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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이 동부여에서 찾아온 큰아들 유리를 태자로 정하자 소서노와 그녀의 소생인 비류와 온조가 고구려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 백제를 세움에 있어, 「삼국사기」는 비류와 온조가 주도한 것으로 「태백일사」는 소서노가 주도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고구려사초략」에는 이와는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먼저 어떤 내용인지 관련기록을 살펴보도록 하자.
고구려 건국 직전 계미년에 주몽은 졸본왕 연타발의 딸 소서노를 천·지·인 세 황후의 으뜸인 천황후로 삼았다. 이듬해 갑신년(B.C 37년) 2월에 연타발이 죽자 소서노가 주몽에게 나라를 바쳤고, 문무백관 모두가 주몽을 황제로 추대하니 몇 번 고사하다가 즉위했다. 나라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했고, 연호를 동명(東明)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주몽이 동명을 연호로 정한 연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새 나라를 세움에 있어 「북부여기」의 기록처럼 주몽이 북부여의 단군이 된 동명왕 고두막한의 정통성을 계승했음을 암시한 것이다. 「고구려사초략」은 주몽의 출생을 20년 늦춰 새 나라를 창업한 것으로 기록하다보니 동명왕과 직접 연결시키기가 곤란했을 것이다.
동명 2년 을유년(B.C 36년)에 소서노가 비류를 낳고, 5년 무자년(B.C 33년)에 온조가 태어났다. 비류는 인물됨이 다정했으나 나약했고 온조는 뛰어나게 듬직하고 지혜로웠다. 온조가 태어났을 때 주몽이 “이 아이가 진정 내 아들이오. 비류는 그대를 닮아 온순하고, 이 아이는 나를 닮아 호탕하고 쾌활하오”라고 했더니, 소서노가 웃으며 “둘 다 당신 자식인데, 어찌 진짜와 가짜가 있습니까?”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동명 15년 무술년(B.C 23년) 8월 소서노는 정윤(동궁) 책봉을 서두르게 된다. 주몽이 동부여에 있는 유리에게 미련이 있었으나, “평탄한 시기라면 적장자를 세우고, 혼란한 시기라면 지혜롭고 현명한 자를 세워야 할 텐데 누가 좋겠소?”라고 신하들에게 하문하니, 모두들 “비류 태자는 어질고 현명하나 나약하고 지혜가 부족하고, 고루 태자는 현명하나 지혜롭지 못합니다. 비록 나이는 어리나 온조 태자를 세우소서”라는 주청을 올려 10월에 온조를 정윤으로 삼았다.
동명 18년 신축년(B.C 20년) 8월, 드디어 동부여에 있던 유리가 어머니 예씨 부인과 함께 찾아와 부러진 칼 한 조각을 바치니 주몽이 무척 기뻐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국가원로 72명이 유리 태자를 정윤으로 삼으라고 청하자, 소서노 황후가 발끈하며 “후사를 세우는 일은 우리 집안 일인데 왜 원로들께서 참견하십니까”라고 강하게 쏘아붙였다.
주몽이 “저 어른들은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있을 뿐이오”라고 두둔하니, 소서노는 “이럴 줄 알았다면 신첩이 진즉에 온조와 멀리 산속으로 가버릴 걸 그랬나봅니다. 그런데 일이 불시에 터져버렸으니 그저 웃으면서 지켜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주몽은 “심려하지 마시오. 유리가 어찌 감히 그대와 서로 다툴 수 있겠소. 내가 의당 조치하리다”라고 말했다.
10월에 군신들을 모두 모이게 하고는 다시금 정윤에 대해 상의했다. 주몽은 동쪽과 서쪽에 깃발을 세워놓고 군신들에게 동쪽으로 가면 온조, 서쪽으로 가면 유리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서 다수결로 정하려고 했다. 소서노가 세의 불리함을 알고는 대노하며 물러나 “태백중옹(太白仲雍)의 고사에 따라 유리에게 양보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태백중옹이란 주(周) 태왕이 하늘이 내려준 손자 희창(姬昌=문왕)에게 왕위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막내아들 계력에게 계승시키자, 계력의 두 형 되는 장남 태백과 차남 중옹이 왕위를 양보하기 위해 지방으로 숨어들었다는 고사이다.
이때 온조 태자가 앞으로 나오며 “평온한 시절에는 장자를 세우고, 혼란한 시기에는 현명한 자를 세운다는 가르침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어찌 이런 일을 하시어 소자를 그릇되게 하시려 하십니까”라고 아뢰며 서쪽 깃발 밑에 섰더니 감히 아무도 동쪽 깃발 밑으로 가지 못했다. 주몽이 크게 칭찬하며 “참으로 현명하구나. 온조야! 네 비록 지금은 형에게 양보하더라도 이후 반드시 보위에 오를 것이로다”라고 말하고는 유리에게 “온조를 잘 감싸야 한다. 온조로 하여금 남방 땅을 제압해 지킨 후에 서서히 서남방 땅을 제압토록 해라”라고 말했다.
이듬해 동명 19년 임인년(B.C 19년) 정월 유리 태자를 정윤으로 삼았고 주몽의 병은 깊어져갔다. 주몽은 언니를 소서노에게 보내 유리에게 처로 주고자 했다. 처음엔 “내가 왕소군도 아닌데 어찌 천막마차에서 상통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자, 언니는 “네가 유리의 처가 되어 보위를 물려받으면 손해날 것이 없는데, 네가 응하지 않으면 다른 황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그리 되면 우리 가문은 어육이 될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크게 깨달은 소서노가 궁으로 들어가 주몽을 알현하고 그러겠다고 했다. 주몽은 유리를 불러 소서노를 하사하며 “개국원훈이고 치세에 능한 신하이니, 이런 사람을 처로 맞아야 옛 것을 학습하고 새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너는 이 사람을 2세후로 삼아 내 뜻을 익히고 죽을 때까지 그를 사랑함을 변치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명했다. 주몽은 정치욕이 강한 소서노로 하여금 통치를 계속하게 함으로써, 그녀를 안심시키고 새 임금을 돕고 소서노의 자녀들을 지켜주고자 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4월에 추모제께서 춘추 40세에 돌아가셔서 9월에 용산(龍山)에 모시고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 했고, 장수제 16년에 추모대제(芻牟大帝)로 높여 불렀다. 새 임금은 연호를 광명(光明)으로 하면서, 정무에 관한 일은 소서노 황후에게 위임했다. 10월에 주몽의 아들들을 모두 왕으로 봉하면서 비류를 엄표왕으로, 온조를 유리의 아들로 삼아 한남왕(汗南王)에 봉하고 우양(牛壤)에 도읍하라고 명했다.
광명 3년 갑진년(B.C 17년) 정월, 순노(順奴)·발노(郣奴)는 비류가 미추홀에서 다스리게 하고, 관노(灌奴)·계루(桂婁)는 온조가 우양에서 다스리게 하고, 연노(涓奴)·황룡(黃龍)·행인(荇人)·구다(句茶)·비리(卑離)를 새 임금 광명제가 소서노 황후와 함께 다스려 황후의 마음을 위안했다. 7월, 한남왕 온조가 입조해 위나성(尉那城)으로 도읍을 옮기겠노라고 청하니 윤허했다.
14년인 을묘년(B.C 6년) 7월 온조가 한산(漢山)에 목책을 세웠고, 26년 정묘년(A.C 7년) 온조가 한산으로 옮겼다. 온조에게 군병과 식량을 보내 마한을 치는 것을 도왔다. 3년을 계속했다. 이듬해 3월 온조가 한산으로 천도했다. 대무 2년 기축년(29년) 온조가 나라 이름을 한남에서 백제로 바꾸었다.
이렇듯 백제의 건국이야기는 「삼국사기」와 「태백일사」와 비교해볼 때 「고구려사초략」의 내용이 훨씬 더 자세하고 파격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유목민족의 독특한 문화인 형수수취제로 아버지 주몽에 이어 아들 광명제 때에도 황후였으며, 광명제의 의아들 온조는 한남왕이라는 제후였다가 약 50년 후에야 독립해 백제를 세웠다는 말인데,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지 결코 허황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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