 블록버스터의 화려한 이미지가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작품에서 여러 과거 영화나 만화 캐릭터들이 소환되는 방식, 이미지 연출의 최첨단 기법 등에 대해서는 내가 논할 부분이 아니지만 이 영화가 우선 ‘게임’이다. 심지어 그 게임의 가상현실에서 사람들이 ‘정의’의 화두를 호소한다는 점에 일단 주목해 보자. 오늘날 게임이란 어떤 것일까. 게임의 세계에서 외치게 되는 ‘정의’란 또 무엇인가.

폐허의 현실과 가상의 욕망

‘레디 플레이어 원’의 시대적 배경은 2045년이다. 식량파동 등으로 도시 콜럼버스는 전장처럼 심하게 훼손됐다. 기계 고철 덩어리들이 주거촌의 빌딩을 구축하고, 주민들은 거대한 고철 빌딩 위를 위태롭게 살아간다.

그러나 폐허가 된 현실 위를 뒤덮고 있는 것은 게임의 새로운 가상현실 공간. 게임 개발자 제임스 도노반 할리데이는 ‘오아시스’라는 게임을 만들고 2040년에 운명한다. 폐허가 된 현실 위에서 남은 이들은 이제 현실보다 부풀려진 게임의 세계에 자신들의 욕망을 투사한다. 좁은 자기만의 방은 그래픽 효과와 함께 거대한 우주로 변하고, 가상현실은 실제의 욕망과 맞물리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그런데 게임 개발자 할리데이가 남긴 유언이 문제가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세 개의 열쇠를 숨겨두었으니 그 열쇠들을 통해 이스터 에그(부활절 계란)를 획득하라, 그러면 회사의 모든 지분과 운영권을 주겠다. 거대한 규모로 이미 현실 세계의 욕망을 흡수한 이 게임 회사의 지분은 도시 콜럼버스 주민들의 열정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주주들은 이제 회사 지분을 탈취한 책략을 세우기 시작한다.

가상과 실제의 구분이 모호해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선 할리데이가 제시한 회사 지분 확보를 위해 사람들은 게임의 공간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삶을 던지기 시작했다. 게임의 공간은 아바타와 가상화폐를 통해 구축됐고 유저들은 서로를 이 아바타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회사 지분의 현실적 이해관계는 아바타에 대한 욕망과 결합하며 강렬한 스파크를 낳았다. 아바타의 죽음은 게임유저와 현실 인물 간의 경계가 모호한 도시 콜럼버스 주민들에게 세계 자체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현실에서 돈을 욕망하듯 가상화폐는 게임유저들의 생존을 위한 버팀목이 됐다. 할리데이의 유언은 이 가상의 욕망과 현실의 생존투쟁을 결합하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

플랫폼의 세계, 정의의 어떤 모호한 욕망

여기까지만 보면 흔하디흔한 SF류 공상물에 불과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이미지의 화려한 스펙터클과 추억의 대중문화 캐릭터들을 뒤범벅 시킨 뻔한 블록버스터 영화 중 하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런 것이다. 게임이라는 이 가상의 공간은 어떻게 현실 그 자체와 겹쳐지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가상현실 속에서 추구되는 ‘정의’란 대체 무엇인가.

가상과 현실이 모호해지는 지점은 단순히 인간이 이미지를 욕망하는 존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게임이라는 인간현실의 극히 일부분이 마치 ‘전체’ 현실처럼 이해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게임 오아시스는 전쟁이나 싸움, 스포츠 경쟁 등 인간 욕망의 한 부분만이 특정돼 펼쳐지는 공간은 아니다. 아바타의 존재는 인간의 자아 그 자체이듯 그것은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를 구현하는 플랫폼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페이스북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 전화나 편지나 삐삐 등과 같은 기존 매체들과 가장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온라인이라는 가상공간을 매개한다는 사실은 진실의 한 단면만을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 페이스북은 유저들에게 현실을 연결하는 단순 매체가 아니라 실제현실과는 또 다른 독립적인 네트워크의 세계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정의는 보편적인 무엇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게임의 승리로 게임회사에서 일어날 불의를 막는다는 것은 투쟁의 승리이기는 하나 그 승리가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 인권 등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 알 수 없다. 플랫폼의 공간은 다른 세계와 분리된 자체의 독립적 세계를 구축한다. 플랫폼의 세계에 들어선 우리는 이제 보편적인 무엇을 더 이상 요구할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 이 영화를 보며 어떤 이상야릇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