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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서민 정책의 지표가 안타깝게도 반 서민 결과로 귀결됐다면 처음부터 설계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용기다. 이는 훗날 더 큰 발전을 위한 실패가 됐을 때 용서를 넘어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결단이 된다. 개인이든 국가든 일을 하다보면 실수나 실패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오히려 애초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는 시행착오가 쌓이면 쓰러지지 않는 단단한 토대를 구축해 장기간 성공을 구가하고 과실을 딸 수 있는 훌륭한 ‘정책 옥동자’를 확보하게 된다.
가난한 서민들이 몰려 있는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7.6%나 떨어지고 잘사는 계층이 있는 상위 20% 가구 소득은 10.3% 늘어나 누가 봐도 양극화 현상이 훨씬 심해졌다. 하지만 여당인 민주당은 이 같은 2분기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놀라움을 줬다.
민주당은 최저임금인상만으로 소득이 늘어나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는 이상한 잣대를 들이댔다. 실질직와 무직자에게는 최저임금 혜택이 없다고까지 했다. 이런 입장이 맞는다면 사상유례없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효과없이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나아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자영업 위기에 따른 2차파급 효과로 대거 발생한 실직자 또는 무직자들이 더 많아지면 양극화 문제가 지표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까지 준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합류한 이상한 해석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없고 실직자들이 증가하니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더욱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입장은 퍼붓기를 해도 안 되니 혈세를 더 많이 쏟아 부어야 한다는 뜻의 맥락과 같다. 그 혈세가 수십조 단위로도 감당하기 벅차다는 것을 안다면 지금까지 쓴 헛돈은 반드시 성공을 담보해줄 마중물 돈이 돼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들린다.
하지만 앞으로 들어갈 돈이 훨씬 더 많고 그 돈 조차 수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이 나서 허공에 뿌려질 돈이 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서민을 살릴 마중물로 해석하는 돈은 서민들의 막대한 돈까지 날릴 죽음의 독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상당수 진보진영의 전문가들조차 소득주도성장 비판대열에 섰다. 이를 보면 지표에 대한 해석도 기가 막히고 그 시각을 깔고 낸 결론은 유구무언이다.
가난한 서민들의 추락만이 문제가 아니다. 5분위 중 1~2분위 하위는 물론이고 중간지대인 3분위 소득 또한 감소세다. 서민은 더 가난해지고 중산층은 가난해지는 양상의 원인을 아직도 ‘덜 주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용기가 가상하다. 국민 모두의 돈을 내 주는 생색내기로 가난을 근본적으로 구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속된말로 무식의 후안무치와 다르지 않다.
공돈의 단물은 가난의 개미지옥을 만드는 악마의 유혹이라는 말이 있다. 예컨대 마을에 교량을 놓아 주민들이 얻는 1인당 부가가치가 10이고 1인당 3의 자부담이 들어간다고 했을 때의 부가가치 7을 선택하기보다 교량을 짓지 않고 공돈 1을 받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례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수십 년 동안 향유할 수백·수천의 부가가치를 눈앞의 공돈 1의 단꿀 때문에 포기하도록 하는 정책은 그야말로 인간의 이기심에 불을 지펴 가난을 짊어지도록 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의 화려한 유토피아는 늘 목숨까지 담보하는 치열한 자유시장 경쟁에서 달성되기 어려운 단꿀의 유혹이다. 시장경쟁에서 돈은 그야말로 목숨이다. 돈 없이는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심지어 현대판 천민으로 떨어지기까지 한다. 개인이든 사업자든 적자는 모든 것이 끝나는 지옥으로 가는 열차다. 매순간 공공의 도덕률을 불가피하게 침범해 범법자가 되는 칼들을 품에 안고 사선의 경쟁에 임하는 개인과 사업자들이 부지기수인 이유다.
이런 자본시장에서 쉽게 버는 돈이 날아들면 강한 경쟁자들은 더욱 강하게 나아가고 뒤로 쳐진 약자는 끝내 더 약자가 되고 만다. 강한 경쟁자들은 굳이 큰 돈을 벌 수 있는데 작은 공돈에 연연하지 않고 약한 경쟁자는 작은 돈이라도 쉽게 버는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이에 인위적으로 강한 경쟁자들에게 정의라는 칼을 들이대 끌어내리면 약자들은 더 약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는 많은 나라의 경제사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 온 일이다.
최근의 집값 양극화는 그 상징적인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 서울의 집값은 놀랍게 오르고 있지만 지방은 놀랍게 하락하고 있다. 서울에서도 강남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중이다. 자고 일어나면 수천만원 또는 억대가 오르는 강남불패 신화가 이상하게도 서민정책을 내세우는 집권기에 일어나고 있다. 보수정권 집권기 중 강남 집값은 보합세를 보이거나 떨어지기까지 했었다.
강남과 강북의 아파트 가격 격차는 이제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일례로 10년전 강남구와 도봉구 간 아파트 평균가격 차이가 3.2배였는데, 현재 4.5배로 늘어났다. 강남집값을 견인하는 재건축 단지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훨씬 더 벌어진다. 서울과 지방의 아파트 가격차이도 나날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7월까지 서울 등 수도권은 4.8% 올랐지만 지방은 평균 1.7% 떨어졌다. 지방 곳곳에서는 지금 짓다가 중단돼 흉물이 된 아파트 단지들이 수백 곳에 달할 정도다.
상반기 주택담보 등 가계대출 증가율만 봐도 아파트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서울은 이 기간 중 가계대출이 2.7% 증가했고 아파트 입주가 늘어난 경기도는 3.2% 늘어났다. 하지만 지방은 특수효과를 누리고 있는 세종시 외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이 줄고 생계형 신용대출이 증가하는 지표를 보였다. 재산은 줄고 빚으로 먹고 사는 서민층이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강남부자들을 잡겠다는 정책은 인기는 좋았지만 결국 그 인기를 몰아준 서민들을 더 울게 만들었다. 지금도 서민들의 눈물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서민들의 환상은 계속되고 있다. 그 중심에 정책 당국자들이 있다. 물론 신기루를 쫓는 식의 서민들의 행보가 계속되는 한 소득주도성장론은 힘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 중 서민들은 가난으로의 항진도 멈추지 못한다.
대안은 진정한 서민정책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정부와 권력은 자본시장의 치열한 경쟁이 최대한 공정한 룰이 될 수 있도록 감시자의 눈을 치켜뜨고 있으면 된다. 링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룰을 약자에 맞게 인위적으로 바꾸면 순간땜질인 스테로이드 처방이다.
약자가 자본시장의 승자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오히려 약자뿐만 아니라 강자도 불리하지 않은 엄정한 룰이다. 퍼붓기 정책의 다른 말인 소득주도성장은 약자에게 인위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지만 결과를 보면 일시적인 근육주사 효과도 잘 보이지 않는다. 용기 있는 유턴은 지금은 배가 고파도 미래의 결실을 만드는 결정이다. 이를 통해 국민 모두가 잘 사는 한국형 자본시장을 만들 수 있다. 지금은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질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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