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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우리 민족의 성산…백두산의 천지를 오르다

백두산과 장백산이 같은 산이 아냐…한족들이 억지로 붙인 지명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7-06 22:58:29

▲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백산호텔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26시간의 기차여행으로 인해 매우 피곤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한 후 가능한 일찍 취침하라는 당부가 있었지만 내일 우리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을 등정한다는 기대로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저녁 식사 후 유성규, 남성우 교수 방을 찾아 백두산 정상에서 천제(天祭)를 지내자고 제안하면서 대추, 밤, 황태 등의 제물과 경주 법주를 준비했다. 그리고 천제(天祭)에는 고유문이 필요하니 함께 고유문을 짓자고 했다. 미리 준비한 초안을 유성규 박사에게 드리니 수정한 고유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희 한중친선협의회 회원들은 단군성조께서 백두산에 개국하신지 4322년이 되는 오늘 기사년 7월 초팔일에 수만리 먼 길을 달려와 여기 영봉에 오르게 됐습니다. 민족 화합과 조국통일을 희구하는 저희들은 천지를 눈앞에 보는 순간 무한한 감동과 누를 길 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준비해 온 조촐한 제물을 삼가 올리오니 성조께서 굽어 살피시어 배달민족에게 화합과 통일을 주시고 민족정기를 진작시켜 주시옵소서. 삼가 성조께 경배하옵니다. 단기 4322년 8월 9일. 한중친선협의회원 일동”
 
백두산으로 가는 도로는 비포장이라서 승용차로 가도 7시간이 소요되는 긴 노정이라 새벽 6시에 출발했다. 일제 승용차 1대와 소형 버스에 우리 일행은 나누어 타고 출발했다. 연길시를 관통하는 부르하통하 강가의 백산호텔에서 출발한 우리는 북쪽 노선인 안도지역을 지나는 길을 택했다. 연길 시가지를 지나서 비포장된  도로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 양편의 밭에는 옥수수가, 논에는 푸른 벼가 잘 자라고 있었다. 모든 상점의 간판은 한글 밑에 한문으로 함께 표기하였는데 이 형식이 연변자치주의 통례인 모양이다.         
 
 
▲ 농촌마을(왼쪽)과 황토로 포장한 도로 [사진= 필자제공]
 
두 시간이 지나니 서서히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다. 백두산 주변의 고원지대가 시작됐다. 커다란 원목을 실은 기차가 느릿느릿 지난 간다. 폐허가 된 탄광촌과 인가들이 보였다. 중늙은이가 서너 살 된 아기를 업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조선족인 우리 동포 마을인지 한족(漢族)의 집인지는 지붕 형태로 구분된다고 했다. 각진 지붕이면 한족(漢族)의 마을이다. 우리 동포들은 전통적인 곡선의 초가지붕을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인적이 드문 길을 세 시간이나 지나서 사람들이 북적이고 상점이 즐비한 안도 읍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과일을 사서 먹기도 하면서 거리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우마차들도 많이 보인다. 지나는 길에 제법 큰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송강진이라고 했다. 읍 소재지인 모양이다. 이곳 송강진에서 유명하다는 냉면집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우리 동포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해 동포가 살고 있는 집을 구경했다.
 
같은 동포라서 매우 친절했다. 마침 우리가 간 집이 38세의 김현근(金鉉根)씨 집으로 송강진 세무국장을 맡고 있었다. 부인은 34세의 이정애(李貞愛)씨인데 10살 먹은 아들과 은행원인 처제인 이영숙(李英淑)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자리를 같이 한 한옥순(韓玉順) 조선족소학교 선생님이 송강진에 대한 설명을 해주신다. 조선족소학교 학생 수는 200명이고 14명의 선생님과 1명의 사환이 근무한다고 했으며, 송강진에는 1000명의 조선족과 2000명의 한족이 거주하며, 개인 가옥은 2만원 정도한다고 했다.         
        
송강진은 이도백하라는 제법 큰 강이 지나며, 화룡과 용정으로 가는 길이 나누어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의 정성이 깃든 조선 냉면을 먹고 우리 일행은 다시 백두산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백하에 도착해보니 우마차들이 많이 보인다. 주민들의 왕래수단은 우마차인 모양이다. 시내 곳곳에 잘 생긴 장백송이 자태를 크게 뽐내고 있었다. 일명 미인송이라 불리는 적송이다. 좌측에는 백산삼림보호구청이 보인다. 드디어 백두산 삼림지대로 들어서니 좌우에는 빽빽한 밀림이 우겨져 있고 자동차 길만이 나 있다. 길바닥은 황토를 깔아 다듬어 놓았지만 백두산의 소천지 부근에는 도로포장이 한창이었다.
 
 
▲ 백두산 전경 [사진= 필자제공]
 
오후 2시 쯤 웅장한 백두산의 자태와 백두폭포(장백폭포) 윗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장백산초대소라 했다. 당과 관계의 높은 분들이 묵는 숙소인 모양이다. 시중드는 젊은 아가씨도 보인다.
 
목조로 지은 이 초대소도 생전 처음 잠을 잔 곳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두 해 뒤에 다시 오니 목조로 지은 초대소가 헐리고 말았다. 한족들은 우리의 성산인 백두산을 한사코 장백산이라 부르기를 고집한다. 폭포와 초대소 이름도 장백산이 붙었다. 백두산과 장백산이 분명히 다른 두 개의 산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해서 필자도 명칭을 백두산 외에도 장백폭포를 백두폭포로 부르기를 주장한다.
                                                                              
300년 전 강희제가 자신의 선조들에게 제사지낸 곳은 이곳 백두산이 아닌 계림합달령이었다. 계림합달령은 송화강으로 흐르는 휘발하의 상류인 토문하가 발원하는 산인데 한족들은 이 산을 장백산이라 부르다가 1712년 백두산정계비를 세우고 나서는 ‘계림합달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대신에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진짜 이름 대신에 가짜 이름으로 왜곡시키기 시작했다. 본래 이름이었던 백두산의 이도백하도 토문강으로 이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강희제는 당시 환인 부근의 동가강인 혼강의 물줄기를 압록강으로 인식하였으며, 환인 북쪽 산을 장백산으로 인식해 이곳에서 발원하는 토문하를 토문강으로 여겼다. 그러나 백두산 일대의 영토에 야욕이 있었던 강희제와 목극등은 300백리 동북의 백두산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영유권 분쟁의 싹을 키우고 말았다.
 
우리 일행들은 바로 백두폭포 관광에 나섰는데 기념사진을 찍은 후, 양희원  군이 빨리 움직여 백두산의 천지까지 갔다 오자고 하면서, 젊은이들을 설득했다. 양희원군의 꾐에 빠진 사람이 나와 홍일점인 박기덕 교수, 일본의 김양기 교수, 이일연 회장, 김선영 국장, 김진욱으로 7명이 70도의 가파른 돌무더기 산을 타기 시작했다. 이미 오후 3시가 가까웠다. 특히 등산로가 없었으며, 엎어지고 고꾸라져 가면서 겨우 백두폭포 윗부분에 이르러 한숨을 돌렸다. 오르막 대신에 2미터 폭의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천지에서 내려오는 냇물을 따라 걷다보니 호젓한 이 길이 고향의 길 인양 매우 포근했다. 수만 년의 인고(忍苦)를 견딘 수많은 바위들이 줄지어 우리를 반기는 모습에 마치 우리는 전투에서 이긴 개선군인이 됐다. 사계절 쉴 새 없이 흐르는 물이 천지에서 솟아났다하니 그 신비로움을 어떻게 이해할까. 산기슭에 만병초인지 꽃이름도 모르는 꽃이 활짝 피어 있다가 해질녘이 되니 잎을 반쯤 닫고 있다. 그리고 신령스러운 까마귀 수십 마리가 놀고 있다가 우리를 반긴다.
 
천지 달문에서 흘러내린 이 물은 송화강의 원류인 셈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 송화강을 우리 민족 최초의 아리수라 불렀다. 우리 민족의 문화가 이 아리수 부근에서 처음 발생하였음을 지적했다. 백두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북만주 고토를 돌아 몽골고원에서 오는 눈강을 만나 흑룡강이 된다. 실제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외에도 북방의 모든 숙신, 글안, 여진이 이 송화강 부근에서 발흥하고 쇠퇴했다.
 
오후 5시가 되니 동쪽 봉우리는 햇볕을 받아 황금색의 누른빛을 나타내고 해가 서쪽 차일봉에 가려지려 한다. 서쪽의 차일봉에 미륵불의 모습이 검게 나타난다. 아마 이 미륵불은 태고 이래로 우리 민족의 부흥과 통일을 지금까지 염원하고 기도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맑고 푸른 천지 물도 해가림으로 인해 짙푸른 물로 변했다.
 
우리는 두 시간이나 걸려 천지에 도달했다. 먼저 우리는 목을 숙여 천지 물을 마음껏 마시기 시작했다. 이 때 마신 천지 물의 맛이란 말로 정말 형언하기 어려운 맛이었다. 여태까지 이 천지 물보다 더 맛이 단 물은 없었다. 우리는 달문 부근 바위에 올라 너무나 신비한 천지의 모습에 감동되어 만세 삼창을 하고 통일의 염원을 담아 애국가를 불렀다. 우리 선조들은 달문 부근에 종덕사를 지었다고 했다. 해는 서산에 숨어버리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도 허급지급 하산 준비를 서둘렀다.
 
 
▲ 17세기 김수홍이 제작한 조선팔도고금총람도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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