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호헌조치 맞먹는 황창규 자리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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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기자페이지 + 입력 2019-02-25 00:01:23

임기를 1년여 앞둔 황창규 회장의 퇴진 여부가 국민적 관심사로 등극한 지 오래다. 지난달 황 회장이 직접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 3월로 예정된 임기에 맞춰 퇴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퇴진 요구는 사그라들지 않는 모습이다. 그의 발언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하겠다는 식으로 해석돼 반감만 더욱 키우고 있다. KT그룹을 둘러싼 각종 부정적 이슈와 그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상관없다는 의미로 비춰진다는 시각이 많다.

KT그룹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논란과 여파로 황 회장 퇴진 요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거세지고 있다. KT그룹과 황 회장을 둘러싼 논란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연루 논란부터 시작해 불법정치자금 제공 의혹, 아현지사 화재로 인한 관리부실 논란, 조직 내 제 사람 심기 논란 등 헤아리기 힘든 만큼 다양하다. 더욱이 최근에는 불법파견 논란에 까지 휩싸여 친노동을 지향하는 문재인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KT새노조·KTs노조(이하·KT노조)는 지난 14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KT 본사가 자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불법파견을 자행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들은 “KT는 불법파견 피해자들을 즉시 직접 고용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고용노동부 본청에 KT를 상대로 한 불법파견에 따른 직접고용 명령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와 함께 불법파견 정황이 담긴 증거물도 함께 전달했다.

황 회장은 이번 KT의 불법파견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KT노조는 불법파견을 시도한 이유가 황 회장의 실적우선주의 때문이라고 봤다. 황 회장은 지난 2014년 취임 후 희망퇴직을 시도해 약 8000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을 내보냈다. 현재 KT 본사 직원은 2만여명이 조금 넘을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KT 관련 업무 종사자는 5만여명을 훌쩍 넘는다. KT본사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상대적으로 연봉이 적은 자회사 인력을 활용한 결과다.

친노동을 지향하는 정부 정책에 역행하는 이번 논란으로 황 회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심리적 거리는 더욱 멀어지는 모습이다. KT그룹이 현 정부로서는 다소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잡음을 일으킨 게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인사와의 부적절한 관계, 한나라당(현·새누리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피해를 야기한 아현지사 화재 등 대부분의 사안들이 그랬다.

황 회장과 대통령·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는 국가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심각한 문제로 평가된다. KT그룹은 우리나라 정보·통신 산업 분야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산업은 초연결로 귀결되는 4차 산업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분야로 지목된다. 4차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인데 모든 과정은 정보·통신 기업들과의 협조 없인 불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황 회장의 ‘임기를 채우겠다’는 발언은 과거 군부정권의 ‘호헌조치’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당시 호헌조치는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정면으로 대치됐다는 점에서 범국민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약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잘 먹고 잘 사는 경제적 여유와 국가경제 성장이 국민들의 염원으로 자리매김 했다. 황 회장은 거듭된 논란으로 결국 국가경제 피해 우려까지 일으키고 있음에도 임기 만료를 고수하고 있다.

국민 정서와 역행하고 결국엔 국가적 피해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황창규의 임기만료 고수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헌조치는 비교대상으로 삼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호헌조치는 국민 요구에 밀려 짧은 기간에 폐지된 데 반해 황 회장은 임기만료 고수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황 회장은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거듭된 논란으로 사태가 더욱 악화되기 전에 서둘러 결단을 내려야 한다. 설령 임기를 채우는 게 경영인으로서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좀 더 크게 보고 다시 판단해야 한다. 시각을 넓혀 국민과 국가, 후손들을 위하는 게 대한민국 대표기업의 수장으로서 가장 명예로운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KT 정기주총까지 약 한 달여가 남았다. 새로운 수장 후보를 선정하고 검증 절차를 밟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황 회장의 대승적 결단을 기대한다.

김신 s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