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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경의 인문 책방…미셸 바렛의 <가족은 반사회적인가>

노동을 통해 ‘마이 홈, 마이 카’ 시대…시대의 부흥에 따른 가족의 모델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8-07-22 21:23:15

‘가족임금’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한 명의 생계부양자가 전체 가족을 부양하는 데 적합한 임금은 어느 정도일까. 임금은 노동자가 자기 삶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다. 그리고 ‘가족’은 그 노동자의 생활이 보존되는 공간으로 인식돼 왔다.

20세기를 경유하며 남성노동자들의 지위가 향상되고, 남성의 임금을 기초로 한 새로운 생계부양자 모델이 확립되었다. 노동자들의 지위향상은 임금의 향상을 낳았고, 특히 남성노동자들의 대대적인 임금상승과 지위향상이 수반되었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중반을 전후로, 한국에서는 1980년대를 전후로.

노동자들의 임금향상은 노동조합이 시민권을 획득하고, 대기업 중화학산업들이 번성하는 과정과 맥을 같이했다. 한국을 돌아보자. 1987년의 대격변 이후 수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건설됐다. 임금향상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이로 인해 크게 두 가지의 의미심장한 결과가 동반됐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과 스위트홈

하나는 이른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의 탄생이라는 것이었다. 시골에서 밭일을 할 때, 생산자와 양육자가 완전히 분리되는 일은 없었다. 여성들도 밭일을 함께해야 했고, 아이들은 친족공동체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화와 함께 수반된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의 등장은 이런 것이었다. 아버지이자 남편이 되는 이가 임금으로 가족에게 필요한 소득을 벌어온다. 그리고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는 이는 이제 ‘(핵)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양육의 모든 책임을 부여받게 된다.

다른 하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기존으로 공과 사의 구분이 엄격하게 나뉘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공과 사의 경계는 남편의 공간(직장이라는 공적 공간)과 아내의 공간(가족이라는 사적 공간)으로 성별화된다.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가 수반되며 노동자들의 사회적 시민권이 확보됐지만, 그것은 대체로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한 남성노동자에게 부여된 권리였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를 넘어가며 등장한 새로운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스위트홈’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냉장고 TV광고 중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카피가 있었는데, 함축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남편은 ‘바깥’에서 돈을 벌고 온다. 나는 가족의 이 스위트한 공간을 아이들과 함께 지키며 고된 노동을 하고 돌아온 남편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공간에는 남편의 임금으로 사들인 좋은 가전제품과 안정된 집이 존재한다.

민주화와 함께 나타난 남성들의 임금향상은 이제 가족들에게 ‘중산층’이라는 이미지를 마음 깊숙한 곳에 각인케 했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중반에 노동자들의 ‘마이 홈, 마이 카’(My home, My car) 시대가 열렸다. 노동을 해 집을 사고, 차를 구매해 교외 신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시대. 한국에서도 1990년대는 그러한 ‘중산층화’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던 시점이다.

스위트한, 그러나 사회적으로 억압적인

그렇다면 중산층의 가족공간이란 대체 어떤 곳이었을까. 스위트홈이라는 표현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함축한다. 가족의 바깥 공간, 즉 사회는 전쟁터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작용하고, 고된 노동이 자리매김한 그곳은 약육강식의 논리를 버텨낼 남성들의 전투공간으로 이해된다.

그 반대의 이미지가 놓은 곳은 가족이다. 스위트홈은 아내의 돌봄노동이 기능해야 하는 공간으로, 그 돌봄의 목적은 바깥의 전쟁을 위로할 달콤함을 창출해 내는 곳이다. 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 같은 아내가 있는 곳. 남편의 사회생활을 ‘내조(內助)’하는 곳. 임금향상을 통해 남성이 생계부양자로 호출되면서 생계부양과 양육의 영역은 또 한번 성별화됐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가족임금의 체제가 오래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1987년의 거대한 저항 이후 한국에서는 1997년 IMF 위기가 모든 정황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이 책의 저자들이 준거하는 영미권 역시 1980년을 전후로 노동자들의 지위는 급격한 위축을 경험한다.

자연스레 실질임금은 하락하고, 남성들의 생계부양 능력에 한계가 왔다. 구조조정이 일반화됐고, 노동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됐다. 이로 인해 ‘맞벌이’라는 이름의 가족생계부양 모델이 새롭게 점화됐는데, 이제 노동시장으로 다시 진출한 이 ‘경력단절녀’들의 상황은 어땠을까. OECD 국가 중 최악의 성별 임금격차를 보이는 나라.

그렇다면 그동안의 가족임금은 정말 가족 전체를 위한 임금이었을까. 미셸 바렛이라면 그렇지 않다고 답했을 것이다. 오히려 사생활의 은밀함을 간직한 친밀함의 감옥으로 규정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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