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와 경쟁하는 정부, 반칙아닌가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카드사와 경쟁하는 정부, 반칙아닌가

스카이데일리 칼럼

임현범 기자페이지 + 입력 2019-07-02 00:02:57

죽어가는 제로페이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눈물겹다. 어제(1일) 기획재정부는 하반기부터 업무추진비와 물품구입비, 여비 등 관서 운영에 필요한 소액경비를 결제할 때 제로페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국고금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시행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와 정부가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을 낮춰주겠다며 야심차게 내놓은 제로페이가 시장으로부터 외면받은데 따른 후속 대책이다.

기존 국고금관리법은 건당 500만 원 이하의 관서 운영경비를 정부구매카드인 신용카드, 직불카드 및 직불전자지급수단을 통해 결제토록 규정하고 있었다. 반면 이번에 개정된 국고금관리법에는 기존 결제수단에 제로페이까지 추가됐다. 지난해 연간 약 7181억 원에 달하는 정부구매카드의 실적을 제로페이가 나눠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아예 제도를 뜯어고친 셈이다.

서울시에 이어 정부까지 공무원들의 제로페이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보니 시중에선 제로페이를 두고 ‘관치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서울시의 경우 공무원뿐 아니라 산하 공기업들에게까지 제로페이 사용을 반강제로 독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로페이 사용 실적이 윗선에 보고되다 보니 제로페이를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아예 국고금관리법까지 개정하고 나섰으니 중앙부처에서도 서울시와 같이 제로페이를 반강제하는 모습이 연출될 거란 건 안봐도 비디오다. 문제는 정부가 제로페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시행령까지 개정하면서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반면 카드업계에 대해선 생사를 위협할 정도로 강도높은 규제만을 일삼고 있다는 점이다.

카드업계에선 이미 지난해부터 시행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수익성 악화가 현실화됐다. 살아남기 위한 고강도 구조조정과 몸집 줄이기는 카드사 입장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또 다시 카드사의 일반 가계신용대출에 대한 대출규제까지 강화하면서 카드업계 안팎에선 곡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게다가 6월 말 발표한다던 금융당국의 ‘카드 상품수익성 TF’ 결론이 늦어지면서 카드사들은 신상품 카드도 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카드사의 건전성 악화와 부실 우려를 대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의 다양한 혜택 추구 및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이미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카드사들은 무이자 할부나 소비자 혜택 등을 없애거나 축소하고 있다.

결국 정부와 서울시는 자신들이 내놓은 제로페이를 부흥시키기 위해 민간 카드사를 상대로 고강도 규제와 압박을 일삼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이러한 정부의 행태가 과연 공정경쟁에 부합하는 건지도 의문이다. 마치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이 선수를 상대로 경기에 직접 뛰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은 제로페이를 살리기 위해 법·제도를 개정하기 전에 카드사들이 서로 경쟁해 소비자에게 다양한 혜택을 줄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임현범 hby6609@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