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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정국이 혼란한 가운데 35세의 젊은 야당 국회의장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전국적 시위를 주도해 국제적인 이목이 쏠리고 있다.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지난 21일 새벽(이하 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군인 수 십 명이 총기를 탈취해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국방부에 의해 진압된 후 자국 국민들에게 23일 계획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3일 카라카스를 비롯한 베네수엘라 주요 도시들에서 전개될 반정부 시위의 규모는 젊은 신임 국회의장의 대중적 지지를 확인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후안 과이도 의장은 지난 5일 신임 국회의장으로 취임한 후 마두로 대통령 축출운동에 불을 지펴왔다.
그는 최근 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분명하다”면서 “정권타도, 정부이양, 자유선거다”라고 노골적으로 反마두로 노선을 밝혔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해 올해 1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으나 선거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으로 국내외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미국, 캐나다, 중남미 등 40개 이상의 국가들이 마두로 정권을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전직 버스기사이며 노조 지도자였던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임기 중 경제침체와 하이퍼 인플레이션, 범죄 증가와 빈곤 등 극심한 혼란 속에서 베네수엘라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
이런 상황에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과이도 국회의장이 마두로 대통령 축출을 목표에 두고 중요한 시점에 전국적 시위를 계획했다고 보도했다. 마두로 정권에 대항하는 세력이 힘을 모을 수 있는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21일에는 카라카스에서 수도 방위군 소속 군인 수 십 명이 지역 군 초소를 습격해 총기를 탈취하고 무장한 다른 군인들에게도 동참을 요구한 사건이 있었다. 반란을 즉각 진압해 군인 27명을 체포한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 사건을 단일 사건으로 보고 의미가 확대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과이도 의장은 군인 반란사건 며칠 전 국회에 새로운 법안을 제출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마두로 대통령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킨 군인에게 사면을 약속한다는 내용이다. 이 약속이 군인들의 반란을 촉발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또 군인 반란사건 이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어서 분위기는 과이도 의장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과이도 의장이 불발로 끝난 군인 쿠데타의 불씨를 살려 전국 규모의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베네수엘라는 한때 풍부한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덕분에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알려졌다. 그러나 포퓰리즘 좌파 정권의 선심성 정책으로 국가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현재 최악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경제는 혼란에 빠지고 식량과 의료품 등 물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베네수엘라 국민 300만명 이상이 빈곤과 범죄를 피해 나라를 떠났다. 국제통화기금은 올해도 물가가 급등해서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이 1천만%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3일 진행될 반정부 시위가 빈곤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의 늪에 빠진 베네수엘라를 구하고 과이도 의장에게 정치적 계기를 만들어 줄지는 미지수다. 야권의 주요 지도자들이 현재 마두로 정권에 의해 감금되거나 해외로 나간 상황에서 야권을 결집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타도에 앞장선 군인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과이도 의장의 약속은 그동안 마두로 정권의 탄압에 위축됐던 반대파에게 힘을 불어넣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보도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나서서 과이도 의장에 힘을 실어주는 입장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민주주의 절차 훼손 등의 이유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펜스 부통령은 22일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는 합법적으로 대통령 자격이 없는 독재자다”고 주장하면서 “그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대통령직을 얻은 게 아니며,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둠으로써 권력을 장악했다”고 마두로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2015년 국회에 입성한 과이도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두로 대통령을 비판하고 국회가 대통령의 권한을 보류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사회학자 트리노 마르케즈 교수는 그를 “블랙 스완”이라 부르며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그의 등장을 “환영할만한 서프라이즈”라고 반겼다.
마르케즈 교수는 “어느 누구도 35세 젊은이가 민주적 변화의 열망을 구현해내고 이 나라가 바라던 지도자가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과이도 의장은 현 정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뿐 아니라, 정치를 예술이 아닌 전쟁으로 여기는 야권 세력으로부터도 자신을 보호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과이도 의장이 대중의 관심을 끌어 모으면서 그가 탄압을 받거나 투옥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아졌다. 1958년 민주운동을 주도했던 엔리코 아리스테귀에타 그람코 변호사는 그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어떤 협박도 분명한 목소리로 물리쳐라”고 조언했다. 그는 “전 세계가 당신을 지지하고 보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면서 “운명이 당신 손에 쥐어준 책임을 떠맡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격려했다. 그람코 변호사는 또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말라”고 덧붙였다.
과이도 국회의장이 앞장서고 있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예정된 23일은 베네수엘라 역사상 의미 있는 날이다. 1958년 1월 23일 10년간의 마르코스 페레즈 히메네즈 독재정권이 전국적으로 일어난 대규모 국민궐기로 무너지고 이후 민주주의 정부가 복귀했다.
[박선옥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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