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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현안을 두고 한·미 간 외교적으로 어색한 사건이 잇따라 터지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만한 사안이 아니다. 흔한 말로 외교적 결례로 적당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크고 작은 사건이 수차례 터져 나왔다. 이에 대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습관적인 ‘오버 액션’이라면서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판단은 더욱더 위험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평화협상은 문재인 대통령과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급물살을 타 온 것이 사실이다. 운전자론을 자처하면서 북·미간 가교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도 일견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급하고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왠지 불필요하게 더 서두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결과가 한·미 간 잇단 파열음이다. 이들 사건은 자칫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가능성이 있는 징후들이다.
5·24 조치 해제 검토를 하겠다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국감장 발언은 미묘한 한·미간 파열음에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꽤 섣부른 행동을 했다. 오죽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세 번씩이나 외교적 관례를 벗어난 ‘승인’(approval)을 거칠게 토로했을 정도까지 갔다.
당황한 강 장관이 세번이나 말을 바꾸면서 결국 사과까지 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트럼프와 미 행정부의 생각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데 있다. 일련의 현안에서 미 행정부는 자신들의 로드맵과 우리의 행보 사이에 엇박자가 있음을 피력해 왔다. 나아가 노골적으로 우리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널리 감지됐다.
불신은 견해차가 원인이지만 그 간격을 좁히기 어려운 것이 걱정이다. 북한을 대하는 우리와 미국 간의 견해차는 외교적인 수사로 포장돼 있지만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물과 기름인 상황이다. 북한의 경제제재가 그 핵심에 있다. 비핵화 해법에서 누가 옳을까는 아직 분명한 답을 내놓기 어렵지만 그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생산적이지 않다.
미국은 북한 정권에 대한 선제적인 경제봉인을 절대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우리는 비핵화와 연계해 그 봉인을 유연하게 풀어보고자 하는 심산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재유지만이 한반도 비핵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배수진을 치는 형국이고, 우리는 이런 미국을 상대하면서 김정은 정권의 입장을 들어주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잇단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으니 한·미간 입장이 물과 기름이라는 해석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이 같은 불신의 끝은 더 위험한 상황을 지초한다는데 우려감이 커진다. 누가 봐도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 수순을 밟을 것이 뻔하다. 이를 절대 믿을 수 없다며 제재를 풀지 않는 미국의 강경입장이 계속되고 우리의 대북 밀착이 계속되면 한·미간 불신은 끝내 회복하기 어려운 적대감으로 커진다.
결국 5·24 해프닝처럼 독자적인 행동을 하기 어렵게 될 우리의 처지는 북한 김정은과 한 공식·비공식 약속들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후 불신이 남북 간으로 번지면 애초 운전자 역할을 안하느니 만 못하는 더욱 긴장된 상태가 조성될 개연성이 없지 않다.
또한 탈출구를 찾다못한 북한이 우리를 제치고 미국과 직접협상에 나서면 한국은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모두 협상 파트너로 외면당하는 외교적 패싱을 당한다. 북미협상에서 한국의 의견이나 입장이 배제된다면 훗날 북한 정권이 바뀌거나 모종의 비상사태가 터질 경우 우리는 북한 지분권을 갖기 어렵다.
그 핵심 파워게임에 미국의 불신이 자리하면 우린 북한 지분권과 관련한 그 어떤 협상자리에도 외면당할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미국의 글로벌 정책을 보면 미국의 불신은 곧 혹독한 대가였다. 경제, 안보, 외교적으로 상당한 국익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중 하나가 북한 지분권 상실로 인한 강국들의 분할통치론이 이미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주도적인 협상을 하는 것은 좋지만 비굴하더라도 미국의 비위를 건드리면서까지 할 경우 더욱 큰 악수를 두게 된다. 김정은 정권에 당장 도움이 되고 북한 경제를 살려 한반도 평화를 영구히 다지겠다는 우리의 비핵화·경협 의도가 미국을 비롯한 주변 4강국의 속내 또는 설계 그리고 국익과 전혀 상반된 수 있음을 봐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드러난 속내는 지금 분위기뿐만 아니라 김정은 정권이 아닌 통일 후까지 가장 먼저 살피고 있다는 부분이다. 다시말해 김 정권이 존재하는 전제하에 남북 평화공존을 원하고 있다는 입장을 단 한 번도 꺼낸 일이 없는 미국이다. 우리 식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일방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미국의 대(對)한반도 국익은 여전히 중국의 제1~3 도련선 저지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는 미국산 무기를 지속적으로 가장 많이 파는 국가로 한국을 유지하고 싶은 계산도 당연히 할 것이라고 판단해야 옳다. 북한은 그 게임의 작은 상대이고 중국은 본 게임이다. 우리는 어차피 1등 수입국 입장에서 미국산 무기를 놓고 큰 그림을 오히려 그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베팅을 할 수 있는 부분을 과감히 제안하고 한계가 명확한 김정은 정권보다 그 이후의 판세에 운명을 거는 대담한 전략을 짜내야 한다. 그 바탕이 지금 쌓아야 하는 한-미간 돈독한 신뢰관계 구축에 있다. 거꾸로 이 신뢰가 깨지면 5·24 해프닝처럼 현실적으로 모든 한반도 전략은 그 어떤 정책도 무력화 될 사태를 감안해야 한다.
이런 사태에 대한 감안 없이 무리한 경협사업을 벌일 경우 천문학적인 국민혈세 낭비는 물론이고 투자와 개발에 나선 기업들의 막대한 손실까지 감수해야 한다. 나아가 그 후폭풍으로 인한 안보의 구멍은 물론 미-일, 중-러의 합동 파상공세까지 감당해 내야 한다.
따라서 독자적인 경협을 성사시킨다고 하면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글로벌 안보좌판(무력행사)을 움직이는 미국이 유엔 안보리를 흔들 명분을 갖고 대북제재를 강화하면 그 연장선상에 서게 되는 한국의 대외무역 또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미국은 지금도 노골적인 유일 대항마를 선언한 중국 이외에 그 어떤 나라도 필요하다면 어깨동무할 강력한 카드를 수없이 들고 움직인다. 세계의 행정부라는 미 국무부의 파괴력을 결코 간단히 봐서는 안 된다. 현 정부가 분통이 터진다고 미국의 그라운드에서 섣불리 벗어나면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80년대 운동권 이론으로 보면 우리는 미국의 준 예속국가가 틀리지 않아 보인다. 여전한 트럼프의 거친 언행과 국무부의 노골적인 간섭은 그 사례다. 하지만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대항해 온 북한 정권을 우리만 좋은 식으로 섣불리 어깨동무해서는 훗날 더 큰 문제가 생긴다. 한·미간 신뢰에 균열이 심화되면 주변 4강국은 또다시 용서가 없는 물어뜯기에 나선다는 것을 곱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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