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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사이버보험 가입 의무화를 두고 정책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사이버보험 의무 가입 시기까지 불과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임에도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조차 마련되지 않아 시장의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6월부터 일정 규모 이상인 인터넷 쇼핑몰과 포털 서비스업체 등 정보통신사업자는 의무적으로 개인정보 유출 피해에 대한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해킹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취지는 좋지만 정작 보험사에선 사이버보험 상품개발에 손도 못 대고 있는 실정이다. 사이버보험 상품을 내놓기 위해선 보상 한도나 보험료 등이 확정돼야 하는데 관련내용을 규정하는 정보통신망법 시행령이 빨라야 3월쯤에나 나오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 시민들… “내 개인정보가 공공재인가” 울분
지난 2014년 1월 사상 초유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졌다. 당시 KB국민카드(5300만 건), NH농협카드(2500만 건), 롯데카드(2600만 건) 등 3곳의 카드사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는 무려 1억400만건에 달했다. 수치만 보면 경제활동을 하는 전 국민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유출된 정보는 민감하고 방대했다. 고객이름, 주민번호, 휴대전화번호, 주소, 연소득, 카드번호, 주거상황 등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충격적인 유출 사태에 당시 금융소비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 발생 직후 카드3사는 경영진 사퇴는 물론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등 진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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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정의섭] ⓒ스카이데일리 |
그러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한 지 5년이 흐른 지금까지 피해를 본 소비자들에대한 실질적인 보상 대책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 직접 소송을 진행해야 했다. 대국민 사과까지 했던 카드사들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일부 직원의 잘못이며 정보 유출로 인한 2차 피해는 없었다고 대응했다.
사이버상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이후에도 꾸준히 발생했다. 지난 2017년 종합숙박·액티비티 앱 서비스 업체인 ‘여기어때’가 해킹 당하면서 99만명에 달하는 회원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숙박일수, 객실명 등 예약정보와 제휴점 정보, 회원 정보 등을 합쳐 총 341만8998건의 정보가 유출됐다. 4800여명의 고객들은 해커로부터 “○월○일 ○○(숙박업소명)서 즐거우셨나요”라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문자메시지를 받는 2차 피해도 발생했다.
해킹으로 인한 피해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은 2017년 3만명에 달하는 고객의 개인정보를 해킹당했다. 지난해에는 해킹으로 350억원 규모의 암호화폐를 도난당하기도 했다. 온라인상거래 피해를 보상하는 사이버보험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게 된 배경이다.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박남규(남·32세) 씨는 “개인정보는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들인데 유출 사고가 워낙 많아서 마치 공공재가 된 것 같다”며 “고객이 잘못한건 어떻게든 배상을 받으려고 하면서 고객의 피해에는 왜 입을 닫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코 앞 다가온 사이버보험 의무가입…보장범위·보험료 기준조차 모호
정부는 올해 6월부터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이버보험 가입 의무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고 만약 피해 발생 시 적절한 보상을 받게끔 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이를 두고 계획한 시일 내에 시행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붙고 있다.
사이버보험 보험료와 보상범위를 정하는 정보통신망법 시행령이 오는 3월쯤에나 나올 예정이라 보험사들은 보험개발에 착수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 사이에선 사이버보험 의무화 도입에는 공감하면서도 정부의 미흡한 관련법 개정 움직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조차 모호한 상황에서 다짜고짜 사이버보험만 강제하면서 국민과 시장의 혼란만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이버보험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김성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은 “한번 터졌다 하면 수천만건의 피해가 발생하는 사이버 보험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도 “정부가 사이버보험 기준조차 정립하지 못한 채 가입만 부추기고 있어 보험사와 고객 모두 국내 사이버보험 상품과 가입에 대한 불만이 높다”고 밝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노웅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빗썸 해킹과 같이 매년 기업들의 사이버 보안 사고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2015년 기준 우리나라 기업의 사이버 보험 가입률은 1.3%로 미미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6월에 시행하기로 했는데 아직도 정부는 ‘정보 유출 배상 보험의 가입 대상’과 ‘보험 가입 금액’ 등을 정하지 않아 시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업계 역시 정부의 모호한 기준 탓에 상품개발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최용민 한화손해보험 상무는 “사이버보험은 기존의 화재보험보다 위험요인이 더 클 수 있어 어떤 보험회사도 ‘사이버 보험 시장에서 돈을 벌겠다’는 곳이 없다”며 “사이버 상에서는 하나의 이벤트로 인해 사고가 날 위험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 상무는 “국내시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험개발원에서 주도적으로 업계를 대신해서 여러 가지 대책에 대한 기술들을 전수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보험사 개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위험요소도 많고 예측도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사이버보험 시장이 초기인 만큼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이상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은 “미국은 사이버보험 가입률이 32%인데 반해 한국은 1.3% 밖에 가입을 하지 않은 초기 단계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기업은 고가의 보험료가 부담스럽고 사고 시 보장 여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가입률이 낮은 것 같다”며 “보험사 입장에서도 다양하게 진화하는 사이버 위험을 예측하기 어렵고 기업이 얼마나 사이버 보안 대응 능력이 있는지 불분명해서 보험사의 위험 부담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전경훈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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