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개념의 전환 기저엔 시민의 권리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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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경 인문책방

인문학 키워드 - 사회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8-09-22 20:46:13

‘사회’(society)란 무엇일까? 이 단어의 형용사인 social은 ‘사회적’이라는 뜻과 함께 ‘사교적’이라는 뜻을 갖는다. 사적 친교를 함의하는 ‘social’은 어떻게 공적 관계망을 뜻하는 ‘사회적’이라는 뜻을 포괄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회’라는 단어가 정의되는 몇 가지의 맥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사회는 ‘자연에 대립’한다는 맥락에서 문명적 질서라는 뜻을 함의한다. 보통 루소 등에 의해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이 사용될 때, 우리는 합의와 암묵적 동의 등을 통한 문명질서의 구축을 상상하곤 한다.

둘째, 개인에 대립한다는 의미에서, 셋째 국가에 대립한다는 의미에서 ‘사회’라는 표현이 각각 사용된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단어가 시장질서에 대립하는 공적 가치지향의 뜻을 띨 때다.

공적 지향으로서의 ‘사회’의 등장

19세기 초반 프랑스어 ‘science sociale’(사회과학)이 영어로 처음 번역될 때 이 가치지향의 성격이 드러났다. 당시에 번역어로 채택된 것이 moral science라는 용어였다. 도덕과학이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단어가 채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당대의 학자 윌리엄 톰슨은 사회과학을 “부와 인간행복의 모든 원천들을 분배하는 수단”으로 정의했다.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을 때, 빈곤은 문명의 기층을 파괴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분배를 위한 공적 도덕의 가치지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대는 프랑스혁명의 여운이 강력했던 19세기 초였고, 사람들은 기존의 위계적 신분제를 대체할 새로운 세계상의 출현을 열망했다. 인권선언에 따라,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워야 한다면, 그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 내고 존속케 할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먼저 물물교환의 시장질서가 존속하는 데 있어서 신분제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철폐되어야 했고, 그 위계적 공동체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공동체의 질서를 구축해야 했다.

그 새로운 공동체를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것은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도래였다. 사람들은 이제 지연과 혈연 등으로 묶여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는 좁은 공동체의 세계를 벗어나 ‘시민사회’라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세계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 사회는 ‘자본주의 시장질서’의 위험을 억제해야 했다. 이때 ‘사회적 문제’(social question)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한다. 프랑스혁명 후 유럽은 노동문제에 크게 직면하게 된다.

노동을 여타의 상품들과 같은 것으로 보고,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과 교환을 추구하던 자유주의 이념은 대중의 빈곤이라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1840년대를 기점으로 유럽인들은 이 노동과 빈곤의 화두를 ‘사회적 문제’라는 용어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사회문제의 전환

이 ‘사회적 문제’가 폭발한 시점은 1840년대로, 대혁명 후 다시 유럽의 혁명이 발흥하던 시기였다. 이때 ‘사회주의’가 근대 정치사상에 등장했는데, 이 용어의 구성(social-ism)은 ‘사회’라는 것이 시장질서와 연관된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공동체적 가치지향을 수반함을 알려준다.

‘사회’라는 개념은 프랑스혁명 후 완전히 재탄생한다. 프랑스혁명은 모든 인간의 권리를 동등하게 확립해야 한다는 관념을 수반했고, 이 동등한 권리의 세계는 익명적 주체들 간의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고 전제되었다.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관념을 가져왔고(그것은 익명의 공간이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뿐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적 정신, 즉 우애(공동체적 가치지향)의 확립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19~20세기를 거치며 ‘사회’라는 개념은 강력한 반향을 낳았고 그 의미의 폭에도 일정한 변화가 나타났다. 세계대전 후 유럽에는 복지국가가 형성되었는데, 이 국가모델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이 바로 ‘사회적 국가’라는 것이었다. 이는 국가가 존재하되, 그것이 공적 협력과 사회문제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 국가여야 한다는 것을 가정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며, 이 ‘사회’라는 개념에 대한 반격이 시작되었다.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처의 이 유명한 말이 함의한 것은 이 세상은 이제 각자도생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80년대 이후 세계는 대처의 이러한 관점을 반영하듯, 빠르게 각자도생의 세계로 변화했고, 모든 공적 가치지향은 개별적 생존주의라는 완전히 새로운 가치지향으로 대체되었다.

2004년의 미국 대선에서 부시는 ‘소유권 사회’라는 용어를 도입했는데, 이는 돈을 소유한 만큼 사회적 권한을 갖는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주주가 회사에 권한을 행사하듯, 이제 부를 가진 이들이 부의 양만큼 사회적 권한을 행사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사회’ 개념의 또 다른 전환이 일어난 셈인데, 그 사회는 과연 얼마나 ‘사회적’인 것일까? 사회는 곧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권리, 즉 시민권의 문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소유가 척도가 되는 사회에서 우리의 권리는 얼마나 안전한가? 혹은 우리의 권리는 얼마나 사회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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