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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시계(視界) 제로다. 북한 비핵화 문제를 비롯한 최악의 위기에 빠진 경제, 극도로 혼란한 정국, 빗장을 모두 푼 안보, 위태로운 줄타기 외교 등이 우리 모두의 시야를 온통 가리고 있는 요인들이다. 내우(內憂)와 외환(外患)이 동시에 들이 닥쳤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마치 키잡이 없이 항해하는 대한민국 호(號)다.
우선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 대국들 간 이권 쟁탈의 장으로 변질돼 가고 있다는 것이 심히 우려스럽다. 날이 갈수록 꼬이는 북한 비핵화 문제는 미-러-중-일 4강국 모두에게 경제적 국익을 기준으로 셈법이 오가는 복잡한 방정식이 되고 말았다. 북한 핵문제는 더이상 상징적인 동북아의 평화라는 깃발과 멀어졌다. 먹잇감이 무엇이냐는 정글 싸움으로 변했다.
미국의 방위산업, 러시아의 자원수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일본의 경제실속 등이 맞물리면서 북한 핵문제는 오히려 이들 4강국에게 필요충분한 사안으로 이상하게 변질됐다. 결코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핵무기 생존전략이 4강국의 입맛에 맞는 실리가 된다면 그 희생양은 당연히 대한민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에게 거부하기 힘든 대량의 무기수출로 이미 실속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를 경제적으로 압박해 추가 실리를 챙길 수 있는 다양한 고강도 압박카드를 준비해 뒀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차하면 유엔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우리 경제의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증거들을 다양하게 수집해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북한과 직·간접 연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 핵담판에 엉뚱하게 우리만 손발이 묶인 처지로 온전히 전락했다.
석유와 가스 등 자원을 통해 장기집권 발판을 닦아 온 푸틴도 북한 핵문제는 변방일 뿐 정작 경제적 실리 챙기기 의도를 가감없이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남·북·러 3국 경협사업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남한의 가스관 연결 의사를 내비췄다.
육상으로 수입될 러시아산 가스가 해상으로 들여오는 것보다 싼 이점은 있다. 하지만 그 가스관은 예측불허의 시한폭탄일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위험한 목줄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적지 않다. 러시아와 북한을 향해 퍼붓는 ‘돈줄’이라는 비판까지 거칠게 나오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에게도 북핵 문제는 그다지 신경 쓸 사안이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에 모든 것이 꽂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진핑 주석은 최근 3일간 각국 정상들과 국제기구 지도자들을 대거 불러들이는 제2회 일대일로 포럼을 통해 또다시 포효를 하고 나섰다.
일대일로에 노골적인 반감과 경계감을 드러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우리는 시진핑의 일대일로 경제 패권몽을 벗어나기도 힘들다. 북한 핵문제가 이에 일조하는 견인장치로 작동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우리는 북한 지렛대에 걸려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많은 나라들처럼 미국의 견제는 고사하고 천문학적 재정을 날릴 수 있는 위험한 사업에 발을 담가야 할 처지다.
미·중·러가 이처럼 북핵을 지렛대 삼아 경제적 실리를 챙기면서 우리를 압박하는 사이 일본도 숟가락을 얹을 채비를 착착 준비해 왔다. 한·일 관계를 노골적으로 악화시킨 일본의 속셈은 전범국 마지막 포승줄인 평화헌법 개정에 방점을 두어 왔다. 북핵은 이에 적절한 수단이 돼 주었다.
나아가 일본은 전 세계 곳곳에서 경쟁하고 있는 한국기업을 밀어내고 일본판을 키우기 위한 잰걸음에 속보를 내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북핵문제로 미국과 사이가 벌어진 사이 일본은 미국과 더욱 밀착하고 글로벌 외교력을 강화하면서 내막적으로 경제 우방국들까지 아주 열심히 챙기고 있다. 그 후폭풍은 우리 수출기업들에 미칠 것이 뻔하다.
북핵문제가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의도 내지 행보와는 다르게 오히려 우리의 시야를 전방위적으로 가리는 정점에 있으면서 우리 국민들과 기업들의 고혈만 내어줄 위기를 만들었다. 결국 북핵 운전자론은 주변 4강국의 실리적 장단에 맞춰 춤추는 행위가 되고 있다. 문제는 현 정부가 이에 대한 심각성을 외면한 채 북핵 해법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상한 유연성을 여전히 보이지 않는데 있다.
국정의 대부분 에너지가 잘못된 북핵 대처에 쏠리면서 한국경제가 위기로 치닫고 있어도 마땅한 해법을 찾을 시간조차 많지 않으니 안타까울 지경이다. 수출전선에서는 반기업 정책이 강화되고 중소기업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면서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까지 온통 사지가 얼어붙었다.
그 여파가 서민경제에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국민적 지지율이 떨어지고 위기에 봉착한 집권 여당이 결국 군소 야당들에게 차기 총선의 떡고물을 주는 변질된 대의정치 설계도를 집어 들어 국정까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특정 입맛에 맞게 변형돼 누더기가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본래의 장점을 희석시켜 누가 봐도 국민들의 소중한 주권을 편리한 대로 활용하겠다는 심산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4·3 보궐선거에 드러난 국민들의 표심은 내년 총선을 임하는 집권당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국민들이 등을 돌린 속사정을 깊이 헤아리거나 보살피는 것이 우선인데도 선거제도 개편으로 집권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의회정치를 위기로 몰고 가는 행위다.
북핵이라는 안갯속을 엉뚱하게 헤집고 다닌 것이 위기의 단초라면 경제가 역성장을 하는 폭탄을 품은 가운데 권력욕까지 챙기고자 하는 것은 돌이키지 못할 중대과오가 될 또 다른 대형 신관이다. 시계 제로인 상태에서 이 신관을 건드릴 확률이 커졌다. 그 중심에 여론을 빙자한 권력형 의심사건들이 확산되고 있는 독선적인 세력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호에는 키잡이가 솔직히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운전자 역할을 하는 것은 많이 잘못됐다. 선장이 키잡이까지 하겠다고 하면 배가 제대로 항해할 수 없다. 아니 키잡이를 자처하는 이들은 많지만 정작 키를 잡고 위기를 헤쳐 나갈 인물이 정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내우외환들은 자발적으로 불러들인 위기다. 이를 대충 넘기면 역사의 범죄자로 전락한다. 어느 국가든 이상적인 공화정을 추구하지만 권력을 위임한 국민은 그 권력으로부터 소외되기 일쑤였다. 수많은 역사에서 이 때 의회정치가 손상을 당했다. 권력도 국가도 동시에 비참하게 무너져 내려갔다. 아슬아슬한 대한민국 호를 정상 운행할 길은 도처에서 국민을 속이고 가짜정의가 독버섯처럼 자라는 우리의 상황을 아주 냉정하게 되짚어 보는 일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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