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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박선옥·김진강 부장, 이한빛·배태용 기자] 정부와 일부 지자체가 돈벌이를 위해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제침탈의 상징인 건물들을 문화재로 지정해 관광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민족의 아픔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배제한 채 건축학적 가치를 조명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서다. 특히 사업을 위해 수백억원의 혈세를 투입한 사실은 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적산가옥들의 문화재 지정을 반대하는 글이 수백 건 올라오는 등 논란은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적(敵)이 소유했던 주택’이란 의미의 적산가옥은 일제강점기 수탈한 쌀과 물자들의 일본 이송이 용이했던 항구 도시에 집중돼 있다. 목포와 군산 등 민족수탈의 창구로 이용되던 지역에 특히 많다.
문화재 포장돼 돈벌이 도구로 전락한 목포시 민족수탈의 현장들
전라남도 목포와 전라복도 군산은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이 유독 활발하게 펼쳐졌던 곳이다. △1919년 4월 8일 목포 양동교회의 기독교인들과 정명여학교·영흥학교 학생들, 박상렬 등 상인들이 주도한 목포 만세운동 △1921년과 1929년 정명여학교·영흥학교·목포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 △목포청년회의 항일운동 △군산 임피장터 만세운동 △옥구 소작쟁의 항쟁 △10여년에 걸친 군산 정미소 거리 미선공들의 항쟁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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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김윤화 기자] ⓒ스카이데일리 |
현재 목포시는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남아 있는 문화재를 이용해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조성 중이다. 목포 유달초등학교에서 옛 호남은행 목포지점까지 약 1.4km 거리를 중심으로 조성되는 근대역사문화공간에는 일제강점기 △목포 일본영사관(현 목포근대역사관 1관) △동양척식주식회사목포지점(현 목포근대역사관 2관) 등이 있다.
또 △호남은행 목포지점(현 목포문화원) △목포공립심상소학교(현 유달초등학교) △목포부청 서고 및 방공호 △동아부인상회 목포지점 △목포화신 연쇄점 △목포부립병원 관사 △목포 일본기독교회 △붉은 벽돌창고 △일본식가옥 △일본식 상가주택 등도 자리하고 있다.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에는 근대건축물 매입, 등록문화재 개보수 및 복원, 문화공간 거리 정비, 관람안내 편의시설 설치 등의 목적으로 약 500억원 가량 예산이 투입된다.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과 적산가옥 중심으로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사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8월 일본식 가옥과 상가주택 등 16곳이 동시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사업은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등록문화재는 시설복원과 보존에 필요한 경비를 국가가 지원한다. 목포시 관광과 김만수 책임관은 “근대문화역사공간에 대한 정비와 보존관리를 위한 사업을 체계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간판정비, 도로정비, 근대건축물들의 파손·훼손된 부분의 복원 등을 통해 근대역사문화거리가 조성 되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며 “근대문화역사를 탐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한편 국내 건축학계와 여행업계를 대상으로 한 홍보를 통해 관광객 유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 사업이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이곳은 현재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임시관광안내소에서 만난 인근 동명동 주민 김여옥(여·52·가명) 씨는 “지난 설 연휴에 1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많이 찾아온다”며 “주말에는 지역주민들이 나서 관광가이드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곳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두고 비판 섞인 반응을 보이는 목소리가 적지 않아 주목된다. 관광객 유치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민족수탈의 현장과 독립운동의 산실인 목포의 역사성은 외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족자원 수탈과 토지강탈의 상징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식민통치기구인 일본영사관,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방공호 등에는 건축적 가치와 건축물의 사용 용도만 설명돼 있을 뿐 민족수탈에 대한 실증적 사실 한 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일례로 근대문화역사공간 조성지역 내에는 목포 항일운동의 흔적은 물론 기념비 하나 보기 어렵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 역시 목포의 근대시기 건축물과 문화에 대한 소개가 주를 이루고 있다. 독립운동 관련 공간은 3.1운동 당시 학생들의 의복을 입고 만세운동을 체험하는 곳 뿐이다. 적산가옥들이 무더기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것과 달리 독립운동 관련 지정 문화재는 목포청년회관 1곳에 불과하다.
민족수탈의 산실 군산 근대역사문화거리 역사적 아픔 온데 간데
전라북도 군산시가 추진 중인 근대역사문화거리는 일제강점기 민족수탈 기관들이 모여 있는 해망로 일대부터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까지 약 1km에 걸쳐 조성돼 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쌀을 수탈해 간 일제의 대표적 수송기지였다. 근대역사문화거리에는 근대식 건물인 △군산세관 본관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 △일본18은행 군산지점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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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김윤화 기자] ⓒ스카이데일리 |
근대역사문화거리로부터 약 700여 미터 떨어진 신흥동은 일제강점기 부유층 거주 지역이었다. 그곳에는 당시 포목점을 운영하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히로쓰 가옥’이 남아있다. 일본인 지주들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어 민족수탈의 역사적 아픔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으로 평가된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군산시는 근대역사문화거리를 명실상부한 지역대표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근대시설물을 중심으로 한 테마단지 조성 △볼거리 위주의 기획전시 진행 △근대문화 복합공간 조성 등을 추진 중이다. 목포의 근대문화공간 사업과 마찬가지로 관광 사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8월 군산세관 본관을 비롯해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 △군산 내항 호안시설 △군산 내항 철도 △구 제일사료주식회사 공장 △구 조선운송주식회사 사택 △구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 관사 등 8곳이 동시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근대역사문화거리 사업은 한층 더 탄력을 받고 있다.
등록문화재 관련예산도 늘어날 전망이다. 201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식량단군산출장소의 경우 지난 2017년 구조보강과 보수사업에 7억원, 2005년 신흥동 일본식 가옥의 목조문화재 충해예방에 1500만원 등이 소요됐다. 지난해 새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8곳 또한 구조보강과 보수사업이 불가피하다.
군산시 관광진흥과 곽동근 계장은 “박물권역에 있는 근대역사문화공간권역과 히로쓰 가옥이 있는 경관권역을 양대 축으로 해서 탐방로 혹은 경관로를 일정 부분 만들어 놓은 상태다”며 “지속적인 역사·문화 공간 발굴을 통해 두 권역을 연결하는 공간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곳 역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과 마찬가지로 문화재적 가치만 조명될 뿐 문화재가 가진 내력이나 역사적 사실은 배제된 모습이었다. 근대역사문화거리에서는 △일제에 항거한 군산 의병투쟁 △영명학교 학생 등 수만 명이 참여한 3.1만세운동 △군산항 노동자들과 소작농들의 항쟁 등 군산지역의 일제항쟁과 독립운동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족수탈의 현장인 건축물 안내물에도 일제침탈의 역사보다는 근대건축양식 소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목포와 군산의 근대역사문화 사업과 관련해 일제 침략을 기억하고 항일역사를 조명하는데 우선가치를 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민족을 수탈한 건축물들과 적산가옥들은 도시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일제가 침탈을 목적으로 만든 건축물들은 역사의 기억으로 남겨놓아야 한다”며 “후대까지 일제 침략의 아카이브(기록보관소)와 건물의 자산으로 나뉘어 보존할 필요는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일제강점기 기록을 지워버리면 일제침략의 근거를 잃게 되는 셈이다”며 “침략의 역사를 기억하는 차원에서 남겨놓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위원회 근대분과 위원인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도시역사나 공간구조측면에서 중요한 만큼 등록문화재가 있는 전체 공간을 진정성 있게 보존하자는 것이 취지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일제강점기 지어진 근대 건축물들은 건축물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경우가 있고 그 건물에서 일어난 역사의 가치가 중요한 경우도 있다”며 “목포의 일본 영사관은 도시의 역사, 일본의 침탈역사면에서 도시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적산가옥과 일제강점기 건축물들의 관광 상품화와 관련해 “일제강점기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으로 활용돼서는 적절치 않다”며 “단순히 일제강점기 시절 ‘이렇게 먹고 살았구나’식의 생활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로서 활용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김진강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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