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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20년 치러질 21대 총선은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혁파할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국회의 자발적 혁신 노력이 관건이다. 핵심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다.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정당별 비례성을 강화해 국민의 소중한 표심들이 단 한표라도 사표가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 선거제도 개편 논의의 핵심이다.
현행 소선거구 지역 선거제도는 국민들이 특정 국회의원 얼굴과 이름을 체감적으로 느끼며 선출한다는 점에서 가장 민주적인 절차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렇게 뽑힌 국회의원들은 이른바 선거철만 피는 타락한 민주주의 꽃으로 전락했다. 예컨대 투표율 50%에 절반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을 경우 1/4에 불과한 지지를 받은 국회의원들이 전체 민의와 같은 길을 가기를 기대하기는 것부터가 현실과 겉돈다.
현행 지역구 위주의 승자독식 소선구제는 민주주의 느낌만 강한 선거다. 국민들이 권력을 견제하는 민의의 중심에 있다는 착시효과를 주도록 하는데 딱 맞다. 하지만 전체의 대의성을 감안하면 소중한 1인 주권들을 국민이 아닌 권력의 얼개에 알맞게 각개격파 식으로 이리저리 분산하고 재조합시키는 권력가들의 수단으로 잘 기능하고 있다. 권력의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면서 외견상으로는 선의를 가장한 정교한 장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권재민의 공화제는 결국 껍데기로 전락한지 오래됐다. 보-혁 정권 모두 국가 권력을 쥐면 민의의 대변자인척 하면서 뒤로는 국론을 분열시켜야 권력을 유지시키는 속성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다. 이 같은 허울 좋은 공화정 아래 우리 국민들은 매번 권력에 주인 자리를 슬그머니 빼앗기고 상처입기를 반복하면서 정치 혐오증을 쌓아 왔다.
문제는 국민이 가진 고유권력을 소수의 패권권력으로 변형시키고, 그것을 위해 국민을 속이는 포장전술의 교언영색 노정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데 있다. 선거제도는 끝내 현란한 민주주의 가림막을 친 요식적인 절차로 경직화 되고 말았다. 국민들은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매 선거마다 악성 약물에 주사를 맞은 듯 주인의 권리가 반영될 것으로 보고 투표를 하는 ‘몽롱한 의식’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따라서 작금의 선거제도는 반드시 혁파돼야 한다. 국민의 대의성과 관련해 헌법재판소도 지난 2014년 국회의원 지역구 획정시 인구수 편차가 3대 1에 달하는 것은 국민의 평등권이 침해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는 했다. 20대 총선은 2대 1 기준을 제시한 헌재의 결정을 따랐다. 하지만 2대 1의 법률적 정의도 뚜렷하지 않다.
1인 민심의 가치가 지역에 따라 두배 차이가 나는 불평등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않다. 결국 지역에 따라 한 표의 가치에 차별을 둔 정의감을 세운 헌재의 판단도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헌법의 메가기둥이라고 할 주권의 절대 수호자인 헌재부터 어정쩡한 행보를 보인 것이 잘못됐다.
공화정은 우리 국민의 영혼이다. 헌법 제1장 총강 제1조에 엄정히 적시된 공화정의 핵심요체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터 나온다’에 있다. 따라서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대행자들이 권력을 준 국민을 속이는 일이 없도록 하는 정교한 장치는 필수적이다. 국민을 속이는 일이 우리 정치권에서는 관행을 넘어 능력으로 치부되는 등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례성 강화는 속임수를 막고 걸르는 장치의 필수 부품이다.
오랫동안 대안으로 제기돼온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편을 이제는 정치인들이나 국회의원들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야당들이 일제히 선거제도 개편안에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과거 여당시절 반대했던 자한당까지 이른바 연동형 비레대표제에 긍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비례성 강화시 의석수 감소가 예상되는 민주당만이 유독 조용하다.
현 정권의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당시 선거제도 개편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금도 비례성을 강화한 선거제도 개편 입장에 서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민주당 또한 과거 야당시절 같은 입장에 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절호의 기회가 없다. 당리당략이 아닌 진정 국민을 위한 일념만 갖는다면 거대 여당이라는 집권욕을 내려놓고 국민 앞에 벌거벗은 채로 서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국민적 지지를 더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 정치사는 헌정 이후 여-야 모두 공히 국민 분열을 가속화 시킨 주연 역할을 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고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그 자성의 실천이 선거제도 개편임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국론분열의 대표적인 사례인 영·호남 지역색은 선거제도 개편으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분열이 심화될수록 국회 입성이 유리하고 당리당략에 유리한 지역 할거구도는 국민 전체에 큰 손실로 귀결되는 만큼 이제 깨져야 한다.
국론분열은 지역주의 외에도 세대·빈부·이념 등으로 급격히 확산되면서 심각한 망국병의 온상일 정도다. 이를 통해 얻은 정치인들의 표심은 여전히 국민을 향하지 않고 개인의 사욕과 권력의 영달을 차지하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따라서 승자독식이 아니면서 비례성을 강화한 선거구제 개편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국민으로부터 주인자리를 빼앗는 권좌에 계속 눌러 안겠다는 심산과 다르지 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보면 민의가 반영되지 못하는 선거제도는 대의성이 빛을 바래 종국에는 권력의 오만과 독선을 필연적으로 낳는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현 선거제도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낯부끄럽기 짝이 없다. 국회의원 뱃지만 달면 아무리 훌륭한 인물도 몹쓸 사람이 된다는 자괴감과 비아냥이 국민들 일반 정서로 흐르기까지 한다.
루소는 각 개인이 맺은 계약인 일반의지가 정치체의 최고의지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일반의지가 결코 다중을 위한 최고의지가 될 수 없는 한계를 절절히 인식하고 있다. 우리의 공화정 리얼리티를 보면 루소의 시각이 틀렸지만 가능할 수 있는 도덕철학을 왜곡한 우리 정치사의 사례가 창피하다.
따라서 주권은 권리를 위임받은 소수 권력가들의 권력욕을 다중이 ‘상시 제어한다’는 개념으로 정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주권은 애초 완전한 이양이나 대행을 할 수 없는 성질을 가졌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를 보면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을 포기하는 행태로 보일 정도다. 이런 식의 정치는 정치혐오자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그것은 민주주의 중대한 후퇴다.
물론 비례성 강화가 만능일 수는 없다. 인물보다 세(勢)가 더 중시되면 수많은 군소정당들의 갈등과 싸움의 장이 더 깊어질 수 있다. 이를 해결할 대안을 동시에 강구해 나가는 심도 있는 사례연구와 통찰이 긴요하다.
그 중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우리식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다. 사표를 없앨 수 있으면서 권력의 독주를 견제할 장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이 내세우고 있는 협치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인위적이 아닌 여·야 상생의 필연적 권력협치를 통한 민의의 다양한 반영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기본가치를 지켜나갈 공화정의 기본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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