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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스러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44개월(20년4개월) 동안 5명의 대통령을 모신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라는 보안이 중시되는 공간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몸에 밴 언행이다. 천상현(50) 셰프(chef), 지금은 자유로운(?) 몸이 됐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재인의 대통령 식사 및 행사를 담당했던 청와대 요리사였다. 정확한 직책은 청와대 대통령비서관실 조리팀장.
때는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 셰프는 신라호텔에 요리사로 입사해 일하던 중 청와대의 부름을 받는다. 이 일은 당시 신라호텔 내부에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관행보다 상당히 이른 31세 나이에 청와대 콜을 받았기 때문이다. 2개월간의 신원조회 끝에 1998년 4월부터 문문술 셰프(운영관)와 함께 스카우트 돼서 청와대로 입성했다.
문 운영관은 2002년까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시고 청와대를 떠났지만 천 셰프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과 현 문재인 대통령까지 5명의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지다 지난 7월말 20년4개월 만에 정든 청와대에서 나왔다.
98년 청와대로 스카우트 돼 244개월 동안 대통령 식사 담당
천 셰프 경력은 조선 초 태조 이성계부터 문종까지 28년간 5명의 임금을 모신 황희 정승과 겹친다. 황희 정승 이후 지근거리에서 ‘나라님’을 보좌한 유일한 인물로 기록될 만하다. 5명의 대통령 식사를 책임진 기록은 앞으로도 쉽게 깨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5명의 대통령이 좋아했던 음식에 대해 묻자 천 셰프는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식사내용도 엄밀히 말하면 기밀에 속하기 때문이고 그에 대한 비밀유지서약을 하고 나온 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매체를 통해 알려진 범위 내에서 두루뭉술하게 답해줬다.
천 셰프에 따르면 가장 처음 모셨던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홍어를 즐겨 했다. 홍어 중에서도 삭힌 홍어보다는 활홍어를 좋아했다. 물론 청와대 입성 전에는 삭힌 홍어도 즐겨 했는지에 대해선 모른다고 덧붙였다. 활홍어와 함께 산낙지, 민어매운탕, 조기찌개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김 대통령은 중식을 즐겨했다. 식사의 7할이 중식이었을 정도였다. 천 셰프를 청와대로 스카우트 된 배경이 아닐까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공통점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섭취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해산물을 좋아하는 것이 닮았다. 이는 바다가 가까운 김해와 거제 태생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대통령의 경우 음식을 가리지 않고 특히 야외 바비큐 요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청와대 경내 곳곳에서 숯불을 피웠을 정도로 이 대통령의 야외 바비큐 사랑은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박 대통령의 경우도 편식 없이 반찬을 골고루 깨끗하게 비우는 식습관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상황 상 혼자 식사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식사 준비가 단출했다고 한다. 천 셰프는 대통령들이 식사가 입에 맞는 경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현직 대통령 대부분 음식 안 가려…해산물 선호하고 DJ는 중식 마니아
청와대란 곳이 직장으로는 쉬운 곳이 아니다. 보안과 안전이 최우선이고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천 셰프 역시 20여 년간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살았다고 했다. 밤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새벽에 나가고 늦게 끝나는 날도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이란 최고의 VIP를 모시는 일이었기 때문에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사생활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도 힘든 것 중에 하나였다. 30대 초반에 들어가 50대까지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 셰프는 “개인 시간이 많지 않았고 대통령을 모시는 매순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힘들었지만 명예롭고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그런 생활을 20년간 대과없이 했으니 운도 많이 따라 주었다”며 “그곳(청와대)에 더 있겠다고, (대통령을)더 모시고 싶다고 해도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나온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CCC(Club des Chefs des Chefs) 연례총회 참석 차 내달 모로코 행
청와대를 나온 지 두 달 남짓. 천 셰프는 제2의 인생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일단 ‘Club des Chefs des Chefs’(CCC) 총회가 열리는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13일부터 일주일간 다녀온다.
CCC는 전 세계 주요 24개국 대통령이나 수상 등의 수석셰프들 모임으로 1977년 결성돼 매년 회원국을 순회하며 총회를 열고 교류를 이어나가고 있다. 회원국으로는 캐나다, 중국,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가봉, 독일, 영국, 인도,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이스라엘,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모나코, 모로코, 네덜란드, 폴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다.
각 나라별 대표로 셰프 1명만 정회원이 될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천 셰프가 지난해 회원자격을 얻었다. 현재 회장은 모나코 알버트2세 왕자 셰프인 크리스티안 가르시아(Christian Garcia)가 맡고 있다. 올 7월에는 가르시아 셰프 아들 노아(Noha)가 모나코왕실소년합창단 일원으로 한국에 방문했을 때 천 셰프가 공연을 관람하고 격려하는 등 회원 간 끈끈한 연대를 자랑한다.
이번 총회 참석은 또 하나의 뜻깊은 목적이 있다. 다름 아니라 내년도 CCC 총회 유치 여부를 결정짓는 자리다. 큰 틀 합의는 일차적으로 했지만 실질적으로 진행할지 여부는 다녀와서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CCC 총회가 민간외교 분야서 큰 행사이고 의전에도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 점검할 게 많다. 그래서 이번 총회에 국내 기획팀도 참관 차 함께 간다.
올 총회 일정 중에는 모로코 내 샤프론 농장과 향신료 시장 등 북아프리카 지역 향신료에 대한 특별한 투어가 포함돼 있다. 또 모로코 왕립공식만찬 셰프의 ‘모로코요리 강좌’ 등 각종 요리와 음식을 체험하는 등 코스가 풍성하다.
특히 자선활동을 중시하는 CCC의 전통에 따라 이번에는 소외된 여성들에게 식당 등 직업훈련을 하는 비영리공익단체 AMAL을 방문할 예정이다. 점심은 이들 여성들이 만들어 주는 쿠스쿠스를 대접받고 저녁은 갈라 자선 만찬을 연다. 갈라 자선 만찬에서 얻은 수익금은 전액 AMAL에 기부된다.
내년 CCC 총회 국내 유치 점검…샤프란농원 등 北阿 향신료 시장 투어
천 셰프 만큼 역대 대통령의 밥상 레시피에 대해 아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에 대통령 식단을 영구히 남기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전국에서 가장 좋은 식재료를 공수했기 때문에 어떤 식재료가 최고인지 척 하면 안다. 옛날로 치면 궁중 진상품 물목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지명과 품명은 가급적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괜한 위화감을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퇴직 후 지난 2개월 동안 천 셰프는 여느 셰프들과 마찬가지로 ‘오너셰프’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청와대를 그만뒀다는 소문이 서서히 돌자 주변에서 방송출연, 신문인터뷰, 사업제안 등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그는 모든 부분에서 극도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특히 비즈니스 부분은 미래 경제활동과 이미지에 직결된 문제기 때문에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천 셰프가 언론매체와 인터뷰 한 것은 청와대를 그만 둔 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던 중 최근 파격적인 조건의 식당 자리가 났지만 메뉴 콘텐츠 부분이 건물주와 맞지 않아 아쉽게도 포기한 적이 있다.
대신 청와대서 7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양식담당 한상훈 셰프에게 그 자리를 연결해 줬다. 한 셰프는 서초동과 시청에서 지중해식 건강음식을 선보이면서 2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성공시킨 바 있는 실력파 셰프다.
한 셰프는 꿈에 그리던 오너셰프가 됐다. 좋게 맺어진 인연이 큰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천 셰프는 ‘유성호의식사하실래요’ 인터뷰 장소도 문 연지 갓 이틀 된 한 셰프의 ‘모리나리’(Molinari)에서 하자며 끝까지 ‘진한’ 의리를 보여줬다.
오너셰프 이후 궁극적 꿈은 후배 양성…요리전문학교 프로그램 구상 중
천 셰프는 자신만의 매장을 갖는 오너셰프가 되고 한 후에는 궁극적으로 후배 양성에 진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운영관이 청와대를 나와 서정대 호텔조리과 교수로 가는 등 후학을 위한 행보가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정부서 인가한 요리전문학교를 만들어 어린 학생들의 진로직업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와 아카데미사업을 연계해 육영사업이란 틀을 만들어 사회에 작은 기여를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크지 않아도 좋습니다. 조그만 요리전문학원을 만들어서 이쪽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을 양성하는 것이 꿈입니다.” 오너셰프, 요리전문학원, 이에 앞서 올 CCC 총회, 내년도 CCC 국내 유치 등 뜻하는 바가 술술 풀리기를 기원한다.
| 회현‧명동서 가까운 남산 맛집 ‘모리나리’ |
한상훈 셰프는 필자 칼럼에 가장 많이 등장했다. 이번까지 공식적으로 세 번째 등장이다. 한번은 식사 손님으로, 두 번은 그가 셰프로 있는 식당소개로 나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 지난해부터 부지런히 2개의 식당을 오가며 부지런히 움직인 그의 복이다.
지난달 칼럼에서 한 셰프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진정한 오너셰프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동안 서초와 시청 두 곳 식당을 오가며 바쁘게 식당일을 했지만 총괄 셰프일 뿐 오너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러다가 최근 천상현 셰프의 소개로 지금의 ‘모리나리’를 만났다.
모리나리는 명동과 회현역 쪽 남산 3호 터널 입구에 위치해 있다. 회현역 1번 출구서 5분이면 닿는다. 그동안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커피숍을 했던 곳이다. 한 셰프는 몸만 들어갔다.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에 루프톱까지 있는 야무지게 잘 꾸며진 장소다. 일단 인테리어 비용이 일체 들어가지 않는 다는 매력이 컸다. 새롭게 단장하려면 8~10억 원 정도는 들었음직한 공간이다.
모리나리란 이름은 ‘카페 모리나리’에서 유래됐다. 이 브랜드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고향이며 명차 페라리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1804년 모리나리家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를 국내에 총판하고 있는 신양엔터프라이즈가 이름을 걸고 사옥을 겸해 레스토랑과 커피숍을 운영했던 것이다. 지난 2010년에 문을 열었으니 업력이 제법 된다. 게다가 모리나리만의 고유한 커피 맛 때문에 인근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단골 층이 형성돼 있다.
여기에 지중해 건강식을 표방한 한 셰프의 요리가 더해지면 충분한 시너지가 날 것으로 전망된다. 다가오는 연말 특수도 모리나리를 명소로 반등시키는 불쏘시개가 될 전망이다. 또 서초와 시청 업장을 방문했던 충성도 높은 한 셰프 팬들이 대거 ‘아지트’를 모리나리로 옮길 것으로 보여 빠르게 자리 잡힐 것으로 보인다. 한 셰프도 매출 증대와 단골 확보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직원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에 대해선 고통을 토로한다.
메뉴는 과거 2곳의 이탈리안 식당에서 했던 것과 크게 틀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선 메뉴 사진을 넣지 않았다. 지하에서부터 3층까지 매장이 있다 보니 때에 따라 각 층마다 문화콘텐츠를 접목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먼저 3층의 경우 한 달에 두 번 정도 ‘하우스 콘서트’와 함께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구상 중이다. 후식으로 모리나리 커피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해 8~10만 원 정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작은 주방이 딸린 지하의 경우 오붓한 프라이비트 파티 모임이 가능하다.
한 셰프는 부지런도 하지만 낙천적이다. 서초와 시청 2곳의 식당을 성공반열에 올려놓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모리나리의 성공도 낙관한다. 현재 매장에는 친형과 부인이 나와 있다. 직원 구하기 전까지 가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함이다. 새로운 지중해 건강식 명소 모리나리, 사철 색다른 매력을 지닌 남산 자락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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