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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존립과 번영을 지탱할 양대 기둥이 ‘경제’와 ‘안보’라고 하면 이들과 함께 반드시 필요한 삼각 축의 또 하나 기둥은 ‘외교’다. 한 국가를 안정적으로 떠받치는 이들 세 기둥 중 어느 하나만 흔들려도 국가존망을 좌우할 만큼 치명적인 위기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세 기둥이 모두 흔들리는 위태로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외교의 위기는 국운을 가르는 마지막 심판이라고 할 정도로 국가 명운을 좌우하는 최후의 방점이다. 내치 현안인 경제-안보가 기우뚱 거리는 사이에 외교에서 참사가 벌어지면 되돌릴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가 도처에서 빨간불이 켜지며 위기의 사이렌을 마구 울려대는 중에도 남북 간 ‘우리끼리 어깨동무’ 평화추구는 오히려 전쟁이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양보할 수 없는 글로벌 패권질서에서 우리는 내치가 불안정한 위기의 순간에 외치마저 이도저도 아닌 적당한 양다리 전략을 취해 끝내 치명적인 자충수에 직면했다. 미·중 양국이 모두 우리에게 강력한 경고를 하면서 동시에 양팔과 양다리를 끌어당기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속된말로 사지가 잘릴 위험한 환경이 자청해서 만들어졌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동참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사건이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북핵 관련 남한의 노선이 미-중 사이에서 애매했던 점을 감안하면 시 주석은 우리에게 외통수를 던진 셈이다. 우리는 시 주석이 부른 ‘장군’ 패에 ‘멍군’ 패를 부르지 못하고 꼼짝없이 당할 처지에 빠졌다.
주지하다시피 현대판 시황제의 무한권력을 쥔 시 주석의 일대일로 정책은 미국을 능가하는 글로벌 패권을 장악하고자 시작된 이른바 ‘21세기판 차이나 대상로’(隊商路)의 건설이다. 육상과 해상에서 초거대 신 실크로드를 건설해 중국몽을 넘어 아시아·태평양·유럽 몽을 꿈꾸는 시 주석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수가 일대일로다.
하나의 지대, 하나의 길이라는 글로벌 빅베팅에 나선 시 주석의 일대일로는 최근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고 있다. 78개국이 참여하는 도로, 철도, 댐, 항만 등의 대형 인프라 사업들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는 것은 애초 무리였던 설계다. 특히 중국 정부의 돈으로 움직이는 차관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빚더미 국가로 만들면서 국제경제 위기까지 키우고 있다.
참여국가들 중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업규모를 축소하거나 중단 또는 운영권을 넘기는 국가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있는 국가들까지 줄을 잇고 있다. 설상가상 글로벌 돈 줄을 쥐고 있는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향해 ‘신 식민주의’이자 ‘채권 제국주의’라고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당연히 일대일로 참여국들의 자금요청에 물 한 모금 줄 일이 없는 미국이다.
따라서 시 주석의 강권을 받은 우리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앞서 현 정부는 일대일로 정책에 우호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우리의 신북방·신남방 정책에 중국의 일대일로가 이해를 같이하는 밑그림으로 연대감을 가질 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북핵 문제로 상황이 확 달라졌다. 소위 운전자론으로 외견상 남북평화 자주노선을 걸어온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한국은 섣불리 일대일로에 발을 들여 놓으면 글로벌 좌판을 언제든 뒤흔들 수 있는 미국의 패권질서 방향에 어긋나 직간접적으로 경제포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그 경고를 이미 해오고 있던 참이다. 미국은 한국의 자본시장을 순식간에 뒤흔들 가공할 힘을 갖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속된말로 잽을 날리고 있는 정황들이 곳곳에서 감지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대놓고 일대일로 동참을 반대하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유럽에 걸쳐 78개국 약 44억명이 교류하는 총 21조 달러 규모의 차이나 경제권 탄생을 가만히 놔둘리 없다. 미국의 글로벌 패권 국익과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일대일로 추진 5년여 성과로 수십여곳에서 경제협력 및 무역공조 단지가 조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일면 긴장하고 있는 국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지고 있는 빚더미 국가들의 아우성이라는 부작용들은 미국에게 호재다. 미국은 물무질까지 하고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대일로가 세계무역을 방해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일대일로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한 제3의 방안으로 한국의 참여가 이뤄지면 미국은 북핵 문제에 이어 경제문제까지 연쇄적으로 뒤통수를 맞았다고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펜스 미국 부통령은 간접적인 언사로 이 같은 인내의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사실상 노골화 했다. 그는 동맹국에 대해 파트너라는 표현을 쓰면서 ‘미국은 부채바다에 빠뜨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은 당연히 미국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부채의 바다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다. 그 부채의 성격은 일대일로 부채도 있지만 미국 질서를 벗어난데 대한 부채도 포함되는 경고로 들려 섬뜩하다.
일대일로는 미-중 간 모든 부문에서 갈등의 대척점을 웅변하는 상징적 패권경쟁의 최전방이다. 우리는 글로벌 최강자들의 최전선에서 가급적 몸을 숨기고 조심해야 했지만 오히려 양국을 오가며 마구 나댄 격이 됐다. 이 과정에서 불거진 중국 검은 돈의 대거 유입과 비트코인 세탁 및 대북송금설 등은 진위여부를 떠나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외교가에 따르면 일대일로를 진행하기 위한 로비나 지원 등에 필요한 중국 권력차원의 검은 돈은 사실상 바닥이 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한국에서의 돈 세탁 과정 중 우리가 비트코인을 이용한 대북송금 사실이 미국 금융당국에 의해 들통난 것이 만의 하나 사실이라면 우리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검은 돈을 마냥 쥐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중국에 협조할 상황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당시 공교롭게도 우리나라는 비트코인이 천정부지로 올랐었을 뿐만 아니라 EU로부터 조세회피처(블랙리스트) 국가로 지정되는 오명까지 받았다. 때마침 암호화페 정책을 총괄하던 국무조정실 고위관료까지 갑작스럽게 사망해 오해를 확산시켰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풍문이나 정황들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문제는 루머라고 해도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교적 북핵현안과 경제적 신북방·신남방 이슈들이 함께 연계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확연히 드러난 정황만으로 봐도 우리는 일대일로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면이다. 시 주석의 태도를 볼때 참여하지 않으면 사드보복 수십·수백배의 보복이 따를 개연성이 높다. 전체 수출의 1/4 가량을 차지하는 대중국 직접무역 타격도 크겠지만 중국과 얽혀 있는 수많은 일대일로 국가들과의 직간접 무역관계도 걱정거리다. 일부 학자들은 대북제재 완화 이후를 대비해 일대일로에 참여하자는 목소리까지 높인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훨씬 강하고 거세다. 무엇보다 천문학적 국민 혈세가 일대일로 중국몽에 홀연히 날아갈 수 있다. 또한 일대일로를 반대하는 미국의 공개적인 으름장이 소위 장난이 아닌 국면이다. 대통령·부통령은 물론이고 미 행정부 전체가 우리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여차하면 경제제재까지 거론하고 있는 극단적 상황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양다리가 아닌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에 있다. 그 선택은 장기적인 안목에 둬야 한다.
중국은 거목이라고 해도 외교·군사·경제 모든 부문에서 아직 미국에 상대가 안 된다. 지금 당장 어려움이 닥쳐도 미국의 결단이 중국의 보복보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 미 국무부의 글로벌 정책노선을 보면 장기간 고민하지만 한번 패를 들면 그것이 동맹국이라고 해도 단연코 끝장을 봐 왔다. 한국경제는 조금이라도 수출이 막히고 금융제재까지 이뤄지면 GDP 기반이 무너져 사실상 모든 게 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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