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코드 역행 박정희·박근혜 인연 녹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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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8-27 00:01:53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인 녹십자는 만들긴 힘들지만 꼭 필요한 특수의약품 개발·보급을 통해 국민보건 증진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기업이다. 치료약뿐 아니라 백신, 진단시약 등 질병 예방에 목적을 둔 제품을 여럿 출시했다. 적십자와 비슷한 이름과 더불어 사업 성격 자체가 공공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탓에 녹십자를 공기업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녹십자에게는 ‘기분 좋은 오해’로 여겨질 만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녹십자의 성장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이면에 씁쓸한 부분도 없지 않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당대 권력자와의 긴밀한 인연과 특혜 의혹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력자와의 긴밀한 인연은 녹십자가 처음 출범한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녹십자는 고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에 의해 탄생한 기업이다. 허 창업주는 경영난에 빠진 수도미생물약품의 대주주로 참여하며 제약업계에 발을 들인 이후 1971년 사명을 녹십자로 바꿨다.

허 창업주는 당시 최고 권력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긴밀한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승마를 함께 즐길 정도로 두터운 친분을 자랑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한일시멘트 단양 공장 준공식에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정도였다. 녹십자는 1971년 국내 최초로 혈액제재 공장을 설립하며 혈액제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약 7년여 후 박 전 대통령은 상업적 이윤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며 혈액제재 사업에 대한 신규허가를 막았다. 덕분에 녹십자는 타사 견제 없이 탄탄한 매출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녹십자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연은 대(代)를 이어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도 빛을 발했다. 녹십자는 박 전 대통령 시절 단행된 화평법(화학물질 등록·평가법) 배제안으로 적지 않은 수혜를 입었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던 특검은 화평법 배제도 특정 기업에 대한 박 대통령의 특혜로 봤는데, 수혜 기업 명단에 녹십자도 포함돼 있었다.

녹십자의 지지부진했던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도 박 전 대통령 시절 급물살을 탔다. 녹십자 기흥 공장 부지에 진행돼 온 기흥역세권 개발은 지난 2004년 처음 깃발을 올린 후 다양한 악재로 약 10년간 제자리걸음을 되풀이했다. 사업 무산 위기까지 놓였던 사업은 박 전 대통령 취임 1달여 만인 2013년 3월 가구 계획이 3800가구에서 5100가구로 변경되는 등 사업성이 개선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박정희·박근혜 부녀(父女) 집권 시기 연거푸 대규모 호재를 맞이한 녹십자는 문재인정부 들어 다소 삐걱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호재를 이어가려는 녹십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지지층인 서민층의 원성을 사고 있다. 기흥역세권 인근에 호텔 건립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인근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주민들은 교통체증은 물론 면학 분위기 침해까지 우려된다며 일방통행 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녹십자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현재 녹십자는 9만7423m² 면적의 부지에 관광호텔 및 의료복합시설 등을 건설하기 위한 도시관리계획 변경제안서를 용인시에 제출한 상태다. 그럼에도 녹십자는 주민들의 반응에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사업 추진을 위한 서류제출까지 완료한 상태이지만 ‘아직 제대로 된 개발계획도 없는 상황에서 여러 추측이 난무하면서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호텔 건립을 두고 지역 주민과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녹십자의 행보가 그동안 지켜온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아쉽다. 국민보건 증진에 기여해 온 공로를 눈앞의 이익과 맞바꾸려는 짧은 판단이 그렇다. 특히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각종 수혜를 바탕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고 긍정적 이미지까지 쌓은 녹십자가 서민을 대표하는 문재인 대통령 시기 들어 삐걱되는 모습을 보이는 점이 주목된다. 문 대통령과 대척점에 자리한 박 전 대통령의 코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녹십자는 기흥역세권 인근 호텔 건립 계획을 원점에서 재논의 해야 한다. 인근 주민들과 충분한 협상을 거쳐 합의를 도출해 낸 후 추진해도 늦지 않다. 그동안 쌓아온 기업 이미지를 지켜내고 과거 권력과의 긴밀한 관계에서 비롯된 각종 특혜 의혹을 완전히 종식시키길 원한다면 숨고르기는 필수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만약 이대로 강행한다면 박근혜코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의 서민정책에 역행한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현재 녹십자의 행보는 분명 문재인코드와 한참 어긋나 있다.

김신 s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