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인생 후반전을 다시 뛰게 하는 리셋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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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일의 문학푸드

문학은 삶을 깨닫기 원하는 이에게 주는 신의 선물

이정일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5-18 13:39:42

누구나 똑같은 인생을 살면서도 어떤 이는 행복하다고 느끼고 어떤 이는 불행하다고 느낀다. 불행한 이에게 삶이 힘든 것은 인생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리셋버튼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되고 중년이 되면 의무와 책임만이 남게 된다. 열심히 살았지만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을 때 그렇게 인생이 끝날까 두려워진다. 자신의 삶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의 결과이듯 자녀 역시 그렇게 될까봐 조급해진다. 그때 자신의 인생에서 뭔가 어긋났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문학은 어떻게 보면 누구나 알았지만 또 파고들면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진실일 수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안다. 문학은 허구이지만 진실한 이야기라는 걸. 문학은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빛나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학은 아름답고 빛나는 그 시간을 서사로 들려준다. 그 흔적 앞에 우리는 아름다운 인간의 시간과 인간의 풍경을 목격한다. 시인 김현승은 그 한 순간을 시로 들려준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시 「아버지의 마음」의 도입부이다. 시인은 자식의 울타리가 되려고 애쓰는 아버지를 묘사하며 이렇게 쓴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어디서건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산다. 어쩌면 자녀를 보며 자신의 과거를 보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자녀의 얼굴에서 자신을 보고 때론 부모의 얼굴을 본다. 김현승의 시는 짧은 몇 마디 말이지만 인간의 삶은 한 꺼풀 걷어내고 보면 너무나 닮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특별한 인연의 끈을 갖고 만났다. 그런데 그만 먹고사는데 바빠 그 끈이 뚝뚝 끊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오지 않는 자식을 하루 종일 기다리는 부모가 있다. 자식을 키워보면 부모와 자식의 애정기는 예상 외로 빨리 끝난다는 걸 알게 된다. 자녀들의 사춘기가 끝나는 기쁨도 잠시다. 가장인 아버지는 직장 일이 먼저 일 때가 많고, 또 자녀는 너무나 빨리 어른이 된다. 다들 너무 바쁘다.

열심히 일할수록, 자녀의 세상이 넓어질수록, 아버지의 자리가 좁아진다. 어머니의 자리는 더 좁아진다. 이게 현실이다. 이것을 문학과 영화가 고스란히 보여준다. 외계인을 다룬 영화 「E.T.」에서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두 장면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의도적으로 표현한다. 아들 엘리엇이 창고에서 바람이 나 집나간 아버지의 옷 냄새를 맡는 장면이다. 그래서 가족이란 무엇일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일까? 묻게 된다.

삶에 여백이 없는 이유는 자신만의 관점과 기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1등과 2등은 언제나 한 끗 차이다. 하지만 승리는 그 한 끗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자에게 돌아간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만의 답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삶에 여백이 있어야 한다. 생각에 여백이 있어야 한다. 여백이 없으면 결코 시를 읽지 못한다. 시를 읽지 못하면 우리의 생각은 금세 무뎌질 것이다. 무뎌진 칼로는 종잇장 하나도 베지 못한다.

살다보면 소신을 굽혀야 할 때도 있다. 인간은 타락할, 타협할, 포기할 마음을 지니고 산다. 작은 이익에 비겁해지려 할 때 흔들리는 마음을 지켜주는 것이 소신이다. 누구나 동일한 지점에서 싸운다. 이것은 머리의 싸움이 아니고 관점의 싸움이다. 지식의 싸움이 아니라 용기의 싸움이다. 내가 믿고 내가 확신하는 것을 위해 용기를 내는 것, 이것은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마법 같은 힘이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우리나라도 생존이 지상목표였고 가족부양이 삶의 전부인 시대가 있었다. 1970년대 1980년대다. 아버지는 바빴다. 열심히 일해서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도 많았다. 살면서 중요했던 것은 그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생각나는 법이다.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삶을 점검하는 눈을 키워야 한다. 문학은 이를 위한 최적의 도구다. 삶이 힘겨워지면 시야가 좁아진다. 문학은 좁아진 시야를 넓혀주는 신의 선물이다. 문학은 여러분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하는 리셋버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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