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잃은 국민연금, 공단개혁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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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범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8-24 00:00:22

최근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공단(이하·국민연금)을 바라보면 문득 요순시대에 있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떠오른다. 아득히 먼 옛날 일이다보니 역사적 사실관계를 세세히 따진다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국민연금을 향해 불안감을 호소하는 국민들의 심정과 정확히 대비되고 있어서다.

중국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년 전 요순시대를 가장 이상적인 시대라고 평가하고 있다. 고사에 따르면 어느 날 요순시대 한 왕이 평민복장을 하고 암행을 나갔다. 왕은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를 발견하고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 나라 왕의 이름을 알고 있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농부는 모른다고 답했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며 편히 지내고 있는데, 굳이 왕의 이름을 알아야 하냐는 것이다.

농부의 대답을 들은 왕은 순간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어 혼내주려다가 오히려 웃어 넘기며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세상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 보니 정치에 무관심한 백성이 자신의 이름을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사실상 농부의 대답은 무지에서 비롯됐다기보다 그만큼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다는 걸 반증해 준 셈이다. 농부는 농사만 잘 지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이 만족스런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니 굳이 왕이 누구인지 관심가질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최근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노후를 보장해주는 기관임에도 오히려 국민들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17일 재정추계위원회가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당초 예상인 2060년보다 3년 앞당겨진 2057년으로 추산하면서 국민연금 제도를 손봐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다.

가속화되는 고령화와 낮아진 수익률 등의 이유로 기금 고갈시점이 앞당겨지면서 국민연금 개선안이 국민들의 부담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당장 국민들이 내야 할 보험료는 인상되고 노후에 받게 될 연금은 낮아지는 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간 국민연금은 지난 1988년 출범 이후 기금고갈을 우려해 매번 수령액을 낮춰왔다. 2007년 70%였던 소득대체율을 60%로 낮췄고 2007년에는 50%, 2028년에는 40%까지 낮추도록 재설계했다. 수령연령도 2013년부터 5년마다 1세씩 조정해 60세에서 최종 65세로 높였다.

국민연급법 제4조에 따르면 연금보험료, 급여액, 급여의 수급 요건을 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당초 국민과 한 약속을 스스로 어겼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고의든 아니든 국민연금을 향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졌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기금고갈에 대한 책임을 단순히 저출산과 고령화와 같은 외부요인에만 전가하고 있다는 점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감사원의 국민연금 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기금 운용 수익이 1%포인트만 높아져도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5~8년 늦출 수 있다고 한다.

연금 운용수익률이 높다면 국민이 지게 될 부담이 줄어드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국민연금은 올해 상반기 0%대의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635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장(CIO)도 1년 넘게 공석이다. 기금고갈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국민에게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국민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면 현재와 미래세대 국민들에게 커다란 부담이 되는 방향으로 국민연금을 뜯어고치기 전에 공단 개혁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이 확보돼야 한다.

지금도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이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공단 측 설명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체계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업을 관장하고, 투자전문가로 이뤄진 공단 산하의 기금운용본부가 기금을 운용한다.

문제는 기금운용 계획부터 성과평가 등 주요 사안을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심의·의결하고 있다. 겉으로는 독립성을 갖고 있다곤 하지만 실상은 공단과 보건복지부의 허락 하에 모든 게 이뤄지는 셈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과연 정부 및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임현범 hby6609@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