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대표의 ‘남 몰래 흐르는 눈물’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스카이데일리 칼럼

김진강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5-25 13:41:23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고 한다.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를 잃었을 때다. ‘눈물은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편견 때문일까. 남자는 눈물에 극히 인색하다.

여자는 남자보다 5배 많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여자가 훨씬 감성적인 탓이다.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고 한다. 반복된 사회적 학습의 결과다. 눈물에는 다 이유가 있다. ‘여자의 눈물은 무기’, ‘사나이 눈물’ 등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 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은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 ‘아디나’가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주인공 네모리노가 부른 사랑의 아리아다.

여러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네모리노를 보게 된 아디나는 ‘사랑을 잃을지 모른다’는 슬픔에 눈물을 흘린다. 이를 본 네모리노는 자신을 향한 아디나의 마음을 알게 됐고,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반면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은 바람기 많은 만토바 공작이 여자를 유혹할 때 부르는 아리아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거나 웃음으로 남자를 속인다’는 내용인데, 만토바 공작은 여자의 눈물을 거짓과 위선의 행동으로 보고 있다.

눈물은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면서,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눈물은 시점과 상황에 따라 아디나의 눈물처럼 위대한 힘을 발하기도 하고, 만토바 공작이 바라 본 눈물처럼 얄팍한 위선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인디언의 격언처럼 ‘마음의 아픔을 씻어내는 치유의 약(藥)’이 되기도 하고, 사람을 잡아먹은 후 눈물을 흘리는 악어처럼 거짓된 독(毒)이 되기도 한다.

1990년대 가수 윤선애 씨는 “눈물은 미래를 바라보는 망원경, 진실을 피우는 꽃”이라고 노래했다. 아이가 태어날 때 우는 것처럼 사람은 언제나 ‘눈물’을 통해 자신의 삶과 역사를 시작한다. 반면, 악어의 눈물로 출발한 역사는 언제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요즘 우리는 방송매체를 통해 정치인이나 선거 출마자들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유권자가 그들의 눈물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엄청난 파괴력으로 변화된다. 하지만 그들의 눈물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거짓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만 가질 뿐이다.

얼마 전 눈에 띄는 뉴스가 있었다. 지난 18일 거행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벌어진 ‘눈물바다’ 이야기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기념사를 읽던 이낙연 국무총리는 도중 울컥한 마음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5.18 당시 행방불명된 아들을 38년간 찾아다닌 아버지’ 를 주제로 한 공연에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추미애 민주당 대표,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은 모두 눈물 바다를 이뤘고, 어떤 이는 오열하기도 했다. 비극적인 과거를 겪은 슬픔과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자는 다짐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눈물바다 한복판에 눈을 의심케 하는 사람이 있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다. 기사 내용을 보면, 김 원내대표는 기념식 내내 북받친 감정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종종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임을 향한 행진곡’ 제창 때는 이전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달리 추미애 대표와 손을 흔들며 끝까지 따라 부르기도 했다.

작년 9월 특수학교 설립을 놓고 한 장애인 엄마의 눈물어린 호소를 외면하던 김성태의 모습과 5.18 기념식에서 눈물을 보인 김성태의 모습이 선뜻 매칭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5.18을 외면해 온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라는 이미지와 충돌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가 거센 폭우가 빗발치는 5.18 기념식에서 흘린 눈물은 ‘진실로 가득찬 눈물’이라 믿고 싶다. 그는 지금 국회의원 113명을 대표하는 거대 야당의 원내대표다. 반목과 보복으로 점철돼 온 우리나라 정치현실에서 그의 하는 말, 가는 곳, 정치행위들은 우리 사회의 약(藥)이 되기도 하고 독(毒)이 되기도 한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하다.

남 몰래 눈물 흘린 아디나와 멋진 아리아로 화답한 네모리노가 사랑의 결실을 맺은 것처럼, 김 원내대표가 흘린 진실된 눈물이 반목과 갈등의 정치에서 벗어나 대화와 협력의 정치로 출발하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한다. 눈물이 없는 시작은 허구며 위선이다. 언제나 시작은 눈물에서 비롯된다.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김진강 산업경제부장·부국장 kjk5608@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