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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언충은 고구려가 900년이 못 되어 80세 장수에게 망할 것이라는 <고리비기(高麗秘記)>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고씨가 한(漢)으로부터 나라를 지녀 지금 900년이 되었고 이적의 나이가 80세라고 하면서 이번 원정이 마지막 요동정벌이라고 고했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가언충의 “고씨가 한으로부터 나라를 지녀 지금 900년이 되었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668년 고구려 멸망으로부터 900년 전은 기원전 232년으로 북부여의 해모수가 5가에 의한 6년간의 공화정을 끝내고 단군이 되어 직접 통치를 시작한 해이다. 당시 중국은 진왕 정(진시황)이 통일을 이루기 11년 전이라 한나라가 세워지기 30년 전이며, 유방은 한왕에 책봉되기도 전인 15살 소년이었다. 따라서 한(漢)이 아니라 진(秦)이라고 했어야 옳은 것이다.
당 고종이 “요동정벌에 나간 여러 장수들 중 누가 가장 현명하오”라고 다시 물으니 가언충은 “용감하기로는 설인귀가 가장 으뜸이고, 방동선은 비록 전투를 잘하지는 못하나 군기 유지가 엄정하고, 고간(高侃)은 스스로 부지런하고 근검하게 처신하며 충성스럽고 과단성이 있으며 지모에도 뛰어납니다. 계필하력은 침착하고 의연하며 단안을 내릴 수 있으니 통솔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들 그래도 밤낮으로 조심하며 자기 몸을 잊어가며 나라를 걱정하는 데에는 모두 이적을 따라가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린 고구려
668년 봄 고구려의 연남건이 빼앗긴 부여성을 구원하기 위해 다시 5만 명의 군사를 보냈는데, 설하수(薛賀水)에서 이적 등과 마주쳐 싸우다가 패해 3만여 명이 전사했다. 나아가 이적은 대행성(大行城)까지 함락시켰다. 설하수와 대행성은 잘 안 나오는 지명들이라 그 위치를 알 수는 없으나, 고구려의 최후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어 <삼국사기>에는 “여름 4월 혜성이 필(畢)성과 묘(昴)성 사이에 나타났다. 당나라 허경종이 ‘혜성이 동북방에 보인 것은 고구려가 장차 멸망할 징조이다’고 말했다”라고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반해, <자치통감>에는 약간 다르게 추가로 기록된 문구가 있어 당시 천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준다.
“4월 2일 혜성이 오거(五車) 별자리에 보였다. 황상이 정전(正殿)을 피하고 평상시보다 음식을 줄이고 음악도 철폐했다. 허경종이 ‘혜성이 동북방에 보였다는 것은 고구려가 장차 멸망할 징조입니다’라고 말하니, 황상이 ‘짐이 부덕해 하늘에서 견책을 보인 것인데, 어찌 작은 이적(夷狄=고구려)에게 허물을 돌리겠는가? 또 고구려의 백성도 짐의 백성이다’라고 말했다. 14일에 혜성이 없어졌다”
필숙(畢宿)에 속하는 오거는 오황(五潢) 또는 오성(五星)을 공유하는데, 수성(고명, 辰星), 금성(明星), 화성(형혹, 荧惑), 목성(歲星), 토성(鎭星)을 말하는 것이다. 참고로 현재 중국의 국기가 오성홍기(五星紅旗)이다. 또한 오거는 고대 최고통치자가 탔던 5량의 마차 중 제1마차인 융로(戎路)를 말하는 것으로 일인자 즉 천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한 동북방에 있는 일인자(고구려) 별자리에 혜성(당나라)이 침범했기에 허경종이 고구려가 장차 망할 징조라고 한 것인데, 당 고종의 이상한 행동과 말을 기록함으로써 마치 당시 천자처럼 보이게 위장한 것이다.
이적이 대행성에서 승리하자, 여러 방면으로 출동했던 모든 당나라 군대가 이적과 만나 압록책(鴨淥柵)으로 진군해왔다. 고구려 군대가 대적해 싸우다가 대패해 달아나자 이적이 200여 리를 추격해 평양성 근처에 있는 욕이성(辱夷城)마저 함락시키니, 고구려의 여러 성에서는 숨고 도주하고 항복하는 자들이 줄을 이었다. 선봉에 선 연남생이 엄청난 효과를 내고 있었다.
드디어 계필하력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 밖에 도착했고, 이적의 군대가 뒤따라와서 한 달이 넘도록 평양성을 포위했다. 고구려 보장왕은 연남산을 사자로 보내 수령 98명을 대동하고 백기를 들고 이적에게 와서 항복하겠다고 전하니 이적은 예로써 이들을 대했다. 그러나 연남건은 오히려 성문을 굳게 걸고 성을 지키며 자주 군사를 내보내 싸웠지만 모두 패했다.
668년 9월,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이 함락되는 순간이었다. 평양성의 건물이란 건물은 4개월간 완전 전소되었으며 수천 년간 축적되었던 숱한 역사와 기록들이 모두 한 줌의 재로 변하고 중요한 것은 중국에게 빼앗기는 장면이다. 이것이 바로 당나라에 의한 분서갱유로 이때부터 우리의 찬란했던 역사가 미천했던 중국의 역사로 둔갑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연남건이 신임했던 승려 신성도 결국은 연남생과 내통해 평양성문을 열어 조국을 배반하게 된다. 연남생 묘지명에도 신성이 저지른 역적행위가 새겨져있다. “공은 기름진 땅을 피로 물들일 일을 안타깝게 여겨 몰래 은밀한 계략으로 구하려 했으니, 마침내 승려 신성 등과 안팎으로 상응했다. 조성(趙城)을 함락시켜 깃발을 빼앗았는데 어찌 한신(韓信)의 군대를 수고롭게 할 것인가. 업의 성문이 열림은 원담(袁譚)의 장수들이 스스로 초래한 일인 것이다”
연남생의 반역행위는 후한 말의 세력가 원소(袁紹)의 장남인 원담과 비유되곤 한다. 원소가 3자 원상을 후계자로 삼고 죽자 원담은 동생과의 골육상쟁을 계속했다. 이에 유표가 화해를 중재했으나 둘 다 거부했다. 동생과 싸워 계속 패한 원담은 부친의 원수인 조조를 끌어들여 원상을 쫓아내는데 성공했으나, 이후 조조가 원담을 공격해 죽이는 과정에서 도성 업의 성문이 열린 것은 스스로 불러들인 일이라는 것이다.
신성과 같이 표리부동한 돌중에게 평양성 수비의 중책을 맡긴 것을 보면, 연남건은 군을 통솔하는 총사령관으로서의 자질도 안목도 없었던 인물로 보인다. 여하튼 대막리지의 핵심참모가 마지막 순간에 변심함으로써 연남건은 생포되었고 고구려의 사직도 끝나버린 것이다. 그러한 역적 신성과 내통해 그의 마음을 움직인 자가 바로 대역적 연남생이었던 것이다.
구역질나는 연남생묘지명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평양성이 저절로 함락되자) 보장왕과 남건 등이 다 포로가 되었으며, (고구려의) 높은 산과 깊은 바다가 함께 (당나라의) 경계로 들어왔고, 5부와 삼한이 모두 신첩(臣妾)이 되었다. 결국 능히 의를 세우고 은혜를 끊음은 정백(鄭伯)이 준걸(儁傑)을 얻었던 것과 같으며, 화(禍)를 도리어 복(福)으로 만든 것으로 기자(箕子)가 공을 이루었던 것과 유사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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