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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글로벌 질서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두 개의 치킨 게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글로벌 경제에 전운(戰雲)이 짙게 깔리고 있다. 하나는 5개월 만에 재개되고 있는 미-중 무역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걸프 만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 재연이다.
모두가 위기라고 긴장하면서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이나 중국, 이란까지 당사국들은 결사항전을 각오하면서 힘을 결집시키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들 국민의 목소리가 하나로 결집되고 있는 점이다.
여야가 정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는 미국 전체가 한 목소리로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식인 혹은 민간 기업인의 일부가 한 때 자국 정부의 섣부른 대응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중국도 현재 일사분란하게 한판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란의 경우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성전(聖戰)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면서 자국 국민의 애국심을 부추긴다. 위기에는 모두 하나가 되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분열되지 않고 하나가 될 때 상대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잡히지 않는다. 불변의 진리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잔뜩 위축되어 피해망상에 사로잡혀나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보게 한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38.7%나 된다면서 당사국들보다 우리가 더 큰 피해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여 중국에서 완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패턴이다 보니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벌써부터 반도체·철강·전기기기 등 대중(對中) 주력 수출상품에 잔뜩 먹구름이 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이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경고로 상실감이 극치에 달한다. 글로벌 경제의 호재는 다 지나가고 악재만 불거질 것이라는 최악의 경고음이 연이어 터진다. 마침내 우리 경제성장률이 2%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대두되고 있다.
엄밀하게 따져 보면 이미 예견된 수순이다. 심지어 미국과 중국 이외의 다른 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우리 수출 전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최근 중국 수출이 부진한 것은 이에 연유하기 보다는 중국의 불경기에다 우리의 중간재 혹은 소비재가 현지 시장에서 외면을 당하고 있는 이유가 더 크다.
말 그대로 시계(視界) 제로다. 앞이 캄캄하다. 엄청난 위기 앞에 대한민국 호(號)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불거지는 이유는 최근 우리 경제가 계속 내리막길에서 헤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 회생에 대한 강한 의지나 대책이 실종되고 있는 점도 이를 부추긴다. 정치권은 분열되어 코앞의 이익 챙기기에만 혈안이고, 정부는 손을 놓고 있는 듯하다. 위기 앞에서 하나가 되어 죽기 살기로 대드는 경쟁국들에 비해 우리는 너무 무사태평이다. 도무지 국론이 통일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남의 집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고 20여 년의 쓰라린 경험을 겪고 난 후에 1억이 총결집하는 구심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 기업, 노동자 등이 똘똘 뭉쳐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전의를 불태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모두 중심에서 이탈하는 원심력만 생겨난다. 위기가 엄습하는데 정면으로 맞설 어떤 준비나 카드가 없다.
거대한 글로벌 통상 위기에도 ‘하나’를 만들 줄 아는 집단에겐 기회가 있다
그야말로 총성 없는 글로벌 전면전이다. 이 와중에도 제대로 된 나라들은 기회를 찾으려고 한다. 오히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또 다른 진리를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17억의 인도와 동남아는 중국에서 이탈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끌어 모으면서 제2의 세계 공장을 노린다. 미국 시장에서 중국 상품에 고관세가 부과되면 자국산의 입지가 더 늘어날 것이라 데에 초점을 맞춘다.
일본도 고래들의 싸움에서 어부지리를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실제로 일정 부분 이익을 챙기고 있다.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우리에게도 손해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반사이익이 생겨나는 반전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손해보다 이익이 생기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경제에 보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미국 시장에서는 중국과의 경합 상품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 가전, 차 부품, 전기·전자 장비, 스마트폰 등 대부분 주력 품목들이다. 중국서도 마찬가지다. 현지 시장에서는 벌써 고가의 애플 스마트폰이 퇴조하고 삼성이 다시 점유율을 회복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지식재산권 전쟁으로 선진 기술 접근이 막히면 우리에게 러브콜을 더 보낼 확률도 높아진다.
이 시점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 문제만큼은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부나 여당의 현실 진단이 더 솔직해져야 하고, 그 바탕 위에서 반대편의 협치를 끌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업과 노동자도 모두 망하는 길을 택할 것이 아니라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모든 동력의 출발은 기업이다. 기업이 파이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 나눌 수 있는 것도 생긴다. 다행히 근자에 분위기가 조금 바뀌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남은 숙제는 정치권이다. 밥그릇 챙기기나 대안 없는 공방으로 거리에 나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 거대한 글로벌 통상 전쟁에서 결국 승리하는 쪽은 흩어지지 않고 뭉쳐서 필사의 투쟁을 전개하는 집단이다. 패배 의식에만 사로잡혀 적전 분열을 하거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망둥이처럼 뛰다 보면 쪽박 차는 것은 시간의 문제이다. 기업에 힘을 실어주고,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면서 나가는 경제가 아닌 들어오는 경제에 매진해야 한다. 낭비와 비효율을 제거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려는 현장이 더 많아져야 한다. 경제 주체들이 서로 대립각을 세울 것이 아니라 합쳐지도록 하는 것이 이 문제를 푸는 첫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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