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복제되는 시대, 혼란에 빠진 예술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고태경의 인문 책방…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기술문명 만난 예술작품, 아우라 넘어 ‘기술적 복제’ 충격으로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8-07-16 01:45:44

한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유명인의 작품들을 보며 ‘아름답다’다고 말하곤 한다.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특성 중 하나로 ‘아우라’라는 것을 언급한다. 아우라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는, 간접적으로 반향되는 어떤 분위기 같은 것일 터다.

예술작품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단어로 충분히 표현되기 힘든 어떤 감흥이나 분위기를 선사한다. 벤야민의 말에 따르면, 그 분위기는 가깝고도 먼 듯한 것, 혹은 제의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눈앞의 대상이지만 직접 가닿을 수 없는 어떤 신비한 느낌. 이것이 예술작품이 수반하는 아우라다.

현대의 기술문명이 준 충격효과

그러나 그런 아우라는 현대 이전 시대에 주로 통용되던 것들이다. 벤야민은 현대의 기술문명이 이 아우라라는 것에 종말을 고했다고 평가한다. 요컨대, 회화라는 예술장르에 주목해 보자. 회화의 핵심 분류 중 하나는 초상화다.

특히 이 초상화라는 것은 죽은 자를 기념하는 역할을 하곤 했다는 점에서, 가깝고도 먼 것, 즉 죽어서 이제 신비한 이미지로만 소생하는 존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림은 그 자체로 창작의 한 장르다. 따라서 죽은 자의 초상화는 죽은 자에 대한 제의적 추상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나폴레옹에 대해 19세기 프랑스인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려 할까. 나폴레옹의 제왕적 이미지를 되살리고 싶어하는 이들이 한편에 있고, 나폴레옹의 이미지를 버리고 민주정의 체제를 새롭게 정초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 둘의 목적이 다른 만큼 그림의 표현방법도 달랐다. 그림이라는 창작행위는 특정 이미지의 과잉을 낳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그림 창작자의 창작의도에 불가피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사진의 등장이다. 나폴레옹의 눈과 코를 크게 그리면서 그의 업적을 찬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눈과 코가 작은 나폴레옹의 사진 이미지는 나폴레옹의 아우라를 죽이는 행위로 인식될 것이다. 사진은 대상의 신비함을 죽이며, 즉 제의적 효과를 죽이며 등장했다. 어떠한 이미지적 임팩트도 없이 그냥 날것 그대로의 대상이 우리 눈앞에 주어진다면 어떨까. 사진은 그런 것을 가능케 했다.

기술적 복제라는 새로운 현상

여기서부터 예술작품의 의미가 대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는 사진을 동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됐고,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다양한 가상현실을 실제현실처럼 직조해낼 수 있게 됐다.

벤야민이 살았던 20세기 초는 어떤 시대였을까. 먼저 영화의 등장이 상당한 파격으로 다가왔던 때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림이라는 정적인 이미지 창조 작업에서, 사진이라는 날것의 이미지 복제 작업으로 이행한 것은 19세기였다.

그런데 이제 그 이미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영화관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화면에서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자동차들끼리 충돌하며 폭발한다면. 이 모든 현상들은 실제로 20세기 초 유럽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때는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초현실주의와 모더니즘의 예술적 실험이 충만할 때였다.

증기가관이 18세기에 등장했다면, 19세기는 사진을, 20세기는 영화와 컴퓨터 그래픽을 등장시켰다. 모든 것은 복제가능해졌고, 사람들은 이제 예술작품의 신비한 이미지가 아니라 복제된 이미지들의 스펙터클 속으로 끌려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야기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가능했던 이유로, 작품의 유일무이성, 즉 유니크함을 꼽았다. 고흐의 그림은 복제불가능했고, 그냥 고흐의 손에서 나온 그 하나의 작품밖에 없었고, 이것이 그 작품의 유니크함을 보증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 시대는 모든 이미지들이 복제되고 이제는 현실조차도 그래픽의 세계 속에서 복제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면 유일무이함이 사라진 이 시대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벤야민은 막연하게 충격효과라고 보았고, 사방팔방에서 예상치 못한 이미지의 폭증 속에서 인간의 보수적 감각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삶의 반경이 창출될 거라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2018년이 된 우리는 생각이 좀 다르다. 이미지의 폭증은 너무 과잉돼 우리의 사생활과 인권이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다. 몰카는 인권을 파괴하고, 이미지는 소통과 의미창출의 매개체이기보다 자극적인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한 듯하다. 아우라는 사라졌는데,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온 것일까.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