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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현상을 보고평가하는데 있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칫 균형을 잃으면 이성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감성으로 치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다시 칠천지원수라도 된 듯 서로 막 나간다. 이러다가 그만 두겠지 하고 지켜보고 있지만 부정적인 쪽으로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가면 되돌아오는 데도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이에는 양국 정권의 특성에서 기인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전후 일본에서 생겨난 가장 우경화된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태생적으로 정치·경제적 ‘일본의 부활’을 기치로 침체한 일본의 재건이라는 강한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두면서 최장수 장기집권이라는 가도를 닦아가고 있기도 하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 더 접근하는 좌파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사 문제 등 현안에 대헤서 보다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쉽게 부딪힐 수밖에 없는 양 극단의 성향을 지닌 두 정권인 셈이다.
지난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 정부나 국민은 공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부침을 거듭해 오고 있다. 한동안 과거를 두고 날선 공방을 하다가 또 한동안은 미래를 두고 서로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때론 양국 국민들조차도 헷갈릴 정도다.
특히 정치판에서 표를 의식하여 이런 상황 연출을 한 적도 있다고 생각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1995년 당시 김영삼 정부는 해방 50주년을 맞아 “일본의 버릇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통 큰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발언이나 행위를 하면 상당수 국민들이 좋아한다. 잘 나가는 일본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었다고 시원해한다.
이어 등장한 김대중 정부는 1998년 당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하여 또 한번 어리둥절케 했다. 다음 세대들을 위해 과거보다 미래로 향해 나아가자는 취지였다. 실제로 그 때부터 문화콘텐츠의 교류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우려와 달리 우리 한류가 일본에서 더 큰 인기를 누리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양국 집권 정치인들의 성향에 따라서 외교적으로 친밀해지기도 하고, 소원해지기도 하는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그나마 경제는 정치와 무관하게 꾸준히 원만한 교류를 유지해 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변화가 크다.
한 때 우리의 2∼3위 수출 시장이던 일본이 최근에는 5위로 내려앉아 관심도가 많이 떨어져 있다. 반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는 200억 달러 이상의 기조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의 주력 수출 상품인 자동차, 전자, IT 등이 여전히 일본의 핵심부품에 의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본으로부터 수입이 되지 않으면 당장 곤란을 겪어야 하는 수출업체들이 아직도 많다. 그만큼 양국 산업 구조가 밀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 일본 정부가 반도체 웨이퍼의 세정과 식각 공정에 사용되는 불화수소 수출 중단을 언급하기도 해 산업계의 긴장을 조성하기도 했다. 우리로부터 완제품을 다시 수입하는 일본 기업의 입장도 어렵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우리가 더 큰 피해를 입을 공산이 크다. 이 품목은 일본이 전 세계 생산의 90%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다.
즉흥적·시대착오적 꼼수 지양, 긴 안목과 성숙된 자세를 가져야 진정한 극복 가능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한국 관광객의 일본 방문 러시이다. 작년 한 해 방문객이 사상 최고치인 무려 750만 명이나 되었다. 양국 간의 냉랭한 정치적 분위기도 이 부문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가성비도 좋고 매력이 있어 생겨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 이를 막을 별 도리가 없는 것 같다.
반면 일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은 292만 명으로 평소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와중에 친일 잔재를 청산한답시고 일본 전범(戰犯) 기업 제품에 딱지를 붙이거나 불매를 하겠다는 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친일 혐의 작곡가가 작곡한 교가(校歌) 혹은 도가(道歌)에 더하여 도로 명도 바꾸겠다는 학교나 지자체가 나온다.
이들을 탓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일 정도이지만 가만히 놔두고 보기에게는 낯짝이 화끈거린다. 우리 사회의 일본 극복 수준이 시간이 지나도 유아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을 넘어서려면 실질적으로 일본보다 우위에 서는 긍정적인 방식으로 가야한다. 일부 한국 IT·전자 업체들이 일본 상품을 능가하는 품질이나 가격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전후 제국주의와 패권주의 시대의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나라들이 희생양이 되기도 했고, 씻지 못할 고초를 겪기도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로서 말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용서할 수 없고, 천추의 한이 되고 있기도 하다.
가해자 중에는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편으론 가해자를 용서하면서 서로 껴안고 미래를 향해 진군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피해를 당한 국가나 국민들이 가해 국가를 극복하는 과정이나 방법에 다소 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다. 우리의 경우를 보면 다른 피해국들보다 더 날카롭고, 예민하다. 받은 상처가 더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국과 대만을 보면 우리보다 더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고, 베트남은 매우 실리적인 접근을 한다. 유럽의 피해 국가들은 아픔을 내면적으로 치유하면서 진정한 극복을 위해 자중자애 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느 편이 더 낫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지나치게 함몰되다 보면 미래에 족쇄가 될 수 있다.
어떤 것이 더 현명한 극복인지는 상당수 피해국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툭 하면 터져 나오는 싸구려 민족주의, 친일 프레임으로 민초들의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망국적 정치 술수는 근절되어야 한다. 국익이나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더 성숙된 큰 틀의 일본 극복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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