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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 필진 김수영(서양화가, 수필가, 소설가) 선생님이 7월 한달 간 휴가입니다. 김수영 선생님의 수필작품 중 엄선해 보내주신 작품을 대신하오니 독자여러분의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디.... 우리 똥 강아지 잠지 좀 맛보자!" "어.... 싫어! 할미는...."
어릴 적, 충청도 산골 촌에서 우리 할머니는 나에게 사타구니가 갈라진 바지를 입혀 놓고 틈만 나면 나의 고추를 손으로 슬쩍 훑으시며 그 것은 당신의 입에 대고는, "아따! 달다! 우리 손주 꼬추가 최고다!" 하시면서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즐거워 하셨다.
그렇다! 우리 할머니는 김해김씨 판서공파 57대 장손이자 4대독자인 나의 고추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기시며 당신의 고달픈 인생 역정을 잊고는 하셨다.
내 위로 누나가 다섯인데 그 딸들이 태어날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 대에 손이 끊어질까 안타까움에 대문에 금줄을 매 다시면서 당신 타는 가슴 색깔과 같은 검은 숯덩이 몇 개와 가시 같은 푸른 솔가지만을 새끼에 꿰매 다시면서 그 실한 붉은 고추 하나 금줄에 매다는 것이 일생일대의 소원이라며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쉬셨다고 한다.
그러다 내가 태어나자 얼마나 신이 나셨던지 아버지는 금줄에 당당하게 붉고 실한 고추를 매달아 놓으셨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 풍물놀이를 해가며, 중모리 중중모리 휘모리로 고이적삼을 흩날리며 막걸리에 젓가락 장단으로 밤낮 사흘을 노셨다고 한다.
그 해 여름, 아버지는 내 백일잔치가 끝나고 논에 농약 치시다가 그만 농약 중독으로 돌아가시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이태, 엄마는 내 추석빔을 준비하러 읍내 장에 갔다 오시다 장마로 불어 난 개울을 건너다 어리디 어린 나를 두고 그만 이승을 하직하시고 말았다.
논에 물이 말라 땅이 타 들어가는 염천 가뭄에 할미는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나를 업고 젖동냥을 하러 다니다 더위를 먹어 설사하는 나를 눕혀 놓고 삼신할머니께 눈물로 빌고 또 빌었으며 끝내 젓 동냥은 포기하고 가마솥에 귀한 쌀을 눌려 주걱으로 긁어 암죽을 만들어 먹이고 이 빠진 당신 틀니로 아기 입에 맞지 않아 먹여주는 것을 자꾸 내 뱉는 나에게 첩첩 산골, 거칠고 딱딱한 좁쌀 수수가루를 씹어 내 입에 넣어 눈물로 삼키라고 신령님께 또다시 기도하며 나를 키워 주셨다.
할머니께서는 그 모진 가뭄에 딸들에게 안 맡기고 당신이 직접 어린 나를 업고 밭에 물을 퍼 주고 모를 심으셨으며 조밭 수수밭을 매며 도지 땅 작은 소출을 목매 기다리셨단다.
내가 서울에 와서 중학교에 다니며 혼자 자취를 할 때, 할미는 시골에서 올라오실 때마다, 콩장, 깻잎, 무말랭이 같은 반찬을 해 가지고 시외버스를 타고 골목골목 달동네 산꼭대기까지 머리에 이고, 지고 땀범벅을 하시며 오시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 보따리 속에는 그 마른반찬과 함께 언제나 작은 요강이 함께 들어 있었는데 그 연유가 부끄러운 것이었다.
언젠가 내 자취방을 찾으시다가 서울 어느 길에서 화장실을 갔는데 100원을 받는 것을 보고 놀라 그 때부터 서울에 올라오실 때면 언제나 그 작은 스테인레스 요강을 가지고 다니시곤 했다.
시골에 있을 때도 할머니는 절대 다른 곳에다 소변을 보는 일이 없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요강에다 일을 보시고 그 훌륭한 비료를 상추밭 고추밭에 뿌리시며 유기농 거름을 주셨었다. 한번은 읍내 장에 다녀오시면서 오전 내내 그것을 참으시다가 집에 와서야 소변을 보시고 그 아까운 비료를 왜 남의 화장실에 주고 오느냐며 나에게도 밖에 가서 소변보지 말고 가능하면 참았다가 집에 와서 누라던 철저한 유기농 비료 예찬자셨다.
할머니는 동네잔치 집에 가셨다가 당신 앞에 놓여 있는 잔치 상의 맛있는 떡과 부침개를 당신 입에는 넣지도 않으시고 언제나 몇 번을 꿰매어 조각보 같은 낡은 치마 속 고쟁이주머니에 담아 오셔서는 어린 내 입에 넣어주곤 하셨다. 잔치 집에서 드신 걸죽한 막걸리 기운에 얼굴이 발그스레한 속에,
"그려! 어린 손주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하고 가뭄에 내 논에 물들어 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보기 좋은 겨!" 하시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셨는데 그 때마다 우리 할머니의 50년 단골 노래제목은 언제나 '희망가'였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 까? 청천하늘에 밝은 저 달을 곰곰이 바라보니 인생 일장이 춘몽인데 덧없이 가는구나!"
할머니는 이 노래를 부르실 때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하셨고 내가 할머니에게, "할머니 왜 울어?" 하면, "할미는 우리 손주가 귀여워서 볼 때마다 감격해서 그려! 아! 생각 해 봐! 김해 김씨 판서공파 57대 장손인데 얼마나 대견하냐? 안 그려?" 하며, 눈물을 닦아내시고 이번에는 더 많은 주름으로 웃음을 만드셨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와 함께 잠을 자다 보면 언제나 들려오는 그 요강소리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 중의 하나였다.
딸들은 작은 방으로 몰아 놓고, 언제나 할머니와 잠을 자면서 들려오는 그 요강 소리는 내 어릴 적, 영원한 자장가였지만 중학생이 되어 서울생활을 하면서도 할머니가 오시면 그 자장가가 들려오는 밤이 계속되었다.
내가 커서 대학에 들어가고 이런저런 일로 데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는 내 옷을 눈물로 보시며 나에게, "제발 빌자 우리 손주 영아! 너는 다른 애들과 달라! 김해 김씨 판서공파 57대 장손이여! 대를 잇게 씨나 받아 놓고 나중에 그런 일을 해라! 이 할미가 나중에 저승 가서 네 아비한테 온갖 몹쓸 원망 다 듣는다! 우리 영이 알았지?" 하며, 말리셨다.
하지만, 이 시대의 구원자요! 내가 이 세상을 변하게 하지 않으면 그 누가 하랴? 하는 착각과 끓는 의지는 끝이 없었고 어느 날 닭장차를 타고 어디론가 연행되고 말았다.
팔순 할머니는 시골에서 나의 소식을 듣고 놀라 서울까지 오셔서 관할경찰서로 달려가서는 형사에게 나의 무죄를 확신한다며 제발 내 손주를 집으로 보내주라며 일주일을 쉬지 않고 졸라 대셨다.
하지만, 담당 경찰관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며 집으로 가시라고 말하셨지만, "손주를 내 놓지 않으면 나도 못 간다!" 하며 악을 쓰셨고 경찰서에서는 시끄럽다며 할머니를 잡아 끌어냈다고 한다.
35도가 오르내리는 끓는 듯, 한 더위에 할머니는 아침 점심도 굶으시며 골이 깊은 주름에 땀이 흠뻑 밴 적삼으로 경찰서 정문 앞에서 아스팔트 바닥에 버티고 앉아 손주 내 놓으시라며 계시다가 해거름이 되어 슬그머니 보따리에서 꺼내시는 게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스텐레스 요강이었다고 한다.
80년 초, 할머니께서 암을 선고받고 마지막 떠나시기 며칠 전이었다. 중환자실 그 음습한 침묵 속에 내 손을 살그머니 잡으시더니 머리에 꼽혔던 당신의 은비녀를 주면서,
"영아! 이 비녀는 이 할미의 마지막 재산이다. 네가 검어 쥐고 있다가 할미보고 싶거든 꺼내 보도록 하고, 이 얘기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나는 네 친 할미가 아녀! 조선 천지 한량이셨던 네 할아버지가 바람을 피우셨어! 그러다 나를 만난 거여! 그러니께 나는 후처란 말이여! 알아듣겠니? 네 본 할미는 나 때문에 속이 상해 속병으로 그만 돌아가시고 나를 보기 싫다며 네 아버지가 내 치마 적삼을 찢고 버선을 가위로 잘라내며 나가라고 해도 이 할미는 질기게 버티고 너희 집에 눌러 앉은 거다! 우리 손주, 내가 친 할미 아니라고 나 죽으면 거적에 덮어 길에 버리지 않을 거지? 공동묘지라도 좋으니 장례는 치러 줄 거지?"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할머니! 할머니가 어떤 이유로 우리 집에 오셨던지 우리 할머니는 하늘아래 둘도 없는 우리 할머니예요! 할머니!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양지 바른 곳에 잘 모실게요!" 하는 말로 할머니와 나의 대화는 마지막이었다.
지난 설 때 나는 사업이 잘되지 않아 속이 상해서 실로 몇 십 년 만에 시골에 계신 할머니 산소를 찾았다.
눈이 쌓여 비탈에 수없이 미끌어지며 묘지를 찾는데 한참이 걸렸고 세상에 남은 흔적이라곤 작은 봉분하나로 그치신 우리 할머니에게 막걸리 한잔을 부어 드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큰절을 했다. 할머니에게 그토록 좋아하시던 노래 '희망가'를 불러 드리니 쌓인 눈 위로 뜨거운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까마귀가 까악 거리는 싸늘한 눈바람 속에 어디선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손주 영아! 세상이 어둡고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서 열심히 살아라! 너는 우리 김해김씨 판서공파 57대 장손이야! 부디 자손만대 기운 나게 번성 하거라!" 하는 소리와 함께 살을 에는 솔바람이 하얀 눈 위를 스쳐 지나갔다.
"할머니! 보고 싶어요! 하늘에서 잘 계시죠? 예?"
나의 커다란 대답은 눈 덮인 산 속에서 까마귀 소리와 함께 구슬픈 메아리가 되어 돌아 왔다.
“할머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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