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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경영의 신’으로 일본 경제계에 아직도 살아있는 전설적인 인물이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다. 가내 수공업에서 시작해 일본 최고 가전업체를 일궈낸 기업가로 일본식 경영의 창시자라고도 불린다.
특히 1979년 일본의 차세대 리더 육성을 위해 그가 세운 ‘마쓰시타 정경숙(松下 政經塾)’은 오늘날에도 그 명맥을 탄탄하게 유지해 오고 있다. 제2의 메이지유신을 꿈꾸면서 당시 일본이 직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일본 정치·경제 분야 차세대 리더를 육성하고자 설립됐다. 사재(私財) 70억 엔을 포함해 120억 엔의 자금이 투입됐다. 암울한 시기에도 미래를 위해 투자하겠다는 기업가의 신념이자 희생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정신과 철학은 무수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일본이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데 일조했다. 여전히 일본 국민들에게는 그의 신념이 회자되고 있다. 시련이 닥치더라도 용기를 갖고 도전하면 반드시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일본 정치가 표류하고 무능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같이 솔선수범하면서 덕행과 미담을 실천하고 있는 일본 재계의 리더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결코 군림하지 않고 근검절약을 실천하는 정신이 몸에 밴 듯하다. 이는 일본 사회에 면면히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20년 이상 지속된 경제 파탄을 극복하고 부활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공산당 일당 체제의 중국에서도 경제가 활력이 넘치는 이유는 일본과 매우 유사하다. 창업 1세대들이지만 기업가정신으로 똘똘 무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매우 실용적이고 미래를 보는 식견이 탁월하며 의사결정이 빠르다. 나름대로 사회에 대한 공헌도도 높다.
창업 열기가 뜨겁고 기업가가 되겠다는 젊은이가 넘쳐나면서 중국 경제를 떠받치는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기업가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전통적으로 전수돼 오는 ‘상도(商道: 상인의 길)’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상생(相生)과 신뢰라는 덕목을 놓치지 않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두 개의 재벌이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L그룹 회장이 갑자기 타계하면서 그가 평소 보여준 흔적들이 훈훈한 미담으로 오르내린다. 항상 정도(正道)를 걸으며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양지덕을 습관적으로 보여준 인물로 평가된다.
대다수 재벌 기업 오너들이 잦은 비행·비리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그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다. 기술 경영을 근간으로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특화해 글로벌 강자로 그룹을 우뚝 서게 한 것도 그의 이런 리더십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반면 H그룹은 연일 숱한 비리와 편법이 양파껍질 벗기듯이 터져 나온다. 갑질 경영의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일본 경제 부활과 중국 경제의 추격으로 한국 경제가 다시 신(新) 샌드위치, 즉 ‘뉴 넛 크래커(New Nut Cracker)’신세로 전락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들린다. 상품의 품질이나 가격에서 기인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기업가정신의 실종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지 냉정하게 지적하고 싶다.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결국 실패자로 전락할 뿐이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의 전(前) 노조위원장이 중국 충칭(中京)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하고 난 후 밝힌 소회는 가히 충격적이다.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우리 1/10에 불과하지만 생산성은 9배나 더 높다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가면 향후 4∼5년 내 한국 자동차산업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놓고 국회에서의 논의가 공전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노사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타협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쟁점은 최저임금에 정기 상여금 포함 여부다. 노조위원장 출신의 3선 의원인 여당 원내대표마저도 민주노총의 양보 없는 이기적인 협상 태도에 대해 비난을 하고 나섰다.
양측의 팽팽한 대결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노동 현장에 직접 몸을 담아본 인사들로부터 우리 노동운동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편협한 것인지를 종종 듣게 되는 점이다. 해외 현장에 가보면 우리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지 실감하게 된다. 이런 막무가내 식이 지속된다면 가까운 장래에 모두 쪽박을 차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확산된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현장에서 잘 돌아가지 않는 굉음이 들린다. 이럴 때일수록 마른 수건이라도 쥐어짜면서 고통을 분담하는 상생의 지혜가 필요하다. 기업가는 다시 진정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노조의 리더들도 근시안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의 양보를 감수해야 한다.
스탠퍼드 대학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신뢰 자본’ 축적 정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프랑스·이탈리아·중국 등과 같이 저(低)신뢰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고 있는 국가들 대부분은 신뢰 자본이 풍부한 국가들이다.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이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 경제 혹은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다.
여기서 떨어지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우리 미래는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기업가와 노동자 간 신뢰 회복이 불가능하기만 한 것일까. 기업가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기업가, 노동 현장의 문제점을 고백하는 노조위원장이 더 많이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신뢰를 바탕으로 모두 죽는 길이 아닌 사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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