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플리즘의 최대 수혜자, 트럼프 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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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고태경

인문학 키워드 - 포퓰리즘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8-11-18 18:44:14

브렉시트 투표(영국의 EU탈퇴 국민투표) 이튿날 영국독립당의 우파 정치인 나이젤 파라지는 이 투표를 “진짜 국민들을 위한 승리”라고 주장하며 세간의 화제를 뿌렸다. ‘진짜 국민’(real people)이란 어떤 이들일까. 반대로 가짜 국민이란 누구인가?

한국에서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부상한 것은 8년 전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 논란이 있을 때부터였다. 대체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 일반을 통칭하는 듯 한 한국적 용법은 사실 현대사의 포퓰리즘 운동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해 있다.

포퓰리즘은 인기 자체보다는 어떤 과격한 구별 혹은 선 가르기의 활동으로부터 촉발되는 경향이 있다. 파리자의 진짜 국민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오늘날 포퓰리즘 운동의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용법이기도 하다. 내국인과 난민, 백인과 비백인, 순수한 것과 기만적인 것 간의 구별은 포퓰리즘 운동이 발생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엘리트와 제도적 매개의 거부

정치학자 마거릿 캐노번은 포퓰리즘의 정의하면서 포퓰리즘이 19세기 말 이후의 태생과정에서 많은 경우 농민운동의 성격을 띠었음에 주목한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농민운동의 당사자들은 도시 엘리트들이 자신들을 속이고 농촌의 전통적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앞장선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사고 속에서 인민(국민, people)은 곧바로 인민 위에 떠 있는 모든 것들과 적대한다. 그 중 직접적인 타깃이 되는 것은 이른바 ‘엘리트’의 존재다. 예컨대 인민들의 삶은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고 순수한 무엇을 간직하지만, 엘리트들은 사회적 주도권을 행사하는 기만 세력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의 여타 제도와 절차들은 상이한 이해관계를 갖는 집단들을 타협시키고 상호 조율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포퓰리즘 정치가 공략하는 것은 이 제도적 타협책들 그 자체다. “포퓰리스트들이 보통의 정치인과 다른 점은, 그들은 개표 결과에서의 패배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무대 뒤편에서 상황을 조작하는 엘리트들에게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정치학자 얀-베르너 뮐러의 이 말은 포퓰리즘 정치의 핵심을 잘 요약하고 있다.

선거는 충돌하는 입장을 중재하기 위한 최종적 선택지다. 그러나 그 결과가 ‘이면의 기만세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나타나는 순간 모든 타협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요컨대, 포퓰리즘은 인민(대중)과 엘리트의 대립관계 속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할 제도적 중재책들은 거부되는데, 왜냐하면 이면의 기만세력에 의해 이 모든 것들이 조장된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순수성의 열망과 우파 포퓰리즘

일종의 순수성에 대한 오묘한 집착이 탄생한다. 이때의 순수성이란 어떤 것일까. 앞서 봤듯, 포퓰리즘 운동의 태생은 대체로 농민운동의 성격을 띠었고, 농촌공동체의 전통을 사수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포퓰리즘은 과거와 전통에 대한 일정한 향수를 동반하는데, 왜냐하면 오늘날의 삶의 위기를 촉발시킨 것은 우리 안의 순수성을 파괴하는 외부세력들이라 간주되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그 첫 타깃으로 선정된 이들은 유럽과 미국의 난민들이다. 2008년 이후 미국과 유럽 열강들의 세계에도 금융위기가 대폭발한다. 실업은 만연해졌고, 노동은 거대한 불안정상태에 빠지게 된다. 문제가 된 것은 금융권력이었으나, 사람들은 비슷한 시기에 몰려든 난민들에게 불만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예컨대 이런 식으로. ‘그들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을지 몰라!’, ‘그들은 우리의 땅에서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갈 약탈세력들일 뿐이야!’ 요컨대, 난민은 순수한 우리와 대립하는 오염된 존재들이다.

이러한 담론을 타고 떠오른 이들이 바로 극우파 포퓰리스트들이었다. 대중들은 이제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언론은 항상 엘리트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유튜브와 SNS는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새로운 채널이다). 그들은 기성의 거대 양당에 호응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처럼 엘리트의 세계로부터 버림받은 정치인을 찾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부상은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기성 엘리트 정치인들로부터 기만당한 존재, 투박하지만 어떤 ‘교양’의 가면 속에도 숨지 않는 이 솔직한 존재는 엘리트로부터 기만당했다고 느끼는 미국 내 거대 백인 집단들의 동일시를 얻어내며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라틴아메리카 태생의 이주민들을 추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순수한 백인들이 진짜 미국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트럼프의 정치적 부상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일종의 ‘전체’의 의지와 같은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에 대립하는 모든 것을 가짜로 몰고 간다. 그가 얻은 52%의 투표는 사실상 100%의 투표인데, 왜냐하면 나머지 48%는 가짜뉴스와 가짜국민들의 목소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포퓰리즘을 지탱하는 것은 강한 당파성과 비타협적 배제의 원리다. 그것은 타협과 제도적 절충의 위기, 혹은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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