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혐오로 번진 이방인 향한 공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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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경의 인문 책방…얀 베르너 뮐러의 <독일 신우익의 이면에서>

예멘 난민 공포가 말하는 것…왜곡된 공포 그리고 분노의 새 시대정신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8-06-30 13:23:22

예멘 난민들의 입국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국내에서는 이제 시작이지만, 유럽 등지에서는 이미 몇 년간 난민 문제가 정치체제를 뒤흔들 거대 이슈가 됐다. 한국에서도 이제 본격적 동요가 시작된 것일까.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는 이미 난민 입국을 막아달라는 청원이 20만 명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가장 먼저 환기되는 것은 난민들의 성범죄라는 이슈다. 549명의 예멘 난민들 중 91퍼센트 정도가 남성으로 알려져 있고, 이들은 어느 순간 한국 국민들의 성범죄 공포 대상이 됐다.

피난을 떠난 난민들은 외지에서 자리를 잡으면 내전 중인 조국의 가족들을 데려오고자 한다. 생존을 위해 바다를 건너온 이들이 생존의 법칙을 무시한 채 쉽사리 범죄를 저지를지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 조국의 가족들 역시 내전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논란이 거세어지자 여기저기에서 ‘팩트체크’가 진행됐다. 대체로 난민을 포함해 이민자들의 범죄율은 내국인들의 범죄율을 훨씬 밑돈다는 것이 대체적인 사실관계들이다. 강력범죄율의 경우, 일반적으로 가해자는 청년기 남성들이 압도적인 비율을 구성한다. 난민의 경우에도 청년기 남성들이 높기에 연령대와 성별을 고려하면 난민의 강력범죄율 역시 내국인들에 비해 높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왜곡된 이슬람 공포와 사회문제

사실상 예멘 난민들에 대한 공포는 이미지적으로 과장됐거나 가짜뉴스들이 혼란만을 초래하며 과도하게 증폭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의 분위기가 이미 유럽사회를 한번 휩쓸고 지나간 바 있다. 특히 독일은 메르켈 총리의 주도하에 난민들을 적극 수용하면서 큰 혼란을 맞았다.

관련해서 얀-베르너 뮐러의 글에 주목해 보자. 뮐러는 독일 난민 문제에서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개입하는 방식을 묘사한다. 2015년 이후 독일 난민 수용의 맥락에서 가장 크게 회자되는 지식인들의 정서는 어떤 것일까. 그는 대표적인 지식인들로 보토 슈트라우스, 마르크 용엔 등에 집중한다.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새로운 배척의 정서가 만연하는 맥락에는 독일사회 내의 거대한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독일을 피해갔지만, 2013년을 전후로 하며 독일 경제는 급속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때 나온 지식인들의 담론은 세기말의 정서를 수반하며 다음과 같은 용어들을 불러왔다. ‘쇠락’, ‘비상사태’, ‘(이민자들의)침략’, ‘분노’.

스트라우스는 ‘최후의 독일인’에 대해 말했고, 이는 독일의 몰락과 절망적인 긴급상황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마르크 용엔은 21세기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에로스와 긍정이 아니라, 티모스(thymos), 즉 ‘분노’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언급한다. 요컨대, 핵심은 이러한 것이다.

이 새로운 시대는 우리 모두가 혼란으로 빠져드는 새로운 전쟁의 시대다. 전쟁의 시대에 공생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으며, 사실상은 상대를 침략하고 짓밟은 새로운 적자생존의 장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이때 난민들은 독일 민족의 광휘를 짓밟고 우리를 몰락의 시간으로 끌고 간다. 지금이야말로 독일 민족에게 비상사태이며, 이 싸움을 이겨내기 위해 독일인들은 타자(난민)에 대한 포용이 아니라 적대적 분노로 맞서야 한다. 지금은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는 최후의 격전장이다.

이러한 레토릭들은 실제 독일사회의 절박함과 맞물리며 거대한 정치적 효과를 발간했고, 난민 수용정책을 펼친 메르켈의 정치적 지위를 흔들었다. 특히 가난한 동독에서 난민 공포의 이슈가 압도적으로 큰 효력을 발휘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난민 공포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불안과 혼란의 기운이 와전되며 거대한 분노의 줄기로 증폭됐다.

독일에서 파생된 난민 공포는 유럽사회를 흔들었고, 20세기 초의 혼란을 연상케 하는 새로운 외국인 배척의 시대감성을 불러오고 있다. 이러한 대중의 열망과 공포라는 이미지로 전파되지만 정작 국가의 제도들은 이 공포를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독일 지식인들의 담론이 세기말의 분위기를 수반하는 것은 단연 이 때문일 것이다.

혹시 한국에서도 유사하게 해법을 찾지 못하는 혼란만이 재연되는 것은 아닐까. 지난 2년여를 돌아보자. 기존 정부가 대통령의 탄핵으로 물러났지만, 촛불로 점화된 새로운 시대는 청년 고용의 불안과 고령화 노인빈곤의 화두를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화라는 화두는 공정성 논란을 낳으며 청년 내부의 ‘약자 간 투쟁’으로 구도로 와전돼 폭발했다.

불만은 누적됐으나 어디에서도 불만 해결의 출구는 발견되지 못한다. 한국도 독일처럼 아무 잘못 없는 난민들이 이 불만의 포격을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아직 난민이 500여 명에 불과한 것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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