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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웅진성주 예식진의 반역행위로 의자왕이 붙잡혀 항복함으로써 나라는 망했으나 사비와 웅진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부흥전쟁에 가담했다. 임존(任存)성을 거점으로 한 흑치상지(黑齒常之)는 10일 만에 3만의 병력을 모아 소정방의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면서 200여 성을 회복하는 등 위세를 떨쳤다.
부흥군의 중심세력은 무왕의 조카 부여복신(福信)으로 승려 도침(道琛)과 함께 주류(周留)성을 근거지로 전쟁을 수행했는데, 군세가 얼마나 강했던지 당나라와 신라의 많은 장수들이 연패해 처벌을 받을 정도였다. 주류성은 백강(白江)과 사비성 중간지점에 있었는데, 소정방이 백강에서 주류성을 거치지 않고 직접 사비성으로 가는 바람에 병력의 손실이 없는 성이었다.
복신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가 사비성 남쪽에 목책을 설치하고 공격하자 잔류하던 백제군이 합세했고 근처 20여 성이 호응했다. 그러자 위기에 처한 사비성을 구원하기 위해 신라왕 김춘추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와서 부근 이례성을 함락시키니, 복신에게 호응했던 부근 20여 성도 모두 신라군에게 함락되고 말았다. 패배한 복신은 포위를 풀고 임존성으로 퇴각했으며, 신라왕은 군량이 떨어져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갔다
백제의 부흥을 도운 왜국
한편 복신은 왜국의 제명(齊明·사이메이)여왕에게 의자왕의 비보를 전하면서 30년 전에 왜국에 가있던 왕자 부여풍(豊)을 백제왕으로 세우려하니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제명여왕은 “백제의 위태로움을 돕고 끊어진 사직을 잇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제가 궁해져 내게 온 것은 본방(本邦)이 망해 의지할 곳도 호소할 곳도 없어서이다. 나도 창을 베게 삼아 쓸개를 되씹고 있다. 꼭 구원해주겠노라. 장군들을 나누어 여러 길로 나아갈 것이다. 구름처럼 만나고 번개처럼 움직여 같이 그 원수들을 참하고 긴박한 고통을 덜어주겠노라”라고 응답했는데, 제명여왕이 백제를 본방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나라 방(邦)은 여러 나라(國)를 거느린 미연방이나 소비에트연방 같이 큰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2번이나 왜왕위에 오른 제명여왕의 이름은 보황녀(寶皇女)인데 원래 이름은 부여보(夫餘寶)로 무왕의 딸(의자왕의 누이)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녀는 의자왕이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게 붙잡혔다는 비보를 접하자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즉각 파병을 결정하고 선박건조를 명했다. 우선 수천 명의 군사를 먼저 보내 복신을 지원했다. 제명여왕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처결했다.
그러던 제명여왕이 661년 68세로 죽으면서 백제 지원을 유언으로 남겼다. 뒤를 이어 즉위한 아들 천지(天智) 왜왕은 662년 1월 복신에게 화살 10만본 등 군수물자를 지원했으며, 이듬해 3월에는 장수 6명과 2만7000명의 군사를 보내 신라를 쳤고, 5월에는 우선 군선 170척과 군사 1만7000명을 백제로 보낸다.
복신의 욕심, 백제군의 반목을 초래하다
661년 3월 도침은 스스로를 영군(領軍)장군, 복신은 상잠(霜岑)장군이라 일컬으며 여러 무리들을 규합하니 그 세력이 더욱 확장되었다. 그들은 웅진도독 유인궤에게 “듣건대 당나라는 신라와 약속하기를 백제인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인 후 나라를 신라에게 넘겨주기로 했다고 하니, 죽음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싸우다가 죽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 이렇게 모여 진지를 고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유인궤가 답신을 써서 사자를 보냈는데, 도침과 복신은 휘하에 병사가 많아졌음에 교만해졌는지 사신을 바깥 숙소에 두고 거만한 태도로 “사자의 벼슬은 낮고, 나는 일국의 대장이므로 말할 상대가 되지 않는다”면서 답장도 주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다. 수모를 당한 유인궤는 유인원의 군사와 합쳤고, 조정에 증원군을 요청하면서 신라와 힘을 합치게 해줄 것을 건의했다. 당나라로부터 조서를 받은 신라 문무왕은 장수 김흠에게 유인궤를 구원하도록 했으나, 복신에게 요격을 당해 패배하고는 돌아간 후 감히 다시는 출병하지 못했다.
당나라는 우우위장군 손인사(孫仁師)에게 40만 대군을 주어 출병시켰다. 그는 덕물도(德物島)에 이르렀다가 웅진성으로 진군했다고 하는데, 이는 660년 13만 군사를 거느린 소정방이 백제를 공격하러 들어온 코스 그대로이다. 현재 식민사학계의 이론대로라면 손인사의 40만 대군이 황해를 건너 인천 앞바다에 있는 덕물도를 거쳐 충청도 공주(웅진)로 갔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전투 병력이 40만이면 후방수송인원까지 합쳐 약 150만 대군이고, 당시 가장 큰 배의 승선인원이 최대 80~100명이니 15,000척이 필요한데 그만한 배를 순식간에 언제 어디서 건조했는지 아무리 기록을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는다. 또 바다횡단항해가 가능하려면 돛과 우리식 노(櫓)가 있어야 하는데, 보트용 도(櫂)만 있는 도형강선(櫂型江船)의 중국 배들이 과연 황해를 횡단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가장 의아한 것은 “심한 풍랑이 일면 40만 대군을 일순간에 잃을지도 모르는데 배를 태워 황해횡단을 지시할 지휘관이 과연 있었을까?”라는 점이다.
또 다시 백제에서 엄청난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번 내분은 고구려 연남생 형제들의 내분처럼 최고위층에서 발생한 내분인지라 그 결과와 후유증이 너무도 크고 심각했다. 인위적으로 군사들을 합치긴 했으나 누가 언제 누구한테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면서 서로 반목하다보니 지리멸렬해져 대외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로 되어버렸다.
부여풍은 고구려와 왜국에 사신을 보내 지원병을 요청해 나당연합군을 막고자 했다. 왜국에서는 선박 400척의 건조가 완료되자 2만7000명의 왜군을 태우고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백강으로 향했다. 신라 문무왕은 장군 김유신 등을 거느리고 당나라 장수 손인사와 합세해 육군을 거느리고 진군하고, 유인궤와 부여융(隆)은 수군과 군량을 실은 배들을 거느리고 웅진강에서 백강으로 가서 육군과 합세해 주류성 등을 공격해 모조리 항복시켰다.
당나라 병사가 부여풍의 보검을 노획한 것으로 보아, 부여풍은 자신의 상징도 못 챙길 정도로 급히 몸을 피해 고구려로 도주한 것으로 생각된다. 왕자 부여충승(忠勝)과 충지(忠志) 등이 무리를 거느리고 왜인들과 함께 항복했음에도 오직 지수신 만이 혼자 임존성에서 버티며 항복하지 않았다. 웅진도독 유인궤가 항복한 두 왕자를 회유해 임존성을 함락시키니 지수신은 처자를 버려두고 고구려로 달아났다.
이때가 663년으로 <일본서기>는 이 해를 백제 멸망의 해로 적으면서 “백제 주유성이 마침내 당나라에 항복했다. 국인이 서로 말하기를 ‘주유(州柔=周留)성이 항복한 일을 어떻게 할 수가 없도다. 백제의 이름은 오늘로 끊어졌다. 조상의 분묘가 있는 곳을 어찌 또 갈 수가 있겠는가”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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