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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백제를 패망시킨 당나라의 총감독은 80살 먹은 장수 이적이 아니라 바로 당시 고종의 왕후였던 무측천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늘이 내렸다는 그녀의 명석한 두뇌와 냉철한 판단력과 강력한 추진력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 점은 궁녀의 신분에서 최고통치자까지 권력을 잡아갔던 그녀의 집권과정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궁궐로 돌아와 고종의 총애를 받은 무측천은 655년에 자기 딸을 목 졸라 죽이고는 조금 전에 다녀간 왕후 왕씨가 저지른 소행이라고 뒤집어씌워 왕후 왕씨와 소숙비를 제거하고는 왕후에 책봉되었다. 이후 자신의 정치세력을 확고하게 구축한 무측천은 이듬해 유씨 소생의 태자 이충을 폐위시키고 대신 자신이 낳은 5살짜리 장남 이홍(弘)을 앉혔다.
이런 그녀의 전횡을 보다 못한 고종이 재상 상관의를 은밀히 불러 무왕후의 폐위를 논의했으나, 심복들이 이를 밀고해 이충과 상관의는 대역죄로 몰려 처형되었고, 고종은 상관의에게 모든 책임을 미룸으로써 간신히 몸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당나라의 실질적인 주인은 무측천이었고, 고종은 실권 없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간질 증세가 있던 고종은 660년부터는 아예 정무결재권을 무왕후에게 위임해버렸다.
당 고종은 어려서부터 어질고 총명하고 겸손하고 대소신료들로부터 신임도 두터운 태자 이홍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태자는 옳은 일이라면 직언도 서슴치 않는 등 어머니의 뜻을 자주 거스르게 되고 이에 정치적 위기감을 느낀 무측천이 675년 태자를 독살했다. 자신의 입지확보를 위해서는 자기가 낳은 자식을 둘이나 죽이는 모진 여자였다.
대신 태자가 된 차남 이현(賢) 역시 죽은 형 이홍 못지않게 총명해 아버지 당 고종이 총애했다. 이에 무측천은 이현에게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680년에 폐출시키고는 멀리 유배를 보냈다가 자살을 강요했다. 이현은 무측천이 낳은 자식이 아니라 언니 한국부인의 소생이었다. 당 고종을 독점하려는 무측천의 권력에의 집착과 질투는 언니까지 죽였다.
무측천은 자신의 셋째 아들 이현(顯)을 새 태자로 삼았다. 그는 형들과는 달리 유약해 어머니의 말에 절대 순종하는 타입이었다. 683년에 당 고종이 죽자 태자 이현이 보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중종이다. 그런데 부인 위(韋)씨가 시어머니 무측천처럼 되고픈 정치적 야망 때문에 왕후가 되자마자 친정아버지를 문하시중이라는 요직에 기용하려 했다.
이에 심기가 뒤틀어진 무측천은 대노하며 왕후 위씨는 물론 아들까지 용서치 않아 중종을 폐하고 넷째아들 이단(旦)을 즉위시키니 이가 바로 예종이다. 이후 무측천은 실권을 완전 장악했고 모든 정사를 직접 관장했다. 군사적인 봉기도 없지는 않았으나 모두 제압함으로써 자신의 황제 즉위에 대한 장애물을 모조리 제거했다.
690년 67세의 나이에 드디어 꿈에서나 그리던 왕위에 올라 문왕(서백창)을 시조로 삼아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동도 낙양을 신도(神都)라 부르며 주로 그곳에서 정무를 보았다.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왕의 등극이었던 것이다. 역사가들은 그녀가 세운 ‘주’를 서주‧동주와 구분하기 위해 후주(後周) 또는 그녀의 성씨를 따 ‘무주(武周)’라고도 한다.
이로부터 15년 후인 705년, 반세기 동안 그야말로 당나라의 지존이었던 여걸 무측천도 나이가 들어 병상에 눕게 되자 힘없는 늙은이에 불과했다. 재상 장간지가 친위대장과 공모해 병들어 누워있는 무측천을 협박해 보위를 태자(중종)에게 넘기도록 했다. 그해 겨울 무측천은 82세를 일기로 죽어가면서 자신의 묘비에 한 글자도 새기지 말라고 명했다.
이에 예종의 3자 이융기가 정변을 일으켜 위왕후 일파를 먼저 제거해버렸다. 예종이 다시 복위되고 융기는 태자로 세워졌다가 즉위하는데 그가 바로 양귀비를 사랑한 현종이다. 이어 안록산과 황소의 난이 일어나 힘이 약해진 당나라는 907년에 건국 290년 만에 주전충에게 망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중국은 다시금 5대 10국이라는 대분열의 시대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정권쟁취 과정에서 모든 정적을 잔혹한 피의 숙청을 통해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했던 무측천이 일반백성들에게 펼친 통치는 ‘무주의 치(武周之治)’라고 불릴 정도로 획기적이고 본받을 점이 많다. 먼저 국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일원적인 통치시스템 구축과 사회 안정을 이뤄나갔으며, 민생회복과 생산력 강화를 국정운영의 기치로 걸었다. 친족들에게 예외 없으니 법을 위반하지 말라고 경고할 정도였다.
무측천은 악명 높은 혹리(酷吏)들을 척결했으며, 근무태만인 관리들은 모두 파면시켰는데 심지어는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민심을 수렴하기 위해 ‘진실의 함’을 만들어 민생으로 인한 민란이나 봉기가 아예 없었다. 추천된 자를 관직에 임용해보고 능력이 있는 자는 정식 등용했으며, 과거제도를 개편해 많은 인재들을 배출해 적재적소에 등용시켰다. 전국에 많은 사원을 세우고 승려들을 많이 양성시키는 등 불교를 중흥시킨 것 등이다.
이렇듯 하늘이 내렸다는 무측천도 이기지 못한 것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바로 세월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우리 민족국가였다. 고구려의 정통성은 대중상의 후고구려를 거쳐 대조영의 대진국으로 이어졌고 백제는 신라에 통합되어 우리 민족에게는 삼국시대 대신 남북국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대진국(발해) 역사의 일부는 요(거란)→금(여진)→원(몽골)→청(여진)나라로 이어졌고, 또 일부는 고려로 연결되어 조선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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