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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앳킨스 홉슨은 자본주의 문제를 저축으로 봤습니다. 왜일까요. 머머리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머머리는 18세기부터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경기침체의 원인을 저축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홉슨은 ‘제국주의론’이란 책에서 이를 풀어 설명했죠.
자본주의의 문제는 충분히 소비되지 못하고 자연히 잉여생산물이 남아 경기침체가 됨을 의미합니다. 잉여생산물은 공장 가동을 어렵게 하고 결국 자본가를 압박하죠. 이 부메랑은 결국 노동자의 해고사태까지 일으키게 되는데 실직자들이 늘면서 소비가 더욱 줄어들어 침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저축이 그 문제의 원인일까요. 자본주의는 반드시 소득불평등을 낳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다는 것이죠. 가난한 자는 충분한 소비를 하지 못합니다. 1000달러를 들고 있어도 최소한의 소비만 하게 될겁니다.
100만달러의 돈을 쥐고 있는 부자, 즉 가난한 자보다 1000배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자는 육체적 한계로 인해 가난한 자보다 1000배의 소비를 할 수 없을 겁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인간은 하루에 세 끼만을 먹죠. 이처럼 결국 부자도 잉여생산물들을 저축할 수 밖엔 없을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고전적 경제학에서 설명하는 저축의 역설의 해법은 무엇일까요. 부자들이 저축이 아닌 재투자를 해 공장을 짓고 생산인력을 늘린다면 해결되지 않을까란 답을 내렸을 겁니다. 하지만 홉슨은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만약 구두공장이 있는데 지금 구두가 남아도는 상황이다. 그런데 부자들이 더 많은 공장을 짓고 생산직원을 고용해 더 많은 구두를 시장에 뿌려야 하는 겁니까. 이미 시장에는 구두로 넘쳐나는 실정인데 말입니다. 결국 부자에게 저축이 아닌 생산을 하라는 해법은 오히려 침체를 부추기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홉슨의 해법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를 수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잉여생산물을 많이 만들어냈던 서구유럽은 그래서 식민지가 필요했던 겁니다. 이는 곧 제국주의의 서막이었던 셈이죠. 그렇게 서로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고 결국 편을 먹고 싸운 게 세계대전입니다.
오늘날은 어떠할까요. 국가주도의 제국주의 시대는 갔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식민지 쟁탈전은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이 항상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무역 적자라는 거죠. 하지만 이는 애플,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등 미국의 기업들이 미국에 세금을 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게 여기는 것입니다.
1996년 국제질서는 WTO(세계무역기구)체제로 변화합니다. WTO의 목표는 무역장벽을 낮추고 협상의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원활하고 자유로운 무역을 지원하는 것이죠. 또 회원국들 간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이를 조정하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무역의 기본 원리를 따르게 했습니다.
1. 무역 체계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 즉 국가는 다른 국가에 대해 우월적 권리를 행사하거나 외국 상품이나 서비스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2. 무역 체계는 자유로워야 한다. 즉 관세이든 비관세이든 최소한의 무역장벽을 유지해야 한다.
3. 무역체계는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외국 기업이나 정부는 무역장벽이 갑작스럽게 높아지지 않으리라는 것과 시장은 그대로 열려 있을 것을 보장받아야 한다.
4. 무역 체계는 보다 경쟁적이 되어야 한다.
5. 무역 체계는 후진국들을 고려해야한다. 즉 유예기간·유연성·권리 등을 보장해줘야 한다.
결론적으로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높이지 말 것을 의미합니다. 그전까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를 대체한 개념인 셈이죠. 그럼 미국은 왜 GATT를 대체하고자 했을까요.
GATT는 강제사항이 아니고 협정입니다. 그러니 조정기구가 필요 없고 자연히 꼭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죠. 그래서 보호무역을 강하게 하는 국가를 제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미국도 반덤핑관세를 매기는 슈퍼301조를 발령하는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인거죠. 실제 미국은 WTO 이후 슈퍼301조를 남발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GATT는 상품만을 규제했는데 WTO는 서비스·지식재산권 등 그 범위가 광범위 했기 때문입니다. 상품은 한국·중국·일본 등 신흥국들에 밀리는 상황에서 서비스만큼은 미국이 앞서 있었으니 상품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자국의 우월한 산업(농업·서비스 등)에서 흑자를 노릴 수 있다는 복안이 있던 겁니다.
관세를 낮춘 신흥국을 상대로 미국 기업들이 엄청난 무역 흑자를 안겨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기업들은 다르게 바라봤던 거죠. 생산과 소비를 분리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부자나라 미국에 판매하는 전략을 남겨둔 채 인건비가 비싼 미국 대신 저렴한 다른 국가에서 생산을 해버린 거죠. 관세장벽을 칠 수 없던 미국은 이를 수입하게 됩니다.
미국의 바람과 달리 무역적자가 커진 것은 이 같은 기업들의 선택 때문이었습니다. GM, 포드 등 자동차기업들은 서둘러 멕시코로 공장을 옮겨갔고 덕분에 미국 자동차산업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는 망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제조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은 법인세가 가장 낮은 나라에 이익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세금을 냈습니다. 이른바 ‘세금 바꿔치기’란 방법을 쓴 것이죠. 현행 미국 세법에 따르면 미국기업이 해외기업과 합병한 후 본사를 해외로 옮기면 35%에 이르는 미국 법인세를 면제받게 됩니다. 대신 이 기업은 상대국 세율을 적용받는 것이죠.
이 때 미국 기업들은 법인세가 낮은 아일랜드 등으로 본사를 이전하게 됩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관련 세법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2027년까지 미국 법인세수가 120억달러(약 13조원) 감소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제약업체 화이자는 최근 아일랜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엘러간과 3300억달러(약 376조원) 규모의 초대형 합병을 발표합니다. 벌써부터 역외탈세 논란이 커지는 추세죠. 인프라스트럭처와 법적체계가 잘 갖춰진 미국에서 필요한 혜택을 다 받으며 장사하며 정작 세금은 해외에 내는 꼼수를 부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한 것입니다.
하지만 기업입장에선 미국 법인세 35%는 너무 높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죠. 그저 아일랜드의 페이퍼컴퍼니급 업체와 합병한 뒤 그곳으로 본사를 옮겨 12.5%의 법인세를 납부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결국 WTO 후 미국은 자기가 놓은 덫에 자신이 걸려든 셈입니다. 일자리는 줄었고 세수는 더 줄어들었으니까요.
이를 감각적으로 알아낸 이가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일자를 빼앗긴 백인노동자들에 무역장벽을 치고 공장을 되돌려주겠다 한 것이죠. 세금 바꿔치기 한 기업들을 EU와 공동으로 압박했으며 법인세를 35%에서 21%로 대폭 낮춥니다. 사실 법인세 인하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법인세는 WTO 아래서 힘들어지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WTO체제 하에서 승자는 누구일까요. 미국? EU? 아닙니다. 더 이상 국가가 부를 주도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주인공은 글로벌기업이며 이들은 벌써부터 식민지건설(시장창출)에 박차를 가하는 중입니다. 기업제국주의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법인세를 깎고 그런 나라들로 본사를 옮겨 다닐 겁니다.
미국이 왜 법인세를 깎았겠습니까. 다시 미국에서 법인세를 내라는 이유 아니었을까요. 각국이 세금인하경쟁에 불을 지핀 만큼 기업제국주의는 부흥할 겁니다. 알아서 세금 줄여주고 이익은 늘어나겠죠. 기업인의 생리를 잘 아는 ‘천재’ 트럼프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해체하고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거부한 것입니다.
결국 미국도 감세를 택한 만큼 승자는 기업인 셈입니다. 19세기 국가주도 제국주의와 21세기 기업주도 제국주의는 경영영토를 늘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살아남는다면 대영제국보다 더 넓은 경제영토를 갖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입니다. 글로벌 기업이 몇 있지도 않습니다.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들이 선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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