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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 인문역사문화단체인 문화지평 회원들이 모여 사찰고추장 만들기 체험을 했다. 사찰음식문화체험관은 다양한 전시와 체험, 강좌를 통해 한국사찰음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운영하고 있는 사찰음식 복합문화공간이다.
전국 산사 공양간에서 1700여 년 동안 이어온 한국사찰음식의 맛과 지혜를 도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문화지평은 이곳에서 지속적으로 사찰음식 체험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날은 사찰서 스님들이 담가 먹는 찹쌀고추장을 만들었다.
체험은 사찰음식에 조예가 깊은 ‘홍승스님의사찰음식연구회’ 이사장인 홍승 스님이 지도했다. 홍승 스님은 1984년 동화사 부도암에서 출가한 이후 사찰음식 계승과 발전을 위해 정진하고 있는 1세대 사찰요리 전문가다.
불교TV에서 ‘홍승 스님의 자연을 담은 사찰음식’, 푸드채널 ‘풍경이 있는 요리’, BBS ‘테마가 있는 사찰음식’ 등 사찰음식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전남 강진 백련사에서 사찰음식 템플스테이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녹차와 채식>, <홍승 스님의 자연을 담은 사찰음식>, <마음을 담은 사찰음식>, <아이좋아 가족밥상>, <생각보다 쉬운 사찰밥상> 등이 있다.
대표적 사찰음식 1세대…방송·출간 활동 활발
이날 홍승 스님은 엿기름을 걸러 내린 후 불을 가해 삭히는 방법부터 조근 조근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알려줬다. 고추장은 일반적으로 섞는 재료에 따라 보리고추장과 찹쌀고추장으로 나뉜다는 설명과 함께 2시간 동안 시연과 열강을 보여줬다.
엿기름은 단 냄새 나는 것을 골라 망에 넣고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조물조물 주물러 가라앉힌다. 그 다음 찹쌀가루를 넣고 은근한 불로 30분 정도 삭히면 단맛이 올라온다. 홍승 스님은 “계속 졸이면 찹쌀조청이 되고 더 졸이면 찹쌀엿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후 한 김을 날린 후 메주가루, 고춧가루와 섞는다. 이때 고춧가루는 반드시 고추장용을 빻은 고운 것을 사용해야 한다. 완전히 식기 전에 고춧가루를 섞는 것이 팁이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단맛이 좋으면 조청을 섞는다. 가정에서는 고추장이 텁텁해 지면 소주를 넣어 농도를 맞추는 것도 방법이다.
홍승 스님은 간장과 된장 만드는 법도 맛보기로 알려줬다. 조청과 엿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 넘는 현실이다. 고추장, 된장, 간장도 상황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홍승 스님은 전통음식이 전승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아 이날 참가자들과 충분한 교감을 가지면서 체험을 이끌었다.
홍승 스님에 따르면 콩 한말을 삶으면 일반적인 크기의 메주 네 덩이를 만들 수 있다. 이 메주가 푹 잠길 만큼 소금물을 부어 놓으면 나중에 간장이 되고 물렁해진 메주는 약 13kg 정도 된장으로 탄생한다. 이때 소금물은 전날 소쿠리에서 물로 씻어 내려 불순물을 제거한 것을 사용한다.
짧은 시간에 우리 전통음식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스님 마음이 읽힌 시간이었다. 모든 재료를 다 섞고 휘저어 고추장을 안정을 시키는 시간에 스님은 한식 세계화에 대해 어렵게 입을 뗐다.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서 특강 사찰음식 저변 넓혀
“한식세계화에 막대한 예산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전통음식 계승이 먼저입니다. 먹방, 쿡방 때문에 우리 음식문화가 왜곡 되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음식의 맥이 끊어질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하는 차원에서 비교적 강도 높게 한식세계화 정책에 일갈한 것이다. 전주대 식품산업연구소 송영애 교수는 그의 저서 <음식이 정치다>에서 한식 세계화를 이명박 정권의 ‘영부인의 영부인에 의한 영부인을 위한’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그만큼 선심성 예산이 과다하게 편성됐지만 성과는 미미한 총체적 부실 덩어리였다는 것이다.
홍승 스님의 지적은 결이 약간 다르지만 ‘우리 것도 지키기 못하고 있는 데 한식세계화는 언감생심’이란 요지다. 홍승 스님은 재미난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사찰음식 전문 식당을 열고 셰프를 공모했는데 커다란 박스 하나를 들고 왔더란다. 박스를 열어보니 온갖 조미료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셰프에게 오신채를 빼고 음식을 만들어 보라고 했더니 결국 하나도 못하고 그만 뒀다는 일화다. 홍승 스님은 한식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찰음식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신채를 쓰지 않고도 맛을 낼 수 있는 단단한 기본기를 알아야 한식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식이 배신>을 지은 이미숙 식품영양학 박사는 한국 음식이 양념 때문에 재료 본연의 맛을 방해한다는 취지로 ‘갖은양념이 미각을 해친다’는 소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는 우리 음식이 고춧가루 사용을 늘리면서 매운맛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간다고 지적했다.
이는 홍승 스님이 우리나라 기후 변화로 일조량이 늘고 온도가 높아지면서 고추 맛이 ‘사나워지고 있다’는 지적과 일면 상통한다. 매운맛을 많이 찾으면서 위장 계통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또한 극단적인 음식 섭취로 인한 정서적인 부분의 변화 또한 추적관찰 해볼 만한 사안이다.
홍승 스님은 한식과 관련된 부분에서 거침없는 강변을 쏟아냈다. 2017년부터 우리 외식업계에 들어 온 <미쉐린가이드>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남도음식대축제’도 변화를 모색해야 더 활성화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사찰음식도 속세와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홍승 스님이 추구하는 음식 세계는 사찰, 궁중, 반가를 아울러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궁중음식이 조선 후기 음식을 재현한 것이고 상당 부분이 고기음식으로 채워져 있는 등 제한적 고증이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찰음식의 경우 일부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체험객의 입맛을 위해 사찰음식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사찰음식도 기본 흔들…체계화 위한 사찰요리학교가 꿈
홍승 스님은 자신의 음식 철학을 전파하고 사찰음식 대중화를 위해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홍승스님의사찰음식연구소’를 열었다. 연구소는 조리실, 강의실, 실습실 등으로 구성돼 있고 원테이블 ‘도반’을 겸해 운영한다. 스님의 궁극적 목표는 사찰음식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요리영재를 발굴해 이들을 통해 사찰음식을 전문화, 체계화시켜 계승시키는 것이 목표다.
홍승 스님은 평소 “음식은 우리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영향을 끼치므로 아무것이나 또 아무렇게나 먹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아무것이나 아무렇게나 만들면 안 된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홍승 스님은 “음식의 손맛은 만들어지는 것인데 음식은 마음으로 짓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고추장 체험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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