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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수도권 평양냉면 면옥 투어를 2월부터 5월까지 매달 한번씩 3회에 걸쳐 다닌다. 올 테마는 <미쉐린 가이드 2019> 빕 구르망에 오른 평양냉면 집과 2020에 선정될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했다. 지난 21일 2회차 강북지역으로 우래옥(본점), 필동면옥, 만포면옥 등을 둘러봤다. 서경도락은 마포점도 있지만 강남 도산대로 본점이 평냉 마니아들 사이에서 빕 구르망에 근접해 있는 곳으로 언급된다. 그래서 투어를 서경도락 강남점에서 마무리했다.
하루 네다섯 곳 평냉 투어를 다닌다고 하면 많이들 놀란다. 그 많은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고. 평냉 집 투어는 요령이 있다. 가는 곳 마다 1인1면은 언감생심이다. 냉면뿐만 아니라 제육, 만두, 반대떡 등 사이드 메뉴도 맛보기 때문이다. 이동거리가 짧아 1시간 당 한 곳을 방문하다 보니 위장 압박이 대단하다. 때문에 적당히 시켜서 요령껏 나눠 먹는 게 정답이다. 중요한 것은 점심시간과 맞물린 집에서는 1인1면 하는 게 매너다.
오전 11시 반 필동면옥은 이미 적당히 차 있다. 평양냉면에 대한 매력을 알게 해준 집이다. 연기자 선우용녀 씨가 단골이다. 십 여 년 전 하루는 모 방송사 뉴스 생방 출연 후 필자와 점심을 필동면옥에서 먹었다. 필동면옥 건물에 딸린 주차장은 늘 만원이다. 대여섯대 정도 밖에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우용녀 씨는 면옥 앞 건물 수위 아저씨와 안면이 있는지 적당히 지정된 자리에 편히 댈 수 있었다.
그날 필자를 사로잡은 것은 평양냉면 보다 어슷하게 썰어 내온 제육 반 접시였다. 면이 나오기 전 소주 한잔을 곁들이며 선주후면 할 수 있는 삶은 돼지고기. 은은한 단맛의 꼬들한 식감이 주객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요즘은 반 접시가 사라져 원성이 대단하다. 둘이가면 한 접시를 먹기가 부담스럽다. 양도 양이지만 가격이 냉면 두 그릇 가격을 웃돈다.
제육 반접시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필동면옥 측은 한 접시 시켜먹고 반 접시 먹었다는 손님들과 실랑이가 하기 싫어 아예 메뉴를 하나로 통일했다고 한다. 일면 이해는 가지만 혼냉족과 두 명 정도 갔을 때 시켜 먹던 반 접시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반 접시 부활을 기대해 본다.
필동면옥, 제육 반 접시 사라져 아쉬워
필동면옥 냉면도 특이하게 고춧가루를 뿌려 내온다. 의정부 평양면옥 계열의 가장 큰 특징이다. 사진만 봐도 어느 집 냉면인줄 알 정도다. 간혹 고춧가루 양이 너무 많아 육수가 시뻘겋게 나올 때도 있으나 큰 흠은 안 된다. 쪽파를 종종 썰어 흩뿌린 것 역시 특징. 지난해 쯤 주방을 크게 공사한 이후 육수 맛이 안정을 찾은 느낌이다.
우래옥은 평냉의 맏형 격이다. 평양에서 명월관을 운영하다 1945년 월남한 장원일 씨(1972년 작고)가 주교동의 한 적산가옥을 사들여 우래옥이란 간판을 달았다. 지금 주차장이 옛 우래옥이 있던 자리이고 1988년 주차장 앞에 2층 건물을 세운 게 지금의 우래옥이다.
우래옥 육수는 한우 좋은 부위를 삶아 내는 게 특징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우 등심, 설도, 우둔을 적당히 섞어 4~5시간 푹 삶아 육수를 낸다. 면은 메밀 7할에 전분을 섞는다. 면이 매끈하고 찰기가 적당히 있는 이유다. 언제부턴가 메밀 100% 순면이 사라졌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가 저조한 탓도 있지만 전반적인 입맛이 메밀에 적당한 전문이나 밀가루를 섞은 배합면 쪽으로 기운 탓도 있다. 그럼에도 찰기 없이 끊어지는 메밀의 매력을 좋아하는 순면 마니아 층도 제법 존재한다. 현재 서울서 순면 평냉을 맛볼 수 있는 곳은 봉피양(1만7000원)과 서경도락(1만원) 뿐이다.
유서 깊은 평냉 집 대부분이 그렇듯이 남포면옥 역시 월남한 실향민이 만든 집이다. 진남포서 내려 온 곽봉순 할머니가 1960년 대 무교동에 처음 문을 열었다. 현재 다동 점포도 한 오십년 쯤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옥 두 채를 이어서 안으로 들어가면 무척 넓다. 양지 육수에 날짜별로 담근 동치미를 섞어 낸다. 육수가 일반적인 평냉 집과는 다르다. 향신료로 쓰이는 채소 한 가지 맛이 도드라진다. (독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맞춰보기 바란다.) 그래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집이다. 과거엔 놋그릇을 썼는데 요즘은 우래옥과 같이 하얀 백자그릇에 담아낸다.
유서 깊은 평냉집 대부분 강북에 포진
강북이 평냉 터줏대감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북쪽이 고향인 실향민들이 서울에 터를 잡았는데, 1950년대 만 해도 강남이 개발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강북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사대문 안 시내 쪽에 주로 자리를 잡았다. 중구와 종로구에 평냉 집이 몰려있는 이유다. 실향민들은 한국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삼팔선과 휴전선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장사를 했는데 평냉 집도 그 중 하나다.
강북에는 이들 외에도 을지면옥, 평양면옥, 만포면옥, 서북면옥, 배꼽집, 동무밥상 등이 지역에서 강자로 호령하고 있다. 다만 맛의 편차와 내공이 틀리다. 을지면옥은 같은 계열 필동면옥이 이미 빕 구르망에 선정됐기 때문에 다소 기운 빠진 상황. 평양면옥은 빕 구르망 전 단계인 ‘더 플레이트’에 선정됐다.
더 플레이트는 “장충동 평양면옥은 유난히 맑고 투명한 이 집의 냉면 육수는 은은한 육향을 품고 있으며,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라며 “냉면 외에도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는데 만두소를 푸짐하게 넣은 평양식 손만두와 얇게 썰어 따뜻하게 내오는 제육도 인기 메뉴”라고 선정 이유를 적고 있다.
한편 지난달 강남지역 평냉 집을 다니면서 놓친 곳이 있다. 강북 마포에도 지점이 있는 서경도락이다. 원래 마포점이 평냉을 먼저 시작했는데 이제는 본점이 마니아들에게 강남 평냉 성지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서경도락은 후발주자지만 고유의 평냉 맛을 잘 잡은 집이다. 필자가 강남에서 가장 애정하는 평냉집으로 꼽은 이유는 흔들림 없이 유지되는 육수 맛과 메밀 순면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1만원에. 곧 가격 조정이 있을 듯 하지만 그리 큰 폭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대신 배합면을 도입해 보편적 입맛의 평냉 마니아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계획이라 올 여름 귀추가 주목된다. 이 집은 수육보다 평양식 직화 불고기가 냉면과 함께 잘 팔린다.
꽃샘추위가 지나면 본격적인 춘삼월이다. 날이 더워지면 시원하면서 보양이 되는 음식을 찾기 마련이다. 물론 이열치열 음식도 인기가 높아진다. 동물로는 닭이 여름이면 수난이고 곡물로는 메밀도 많이 팔릴 때다. 겨울 평냉은 향긋한 메밀향으로 먹는다지만 여름에는 짭짤한 저온 육수의 쩡함을 즐긴다. 육향 그윽한 육수와 메밀이 곧 한여름 보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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