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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개발 노하우가 전무했던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자체 연구개발을 통해 고도성장을 기반을 닦아 일약 글로벌 방위산업 10대 국가로 발돋움한 우리나라의 방산 위상이 어쩌다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100조 수출효과를 기대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미국 공군용 차기 고등훈련기(APT) 수주전에 실패한 것은 그 상징적 사건으로 충격이 너무 크다.
APT 사업은 단순히 미국 시장을 노린 사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방위산업계 전체가 속칭 멘붕에 빠졌을 정도다. 각종 첨단무기의 개발과 운용에서 수출까지 절대 강국이라고 할 미국의 안방 시장에 진출하는 것 자체로 한국 무기의 품질력을 전 세계시장에서 검증 받아 방위산업의 도약과 비상을 한껏 기대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 장밋빛 비전의 충격이 가실 수 없는 배경은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의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나아가 입찰실패의 원인도 미래 우리 방산의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보잉·사브 컨소시엄의 경쟁기종이 우리처럼 많은 나라에 수출을 통해 검증된 제품이 아닌데다 개발이 끝나지 않은 제품인 탓이다. 응찰가격 경쟁에서 뒤진 요인도 있지만 최근 미묘해진 한-미간의 기류 또한 적잖이 한 몫 했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4대강·자원개발·방산의 3대비리로 낙인찍힌 방위산업이 우리가 가장 많은 무기를 수입하는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당연했다. 우리나라는 최근 10여년(2006~2016년) 동안 미국산 무기만 약 40조원 어치 사들이는 특급 구매자로 자리매김 해 왔다. 한국은 이 기간 중 미국 무기를 가장 많이 사들이는 1위 국가에 랭크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방위산업이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히자 미국은 직·간접적으로 한국정부를 향해 얼굴을 붉혀 왔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방산비리 전방위 수사가 미국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뒷이야기까지 흘러 나왔다. 따라서 국운이 걸렸다고 할 정도로 사활을 걸고 배수진을 쳤던 APT 수주전의 실패도 이런 정황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설로 분분하다.
실제로 KAI의 T50은 150대 이상이 현역에서 한참 활동 중이다. 조종사도 2000명 이상이나 배출됐다. T50 조종석까지 미국이 차세대 주력기종으로 삼은 F35 및 F22와 유사하기도 하다. 이런 이점에도 불구하고 KAI는 입찰 준비과정에서 먼지까지 털릴 정도로 검찰의 칼날을 피하지 못해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혔다. KAI 전 사장은 영어의 몸을 피해지 못하기도 했다.
앞서 한국 방위산업은 공교롭게도 현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2016년까지 그야말로 탄탄대로에 고도성장을 구가해 왔다. 우리나라 10대 방산기업의 수출실적을 보면 지난 2011년 6000억원 규모가 단 6년만인 2016년에 2조원을 넘었다. 단기간에 3배 이상 성장하는 개가를 올렸다.
5년간(2012~2016년) 기준으로 한국 방위산업은 조선과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을 넘어 생산과 수출 증가율에서 단연 1위에 올랐다. 이 기간 중 전체 방산 수출실적은 연평균 22.2%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방산기업 총 수출규모로 봐도 2012년 1조44억에서 2016년에는 2.2배 성장한 2조242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수출업체 수 또한 35곳에서 48곳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방산비리 이슈가 뜨거웠던 작년부터 급거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방산기업들의 매출액은 국내외 발표기관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수출액이 급감했다는 수치가 산업연구원(KIET)에서 최근 나왔다. 10대 방산기업 지난해 수출액 1조5000억원은 전년대비 35.5% 급락한 것이었다.
전체 매출액 역시 9조원대에 머물러 약 16% 떨어졌다. 이는 국방연구원이 2016년 예측한 10조원 이상을 넘어 2017~2018년에도 각각 14.3%, 10.2% 고도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던 예상과는 거리가 한참 먼 역주행이다. 이에 따라 10대 방산기업의 직원수도 덩달아 줄면서 일자리까지 크게 위축됐다.
지난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한국의 방위산업은 그야말로 불모지에서 기적처럼 일군 실제 기적을 연출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특별조치법까지 만들어 방위산업을 키우기 위한 텃밭을 일사분란하게 가꾸고 일궜다. 소총조차 만들지 못했던 우리나라는 기본화기부터 국산화 하면서 방산 수출입국의 꿈을 키우는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국가 주도의 순수 우리 역량으로 각종 무기생산에 성공하면서 무기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지대지·공대지·지대공·함대함·함대잠 등의 다양한 정밀 유도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첨단무기는 물론 세계 최고수준의 자주포, 탱크 등을 만들어 수출하는데 성공했다. 우리 방산업체들은 이제 글로벌 수준의 잠수함, 이지스함, 대형 수상함, 전투헬기, 경전투기 생산능력까지 갖추는 신화를 쓰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06년 개청한 방사청은 자신감의 표시였다. 10년간 약 15배 규모로 성장한 한국의 방산무기 수출은 이후 주춤하고 있다. 미 방산전문지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작년 글로벌 방산기업 중 한국 업체들은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우리 방위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는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후진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른바 방산 3인방이 흔들리고 있는 위상이 보인다. 2016년 19위에 올랐던 한화가 작년에는 23위로 떨어졌다. LIG넥스원은 44위에서 55위, KAI는 41위에서 66위로 각각 밀려났다. 100조 전투기 시장 도전에 실패한 KAI의 급추락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KAI의 수주실패는 기대가 컸던 협력사들에게 정말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가격 등 수주실패의 눈에 보이는 요인들은 논외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방산 시장은 무기거래상들의 은밀성이 좌우하는 경향성이 크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리는 철저히 파헤쳐 척결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방산의 특성상 관행적 로비의 은밀성은 시장의 특성으로 인지상정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조차 비리의 온상으로 철퇴를 가하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산 태운다는 비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방위산업은 단순 방산기술의 발전과 수출에만 기여하지 않는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무기개발은 산업의 총아라고 할 만큼 전 산업분야에서 파급효과가 지대하다. 우리 방산도 개발시대 경제발전 과정에서 전자, 중화학, 선박, 자동차 등과 함께 발전하면서 기술적으로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일반 산업분야에 앞서 첨단기술이 가장 먼저 탑재되고 시험·운용·평가되는 분야가 무기임을 꼽고 있다.
전 세계 국방비만 한 해 수천조에 달한다. 이 중 무기시장은 적어도 연간 700~800조 정도 규모로 추정된다. 2016년 기준 우리의 방산 생산액 약 16조원을 감안하면 한국 방산기업 289곳은 2% 안팎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향후 무기는 고부가가치 첨단화로 혁명적 진화를 할 것으로 예상돼 방산 시장 자체만으로도 우리 경제엔 블루오션이다. 협력업체와 산업파급효과까지 감안하고 안보효과도 본다면 방위산업은 일석삼조의 효자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기획·개발부터 운용·수출까지 은밀성이 관건인 방위산업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전환과 그것을 주도할 리더십이 시급하고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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