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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대기업들이 한국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여전히 해주고 있어 다행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 방점 중 하나는 재벌기업 때리기였지만 수출을 선도하고 있는 그들 대기업들이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의 마지막 보루역할을 하고 있다. 올들어 지난달까지 한국의 수출은 3998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대비 6.6% 증가해 8개월 누적치로 사상최대 실적을 올렸다.
수출을 주도한 것은 당연히 대기업들이다. 경제민주화와 친노동 등 무소불위 정의의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전방위적으로 진행돼 온 재벌기업 옥죄기 상황에서도 수출전선의 경제전사들은 한 눈 팔지 않고 구슬땀을 흘린 덕분이다. 숨 조차 쉬기 힘들었다는 대기업들의 눈물 나는 자구노력이 빛 나는 실적이다.
반도체가 수출 최전선에서 독주하고 있는 가운데 기계, 석유, 철강 등 전통적인 한국 제조업들이 힘을 보탰다. 반도체는 지난달 한 달만 해도 115억 달러 어치를 수출해 총 수출액의 약 23% 비중을 차지했다. 반도체는 8월 수출로 역대 가장 많은 512억 달러를 달성하는데 확실한 기둥 역할을 해 주었다.
반도체는 국내 총 수출의 약 1/5을 차지해 온 수출효자다. 전년 동기 대비 지난달 증가율이 31.5%를 보이면서 찍은 수출액도 사상최대를 보이면서 반도체의 수출비중이 1/4로 확대됐다. 이는 분명 낭보지만 불안한 지표이기도 하다. 불황이 닥치거나 국제경제가 출렁이면 반도체 쏠림 현상으로 인한 위기의 쓰나미가 큰 충격파를 몰고 올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중장기 지원이 아쉽지만 오히려 반도체 기업들은 정부의 칼날을 피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쉬운 대목이다.
같은 기간 석유화학 수출액도 사상 최대인 43억5000만달러를 찍었다. 이는 9개월 연속 40억달러를 넘어선 실적이었다는 점에서 깜짝호황이 아닌 것이 값지게 다가온다. 석유제품도 마찬가지 강세를 보이면서 제조업 강국의 면모를 강하게 드러냈다. 10개월간 한번도 빠지지 않고 30억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냈다. 불안요인이 적지 않은 가운데 일군 장기간 호조세는 누가봐도 수출기업들이 노력한 성과다.
정부는 수출 호조 요인으로 세계 제조업 경기, 국제유가 등 거시경제 상황을 들고 있다. 물론 이들 요인이 수출을 견인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 경영환경이 최악이라는 현 정부의 대기업 옥죄기 상황에서 일궈진 성과라는 측면도 반드시 감안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칭찬에 인색하다. 오히려 수출호황을 당연한 듯이 자랑을 하고 있으니 자신들의 정책 덕분이라는 뉘앙스까지 풍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수출과 성장률 등 외형적 지표가 나쁘지 않다고 자화자찬 하면서 수출치적을 자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득분배 관련 지표가 나쁘다고 했다. 언뜻 듣기에는 분배지표를 잘 꾸려나가면 자신들은 성공한 경제정책을 이끌었다는 해석으로 들리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소득분배 정책이 실패해 서면경제가 되살아날 기미가 불투명한 것을 와전해 해석하는데 문제가 있다. 수출호황 조차 국정의 핵심 방점인 소득주도성장에 더욱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수출호황에도 낙수효과가 적으니 더 많은 혈세를 퍼부어야 한다는 논리와 명분으로 소득주도성장 엑셀을 강하게 밟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정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필요로 한다. 대기업들이 그 부담의 주요 당사자들이다. 재벌이라는 부도덕한 올가미롤 계속 씌우기에 안성맞춤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나아가 재벌해체를 위한 좋은 명분이 되고 있으니 정책실패의 정치적 역설이다. 경제민주화와 친노동 깃발을 계속 펄럭이면서 정작 재벌들로부터 세금을 더 많은 걷는 방식이 현 정부의 코드와 딱 들어 맞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하면 할수록 대기업 정책은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수출호황 대기업들이 오히려 불안해 하고 있는 이유다. 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이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실패 가능성을 점치고 있기에 대기업 옥죄기는 앞으로도 동시에 진행될 밑그림이기 때문이다. 재벌해체 코드를 지속 진행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는 설계가 권력의 눈으로 보면 틀려 보이지 않는다.
권력형 정책의 뻔한 구도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목숨 걸고 일군 실적을 은근슬쩍 자랑하는 것은 치졸하기까지 하다. 더욱이 대기업들의 자구노력 성과는 한마디 칭찬이나 언급도 안한 채 거시경제 환경요인만 언급하는 옹색한 합리화가 궁색하다. 이는 경제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는 주역들이 경제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주역들의 희생을 담보 삼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출 대기업에서 단 한달만 근무해도 해외에서 물건을 판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한다. 그야말로 전쟁이 따로 없다. 수많은 상황과 변수들이 매일 복마전처럼 몰려온다. 아무리 거시경제 지표가 좋아도 먹구름은 수시로 날아들어 비를 뿌리기 일쑤다. 목숨을 담보하는 지뢰밭이 도처에 깔려 있어 아무리 조심해도 경쟁에 내몰릴 위기가 수시로 닥친다. 경쟁자들의 용서가 없는 칼날이 춤을 추면서 단 한시도 방심을 못하는 것이 해외 수출전선이다.
그나마 국격이 올라가고 브랜드가 알려져서 수출을 유지하는 것이 다행이기는 하다. 하지만 수출 대기업들에 대한 온갖 부도덕성이 외신을 타고 알려지면서 직·간접적인 타격이 적지 않다. 영업력을 키워야 하는 대가는 그만큼 지출증가 요인이 되고 있다. 대기업 수출담당 한 중역은 “단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해외 수출시장에서 한국 정부는 아군을 상대로 포사격을 하고 있는 격”이라는 말까지 할 정도다.
정부는 거시경제 불안요인들을 보고 있기는 하다. 신흥국들의 잇단 위기와 미국의 금리인상 등은 우리 수출기업들에 떨어진 폭탄들이다. 여전히 불안한 미·중간 무역갈등은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잠재적 대형 악재다. 하지만 이 같은 불안요인들은 이미 수출 대기업들이 먼저 알고 선제적 대처를 해가는 중이다.
정부가 거시경제 위기상황들을 숙고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한 발 더 아나가 대기업들이 거시경제 악재들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 핵심이 내수기반을 돕는 일이다. 내수의 탄탄한 기반은 매출도 중요하지만 국민적 여론에 있다. 지금처럼 대기업들에 대한 여론몰이식 뭇매가 지속되면 그 어떤 거시경제 악조건보다 좋지 않은 상황을 자청해서 만드는 꼴이다.
수출이 크게 감소해 위기가 닥치고 있는 무선통신기기, 가전, 조선 등의 수출경쟁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들 대기업들에 대한 옥죄기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더욱이 이들 품목군은 낙수효과가 크다. 동시에 잘 나가는 품목들 또한 위기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조치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기업의 결정력을 강화하는 방식의 혁신성장 에너지가 긴요하다.
경제민주화 코드의 혁신성장은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는 그림만 좋은 구도다. 누구도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빠른 결단과 과감한 추진력 그리고 위험한 투자 등을 위해서는 지배력을 높이는 경영환경이 지금은 불가피하다. 수출실적을 요란하게 자랑하고 싶다면 수출 대기업들에게 강한 결정력이라는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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