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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던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인가. 고도성장의 그늘로 지칭되기도 하는 우리 주변에 깊게 드리워진 비리, 부정, 편법, 불법 등에 대한 시시비비가 미래를 발목 잡는 족쇄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숲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나무 곁가지만 흔들리면서 갈등과 반목이 양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시류(時流)에 편승하여 시대의 무거운 짐을 지겠다는 부류들은 더 기승을 부린다.
그들은 진영을 구축하면서 계속 주군(主君)을 만들고 세를 넓힌다. 시민 단체나 대학 등에서 사회 정의와 평등을 외치면서 대중적 지지도를 높여간다. 마침내 그들의 시대에 도달하면 마치 물때를 만난 것처럼 거침없이 평소의 지론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군사정권 종식 후 1992년 시작된 문민정부 출범 이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오로지 감시와 비판, 저항과 투쟁이 그들의 자산이 되었다. 제대로 된 보통 사람의 삶을 외면한 채 때만 기다리는 기회주의자, 아직도 이런 허망한 꿈을 꾸는 자들이 의외로 주변에 많다는 것이 몹시 씁쓰레하다.
지원 세력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조치들을 연거푸 내놓으면서 단기적으로 폭발적인 지지를 받기도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시들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지배 세력의 반대편에 있을 때와 지배 세력으로 있을 때는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는 국민의 삶과 관련한 대안을 제시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다.
지지자들만을 위한 작은 정치가 아닌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까지 만족시켜야 하는 큰 정치를 요구받고 있기도 하다. 정치가 대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에는 경제로 인해 정치 세력들의 부침이 결정되는 것을 우리는 짧은 민주화 과정에서도 충분히 목격하고 있다.
진보 정치 세력들에게 가장 취약한 분야가 바로 경제 부문이다. 장래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와 같은 국가의 생존과 미래와 같은 큰 그림을 기대하는 것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정의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경제는 위축되고 위기로 치닫는다. 이른바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다. 대중들도 초기에는 정의에 공감을 하지만 그들의 삶이 위축되기 시작하면 반감으로 돌아선다.
지금 우리 경제의 최대 화두는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이다. 매력적으로 들리기도 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이상향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최종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초가삼간을 다 태운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현실과 이상은 엄연히 다르다. 그래서 현명한 국가나 지도자들은 실현가능한 조합과 타협을 하고 정확한 선택을 한다.
국가가 처한 전후좌우를 촘촘히 진단하면서 아젠다를 만들어낸다. 한국호(號)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꺼져가는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소득을 어떻게 더 만들어낼 것인가와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게 하기 위한 프레임을 어떻게 재구축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경제에 요행수는 없으며, 막연하게 저절로 좋아지거나 나빠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장담대로 연말이나 내년에 경제가 더 좋아진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식이 좋다는 고집도 지양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이만큼이나 되고 있는 것도 남을 벤치마킹하거나 처절하게 경쟁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국가·기업·노동자 등 플레이어들의 유기적 결합도가 높을수록 더 큰 파이 창출
흔히들 경쟁의 방식으로 마이클 포터의 ‘제로섬 게임(Zero-sum Game)'과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이 자주 거론된다. 전자는 하향식 출혈 경쟁으로 모두가 죽는 게임이다. 반면 후자는 합리적인 플레이어들이 상호 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파이를 재창출함으로써 모두 승자가 되는 게임을 일컫는다. 당장 우리 경제에 필요한 패러다임은 바로 이 포지티브섬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파이를 분배하자는 것으로 우리 경제를 더 수렁으로 빠지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이다. 대부분의 잘 나가는 나라들은 파이를 더 키워서 나누는 방식을 선호한다. 지속적인 파이 창출의 출발점이 어딘지 잘 분간한다.
소득재분배→소비 확대→기업이익 증대→투자·고용 증대 등의 순환 구조가 아니라 기업 투자확대→고용 창출→소득 증대→소비 확대의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파이 확대의 시작이 소득이 아닌 기업에 둠으로써 포지티브섬이 되도록 안간힘을 쓴다.
공정 경제라는 경제의 룰을 공정하게 만들자는 취지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룰 세팅이나 이에는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해외 경쟁자들에 비해 우리 기업에게 불리한 룰, 즉 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과 노동자 간의 갈등요인이 되고 있는 불합리한 조항들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다.
우리 잣대가 마치 지고지선인 것처럼 밀어붙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공정의 방향성의 기업의 사기를 올리는 쪽이 되어야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성장의 동력을 꺾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들에 대해서는 시차 적용을 통해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지금 지구촌은 국가의 전면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기업들 간의 미래 먹거리 경쟁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이다. 국가·기업·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유기체를 만들어낸 조합들이 시장에서 승승장구한다. 분열될수록 시장에서 실패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국가 혹은 정치 흥망의 종착지는 결국 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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