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평생현역시대’ vs 한국의 ‘실버 디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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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 부족에 은퇴 고령층까지 리콜, 4050 대까지 고용대란의 희생양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18-09-15 13:17:16

요즘 일본에는 안 되는 것보다 되는 것이 더 많다. 반면 한국에는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훨씬 많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완전히 헤쳐 나와 국운이 상승하고 있는 분위기인 반면 한국은 이제 그 초입 단계에 들어가고 있는 형편인 듯하다.

지난 시절 일본 재계는 한국식 경영을 배워야 한다고 몸을 낮추면서 재기를 모색해 왔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이들의 부활을 돕기 위해 뒤늦게나마 혁신의 불을 댕기면서 기업의 사기를 북돋우는데 모든 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따라 수출이 다시 살아나고 민간의 투자가 확대되면서 완전 고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점진적으로 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증대와 소비 지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로 연결되고 있기도 하다. 일자리 부족은 이젠 옛말이고 급기야 일자리가 남아도는 국가로 변신했다. 은퇴한 고령자도 일자리 전선에 불러내야 할 판이고,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도 급증하고 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경제 재건 기치인 ‘1억 명이 총 활약하는 사회’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극복을 위해 내세우고 있는 국가 전략으로 2050년 이후에도 1억 명의 인구를 유지하는 사회를 일컫는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1.4명인 합계출산율을 1.8명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일본으로서도 가장 무거운 과제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단 하더라도 일할 수 있는 건강한 고령 인력의 직업 전선 투입은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이슈임에 분명하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적 대타협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일본이라는 특이한 사회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면 그리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청년 일자리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정과 비교하면 너무 부러운 현상이다. 일본 정부는 마침내 ‘평생현역시대’라는 새로운 카드까지 들고 나왔다.

고용지속연령을 65세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고, 연금 수령 시기도 현행 65세에서 70세 이후로 연기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정년 후 평가·보수도 무조건 감액이 아니라 성과를 반영해 조정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평생 일하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본을 보다가 다시 우리 사회로 돌아와 보면 너무 암울하다. 고령 사회로 빠르게 접어들면서 빚에 허덕이는 ‘실버 디폴트(노년층 채무불이행)’가 급증하고 있다. 중년 때에 떠안은 빚의 굴레가 노년층이 되어 크게 생계를 위협하고 있는 모습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4050 대의 고용 대란도 갈수록 심각해져 이들의 노후 파산에 대해 벌써 걱정하는 목소리가 분출된다. 경제 위기 때마다 대량 해고가 뒤따르면서 자영업자를 양산하고, 빚을 진 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 상반기 개인·프리 워크아웃(채무조정) 신청을 한 60대 이상 고령층이 5451명으로 4년 전에 비해 무력 87%나 늘었다.

이러한 사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선되기 보다는 악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 심지어 청년 실업마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부모에 의존하는 젊은 층이 더 늘어나 이래저래 고령층의 채무가 당분간 더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삶이 각박해지면 각종 범죄가 기승을 부리며, 자살 충동과 우울증이 증가하고 세대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기 마련이다.

혹독한 시련을 거친 후에 재기하고 있는 일본,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덕이는 일본 경제, 일본 사회를 마치 이웃집 불구경 하듯이 쳐다보았다. 설마 우리에게도 일본과 같은 암울한 20년이 올 것이라고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일본과의 20년 격차를 두고서도 좋은 것은 따라가고, 나쁜 것은 따라가지 않는다는 자만에 빠지기도 했다. 경제 성장과 부를 축적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불과 삽시간이다. 최악의 터널을 지나던 당시 일본 사회는 화려했던 지난날의 영광을 곱씹으면서 처절한 시기를 혹독하게 경험했다.

한 때 기가 펄펄 넘쳐났던 일본인들의 기세가 꺾이면서 자존심은 실종되고, 생기를 잃은 채 갖은 설움으로 자포자기하는 인생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도 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를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 경제가 부활하면서 경기가 좋아지고 있는 요즘에도 과거 잘 나가던 시기와 비교해 보면 일본 사회는 여전히 신중하고, 절대 흥청거리지 않는다.

아직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정신무장으로 철저하다. 특히 중소도시를 가보면 주간에 도로 위에는 중·대형차를 보기 어렵고 소형차만 굴러다닌다. 그리고 초저녁부터 거리는 한산하고 불이 꺼진 데가 훨씬 많다.

한국 경제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진 것은 이미 수년이 지났다. 경제적 위기는 사회적 위기로 고스란히 전이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면 하에 잠겨 있던 사회적 이슈와 갈등이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위기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기도 하다. 위기에 대한 인식은 물론이고 대처하는 방법까지 너무 아마추어적이라 수습은커녕 매일매일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이나 정부는 안일하다 못해 표만 의식하여 소득주도 혹은 출산주도 성장 운운하면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남북 간의 평화 무드나 경제협력도 중요하지만 멍이 깊어 골병으로 번지고 있는 우리 경제 혹은 사회의 위기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고난이고 시련이다. 일본과 같이 인구 감소로 시간이 지나면 막연하게 실업률이 감소할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은 더욱 더 금물이다. 일본의 완전 고용이나 평생현역시대는 피눈물 나는 시대를 거치면서 만들어지고 있는 산출물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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