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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재계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세대교체’다. 적극적인 경영활동을 펼치기엔 이미 고령이 된 오너를 대신해 그들의 자녀들이 하나 둘 경영 일선에 등장하고 있다. 기업 경영의 최고 위치에 오르는가 하면 지배구조 또한 후계자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롯데그룹, GS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대림그룹 등 사실상 국대 주요 대기업 대부분이 세대교체를 단행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주요 대기업들의 세대교체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일각의 부정적 시선이 존재하긴 하지만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이 더욱 많은 게 사실이다. 우선 오너 중심의 경영이 이뤄지는 우리나라 기업풍토 상 책임경영 강화에 효과적이다. 기업의 주인 입장에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 등 굵직한 사안을 결정함에 있어 최대한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결론을 이끌어내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윗세대가 피땀 흘려 이룩한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려는 사명감을 어린 시절부터 부여받은 그들이기에 가능한 결과다.
하루가 멀 다 하고 바뀌는 기업경영 트렌드에 효과적이면서도 발 빠르게 대처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대부분의 후계 경영인들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교육을 받고 자란 엘리트인 만큼 세계적인 경영 트렌드 변화에도 민감한 편이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예의주시하고 그룹의 미래먹거리 발굴에 공을 들인다. 조직 운영에 있어서도 국민 여론을 적극 반영한 인사시스템을 구축해 기업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부여하곤 한다.
오너 중심의 경영승계 장점은 이미 몇몇 대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신빙성이 어느 정도 입증된 상태다. 일례로 대림그룹의 경우 오너 3세인 이해욱 회장이 주도한 ‘프리미엄 브랜드 아파트’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우리나라 주택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강남 지역에서는 대림그룹의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 ‘아크로’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크로의 명성은 점차 타 지역으로 확산돼 대림그룹에 ‘명품건설사’라는 이미지를 부여했다.
LG그룹 역시 4세인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이후 도약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구 회장 체제 이후 LG그룹 특유의 순혈주의가 깨지고 외부 인재 영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글로벌 트렌드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인물들을 영입해 수출효자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이어나가겠다는 구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구 회장은 파격적인 휴가제도 도입 등 조직 구성원들의 사기 강화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 밖에 현대차그룹 정의선 부회장,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등 경제거인으로 불리는 이들을 부친으로 둔 후계 기업인들도 기업 경영 전면에 등장해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그룹의 미래먹거리 발굴 및 조직문화 개선 등을 적극 주도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두 기업을 이끄는 만큼 사회공헌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문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부 대기업에서는 세대교체가 이뤄진 이후에도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조직 내에서는 물론 외부에서도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온다. GS칼텍스가 대표적이다. 오너 중심 체제가 공고하기로 유명한 GS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이곳은 타 계열사와 마찬가지로 창업주 후손들에 의해 경영승계가 이뤄졌다. 특히 GS칼텍스는 계열사 중 처음으로 오너家 4세가 대표에 올랐다. 주인공은 ‘한국의 오일왕’이라 불린 허동수 회장의 장남 허세홍 사장이다.
그동안 그래왔듯 허 사장 역시 부친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경영권을 물려받았지만 기존과는 달리 기대보다는 우려 섞인 시선을 받고 있다. 여타 기업에서 나타난 세대교체의 장점이 표면화되지 않고 있어서다. 허 사장은 이해욱 대림그룹 회장과 같이 경영의 최전선에 등장하기 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GS칼텍스 수장에 오르기 직전 경영을 맡았던 GS글로벌만 해도 지난해 그가 이끄는 동안 오히려 당기순이익(잠정)이 뒷걸음질 쳤다.
신사업 부분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허 사장은 너무 신중한 태도로 GS칼텍스 앞날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심지어 그는 “신사업 추진에 고민이 많다”며 “사업구조를 바꾸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사안인 만큼 천천히 길게 보고 가겠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신중함이 나쁘진 않지만 젊은 오너 특유의 패기나 미래비전이 없다는 점이 다소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GS칼텍스 안팎에서 나온다.
대대적인 조직구조 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허 사장은 GS칼텍스 이전에 GS글로벌 수장을 역임했지만 당시에도 조직개편에 있어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같은 적극적인 외부인사 영입도 실시하지 않았다. 젊은 오너가 이끄는 기업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남성 중심의 고용 행태도 여전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GS글로벌은 전체 구성원 중 남성 비중이 80%에 육박한다.
허세홍 사장의 임기 초 행보는 어려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LG그룹, 대림그룹 등의 노력에 힘입어 오너 중심의 경영승계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현 상황에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스기도 하다. 젊은 오너만이 해낼 수 있는 미래비전 설계와 잘못된 관행 타파 등의 과감한 개혁 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대교체가 형식적인 ‘부의 대물림’으로 비춰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허 사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형식적인 공장·현장 답사론 차기 경영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본인만이 펼칠 수 있는 과감한 경영 행보를 보여야 한다. 현재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판도 변화로 기존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의 하락세가 예상되는 만큼 주변의 우려를 종식시킬만한 과감한 대책도 내놔야 한다. 허 사장의 취임 초기 행보는 그저 그런 금수저가 왕관을 물려받은 모습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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