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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일의 문학푸드

문학은 우리가 얼마나 좁은 울타리 속에 갇혀 사는지를 보여준다

이정일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6-01 17:52:53

문학을 읽으면 얻는 것들이 있다. 좋은 문장을 얻기도 하고 좋은 생각을 얻기도 한다. 때로는 평생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어린 왕자』나 『노인과 바다』는 삶이 힘들 때 찾아갈 수 있는 좋은 친구다.

변신에 능한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삶은 고달파진다.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이렇게 말한다. “풍요롭게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쓸모없는 물건조차 버릴 줄 모른다.” 문학은 이런 문장을 품고 삶에 지친 우리를 위로한다.

우리 삶에서 우연은 없다. 지구에 76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아도 몇 단계만 거치면 모두 아는 사람이 된다고 한다.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의 이름을 딴 네트워크 법칙에 따르면 우리는 여섯 단계만 거치면 세상 그 누구와도 연결된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생면부지도 서너 단계만 거치면 어떤 식으로든 연결의 끈이 있는 것이다. 가정하여 배우 마동석과 내가 일면식이 없어도 몇 단계만 거치면 연결된다는 것은 낯선 느낌이다. 하지만 문학도 우리가 얼마나 좁은 네트워크 속에 사는가를 보여준다.

예전과 달리 요즘 나오는 세계문학은 그 범위가 부쩍 넓어졌다. 이젠 영미작가들이 주류가 아니다. 여러 작품 중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골라본다.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썼는데 그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우리는 아프가니스탄과도 연결된다. 작품의 배경은 탈레반이 지배하던 시절이다. 놀랍게도 그 시절에도 카불 사람들은 감시의 눈길을 피해 몰래 영화 「타이타닉」을 보았다. 할리우드 영화는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밀수한 것이다.

이슬람 국가에선 여자들이 머리카락을 드러내면 처벌을 받는다. 이란에선 2016년 여자 모델 8명이 SNS에 머리를 가리지 않은 사진을 올렸다고 체포된 적이 있다. 가부장제에 억눌려 사는 여성의 삶을 소설 『나의 몫』이 보여준다. 탈레반 치하보단 덜하지만 이란에서 여자의 삶은 두 가지뿐이다. 참거나 희생하거나. 그 억울함을 여성인물은 이렇게 토해낸다. “신의 결정을 따라야지. 우리 각자의 운명은 태어나는 날 이마에 새겨지는 거야. 그리고 각자의 몫도 따로 정해져 있지.”

과연 그럴까 싶지만 제3세계에서 여자는 낮은 가격이 매겨진 상품 같다. 2002년 4월 9일 『더 월 스트리트 저널』이 사우디아라비아의 ‘피 값’에 대한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실수로 사람을 죽게 했을 때 배상해야 하는 액수에 대한 글이었다. 희생자가 무슬림 남자라면 10만 리얄(약 3,100만원)이다. 무슬림 여자나 기독교도는 액수가 같다. 5만 리얄이다. 하지만 힌두 여자라면 배상액이 크게 낮아진다. 겨우 3,333리얄이다. 이 수치에 따르면 무슬림 남자의 목숨 값은 힌두 여자보다 33배나 많다.

『어린 왕자』를 보면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문장을 마주한다. 삶에 위안을 준다. 하지만 제3세계로 건너가면 이런 문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소말리아 작가 누르딘 파라가 『지도』에서 “빗방울 하나하나는 천사의 동행으로 땅까지 이른다”고 묘사하지만, 이런 문장은 제3세계의 소설에선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곳엔 생존이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터키 작가 야샤르 케말의 대표작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를 읽으면 소설 속 삶의 풍경이 아프가니스탄을 재현한 듯 하다.

세상은 개화된 듯 보이지만 UN 인구기금의 통계에 따르면 한 해에 5천 명이 넘는 여인들이 명예살인으로 죽음을 당한다. 모든 인간은 평생 동안 어느 정도는 폭력성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문학은 우리 안에 내재된 폭력성이 죄의 본성을 지닌 채 기만과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 여전히 편만함을 서사로 보여준다. 명예살인을 서구에선 가부장적 살인으로 간주하지만 이슬람 사회에선 이것을 부도덕한 행위로부터 가족과 공동체가 오염되는 것을 막는 행위로 해석한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지 않았고 통제하지도 못하는 세상에서 태어난다. 호머의 『일리아드』부터 케말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인생사란 드라마는 폭력으로 시작해서 폭력으로 끝나기 일쑤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나 약자가 고통을 당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의 불의가 여전히 복제되고 있다는 것을 서사로 보여준다. 서너 단계만 건너도 연결되는 세상인데 왜 이런 일이 여전히 일어날까. 악에 맞서는 대항논리가 없기에 우리는 고전한다. 이것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고를 확대하는 것 뿐이다.

인간의 본성에 새겨진 추악한 악은 용서를 의도적으로 선택할 때만 극복될 수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길은 어쩌면 선악과를 먹기 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문학에 등장하는 고통 받는 인물들은 ‘그들’인 동시에 ‘우리’다. 삶의 모순 앞에 당혹하여 멈춰서는 것과 한 발 더 내딛는 것은 차이가 있다. 용서가 부재할 때 우리의 인생사는 어떻게 왜곡되는 지를 신문과 문학이 보여준다. 지금 당장은 복수가 문제를 풀 것 같지만, 아니다. 용서만이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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