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세계의 미래를 변형시키는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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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경 인문책방

인문학 키워드 _ 군중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8-11-10 09:30:43

영어 mass의 뜻은 군중이라는 뜻과 함께 ‘덩어리’를 함축하고 있다. 군중의 등장은 근대세계의 탄생과 밀접히 연관된다. 사람들이 마치 한 무더기의 덩어리처럼 집단적으로 출현한 것은 언제인가? 이들을 ‘여러 사람’ 혹은 ‘동네 주민’이 아니라 ‘군중’이라고 부르는 것이 함축하는 것은 무엇인가?

18세기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혁명을 보며 “모두를 하나의 동물적인 종으로 동등화하는” 우매한 짓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군중은 18세기 후반에 부상한 집단적 존재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때 당대 지식인들의 시각에 군중이 인식되는 방식에 주목해 보자. “모두를 하나의 동물적인 종으로 동등화”한 존재. 개별의 차이나 차별성이 사라진 우매한 동물적 존재방식이 그들의 눈에 비친 군중의 형상이었을까?

지식인들과 군중: 군중과 공중의 구별

실제로 19세기 초까지도 다수의 지식인들은 군중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위계적으로 서열화된 신분적 관계망들은 군중의 집단적 반란에 의해 근본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군중의 발견에 따른 지식인들의 충격은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일정한 조정을 겪게 된다.

프랑스혁명은 시대의 패턴 자체를 변화시켰다. 이제 사람들은 신분적 위계서열보다는 합리성에 기반한 소통을 강조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군중에 대한 새로운 차별화의 과정이 발생한다. 이른바 ‘공중’(public)과 ‘군중’(mass)의 구별이 등장한 셈이다.

공중이란 어떤 것일까? 19세기 말 군중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가브리엘 타르드는 공중을 이렇게 정의한다. “순수하게 정신적 집합체이자, 물리적으로는 고립 분산되어 완전히 정신적으로만 그 일관성을 갖는 것.” 요컨대, 군중은 사회에 혼란을 주는 동물적이고 충동적인 존재들이다. 반면에, 공중은 독서를 통해 소통하고 교양을 갖추었으며, 군중과 달리 개별적으로 파편화된 채 존재하지만, 이성에 기반해 공론의 체계를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성과 충동의 대립은 공중과 군중이라는 개념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18~19세기는 인쇄매체가 자본주의의 부흥 속에서 출판의 붐을 형성한 시기였다. 독서가 가능한 인구집단이 늘어났고, 신문구독자의 증가, 소설의 부흥이 병행하며 ‘독자’ 집단이라는 의미에서 ‘공중’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아직 지식인들만의 자족적인 구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중은 19세기 내내 유럽 사회를 뒤흔들었고, 거대한 반란을 일으키며 사회시스템 자체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레미제라블의 등장과 주권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은 1860년대 리얼리즘 소설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불어 제목의 뜻을 그대로 번역하면 ‘비참한 자들’ 혹은 ‘빈궁한 자들’이 된다. 빵을 훔친 장발장은 범죄자인가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가난의 희생자인가.

19세기 중반을 경유하며 빈궁한 자들은 개별적인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군중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라는 개념의 변화도 이 과정에서 주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가난하고 힘든 일에 빠져 살며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존재 혹은 독립성이 부재한 존재를 연상시켰던 ‘노동자’들이 1840년대를 전후로 거대한 봉기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1848년의 거대한 혁명으로 유럽사회를 뒤흔든 이들의 존재는 군중과 노동자의 이미지 자체를 전환시킨다. 과거에 국가의 주권자는 군주였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이후 주권자는 ‘인민’(peolple)이 된다. 이 인민이라는 존재의 실체는 당시에 매우 모호했다. 여성은 인민이었나? 노동자들은? 문해력과 인민의 자격 간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존재하나?

1848년에 이 모든 물음은 거대한 타격을 받는다. 이제 군중은 무지하고 종속적인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는 주권자의 강력한 이미지를 획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군중은 거대한 무리이지만, 세계를 건설하는 주체다. 특히, 노동자 군중들은 19세기 후반의 사회운동 속에서 주권자이자 사회변화의 주체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물론 많은 지식인들이 공중과 군중의 구별처럼, 이들을 다시 (주권자로서의) 인민과 (사회적-통계적 집단으로서의) 군중으로 구별하려 했음은 분명하다. 군중이라는 개념은 역사적 변화의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재규정되었으며, 공론장의 논의 속에서 내부적인 개념의 분할을 경험하기도 한다(공중/군중, 인민/군중). 그리고 오늘날 이 개념은 디지털 미디어와의 연관 속에서 다시 세부적인 변형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하나의 덩어리라기보다는 다채롭게 변화하며 수많은 다양성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다중’(mutitude)이라는 개념이 부각되기도 한다. 어떤 이름과 의미를 갖게 되든 이들이 궁극적으로 사회를 구축하는 거의 모든 것이라는 점, 이들의 움직임에 의해 이 세계의 미래가 변형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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