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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무’ 위기
많은 국민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3무’ 위기의 시대라고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는 안보가 없고, 경제가 없어지고 있으며, 치안이 없는 ‘3무’ 위기의 사회가 되었다고 불안해한다. 안보와 경제와 치안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 삶의 안정은 기대할 수 없다.
왜 이런 불안 사회가 되었을까? 위임받은 국가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하는 집단들과, 그에 영합하는 지식장사꾼, 여론 몰이하는 방송신문사 일부 이데올로그 세력들도 문제이겠지만, 논거도 없고 무책임한 선동과 감성팔이를 앞세워 여론조작도 서슴지 않는 세력들에게 정치적 지지를 보낸 국민들의 가치관 부재가 불러온 참극이라 하겠다. 즉 근원적으로는 국민적 가치관이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은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어떤 정치세력들도, 인민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인류가 만들어낸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는 국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체제를 지키고 운영하는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교육한 적이 없었다. 국민들은 자기 개인의 자유나 권리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자신의 자유 공동체, 즉 공화국 체제를 지키기 위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하려 한다. 누군가 내 대신 책임져 줄 것이며, 나중에 후손들이 세금을 얼마나 더 부담해야 하는 것인지는 무시하고 우선 내게 많이 퍼 주겠다는 집단에게 표를 주는 투표행태가 반복되었다. 국민들이 포퓰리즘에 빠진 것이다.
자유 이야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제1항). 민주공화국은 왕권과 신분제 질서체제를 타파하고, 그 나라 모든 인민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인류가 만들어 낸 정치체제이다. 우리 헌법 제1조 제1항에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하였으므로, 우리나라는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삼는 나라이다.
우리 헌법은 우리나라가 식민지에서 독립했을 당시, 공화정 국가인 미국이 남한 지역을 점령하였기에 다른 선진 공화국의 헌법들을 ‘계수하여’ 만들었다. 한편 북한지역은 소련이 점령하였기에, 전체주의 국가인 소련의 헌법을 모방하여 헌법을 만들었다.
남북한 인민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된, 헌법질서의 차이, 체제의 차이를 당시 남북한 동포들은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질서의 차이, 체제의 차이는 이후 남북한 인민들의 생활양식의 차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가치관의의 차이, 인민들의 생활수준의 차이를 갈랐다.
자유란 어느 누구도 자유로운 사람의 선택을 자의적으로 종속시킬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자유의 정의 중 가장 현대적인 의미의 정의인 필립 페팃의 비지배(non-domination) 자유 개념이다 (필립 페팃, <신공화주의> 참조). 과거에는 자유란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는 상태라고 정의했지만, 이런 불간섭 자유는 부족한 점이 많다. 가령 간섭하지 않는 주인을 섬기는 노예는 자유로운가? 그 노예는 불간섭이라는 측면에서는 자유롭게 보이지만, 지배라는 측면에서는 주인의 자의에 종속된다.
전통적인 불간섭 의미의 자유 개념으로는 현대 공화주의의 위기에 대처하기엔 부족하다. 특히 행정부의 집행권이 국민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까지 확대되어, 권력 행사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제도적 제한 장치가 사실상 무력해질 위험에 직면한 현대국가에서, 공화주의 정신을 살리기에는 불간섭 자유의 개념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그래서 권력 행사 제도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비지배 자유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한편 자유는 주로 개인이 누리지만, 개인이 추구한다고 하여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국가와 사회를 통해 비로소 확보되는 권리이다.
“권리란 역사적인 것이지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법과 관습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을 때 그것은 권리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 아니라, 도덕적 요청 정도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영어판 독자를 위한 서문 중)
당연하겠지만 자유를 누리는 데는 책임이 따른다. 즉 누구나 자유(권)를 행사할 때에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 첫째,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둘째, 그 자유를 보장한 체제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위 둘째 개념은 사실상 첫째 개념의 한계, 즉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에서 도출된 개념이다. 흔히 공공복리를 위한 자유의 제한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 따지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내재적 한계에서 도출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이런 내재적 한계를 넘어서는 자유권 행사에 대해서는 권리의 남용으로 책임을 물어야한다. 미국 헌법과 더불어 근대 공화주의 자유권을 최초로 선포한 문건은, 프랑스 혁명의 주역 로베스피에르가 직접 기초하고 프랑스 국민의회에서 1789.8.26. 의결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일 것인데, 그 제11조 등의 규정에 이런 내재적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백두칭송위원회” 등이 전체주의 독재자를 칭송하는 행위는 우리 국민들에게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경계심을 무력화시킬 위험이 있다. 전체주의와 공화정 체제는 양립할 수 없고, 전체주의 체제가 들어서면 공화정 체제로 보장받던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셈이 되므로, 공화정 국가는 그들에게 권리의 남용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전체주의자를 칭송하는 행위는 자유권의 내재적 한계를 넘는 것이라, ‘표현의 자유’로 면책될 수 없다.
시민들의 공공선(public good)을 향한 책임 의식이 없으면 공화정은 유지될 수 없다. 마키아벨리 같은 공화주의자들은 이를 시민적 ‘비르투’라 불렀다. 그 ‘비르투’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시민적 덕성(civic virtue), 또는 시민성(civility)이라 할 수 있는데, 토크빌은 시민적 덕성은 종교와 좋은 교육과 법률을 통해 고양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적 비르투의 가장 좋은 본보기들은 ‘훌륭한 교육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 교육은 ‘좋은 법률에’ 그 기원을 갖는다.”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서문 중) 마키아벨리가 스파르타의 사실상 국부 격인 리쿠르고스의 법률을 칭찬하면서 한 말이다.
공화정의 운영원리인 시민적 덕성을 길러주기 위한 교육은 공화주의 공동체의 기본과제다. 공화정과 공화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이 공화국의 교육을 맡아선 안 된다. 가령 공화주의를 부정하는 수령 중심의 종북 이데올로기나 이상한 ‘평균주의’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공화주의 교육을 맡겨둘 수 없다.
맑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시장의 무질서를 과장하여 강조하면서, 맑스주의자들이 ‘시장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사회주의가 더 좋은 체제의 운영원리라고 주장하였다. 사실은 자신들이 절대 권력을 쥐기 위한 대중 선동용 프로파간다일 뿐인데, 마치 거창한 진리체계인 양 떠벌렸다. 이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이라도, 흔히 일사불란한 정치경제 질서를 세우면, 전체로서 그 사회와 나라가 더 번성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이다. 자유가 번영을 가져온다. 참주정 하의 국가는 쇠퇴한다.
“왜 인민들 사이에 자유로운 정부에 대한 애착심이 생기는지를 알아내기란 아주 쉽다. 경험이 말해주듯이 도시(즉 국가)들은 오직 자유로운 상태에서만 영토나 부의 증대를 이룩하기 때문이다.” ... “군주에게 이로운 것은 대개 도시(즉 국가)에는 해를 가져오고, 도시에 이로운 것은 군주에게 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제2권 제2장)
즉 전체주의 체제나 전제정 체제로 번영을 누리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근대 시민혁명을 통해 탄생한 근대 공화정은 그 자체로 시장경제 체제를 내포하고 있으나, 경제체제는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별도의 체제적 가치로 주장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번영하는 현대 국가의 조건은 공화정과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정립한 나라이냐 여부에 달렸다.
북한지역과 비교하여, 대한민국은 공화정과 시장경제 체제를 국가적 가치로 정립하였기에, 반만년 민족사에서 가장 번영하는 시기를 맞은 것이다. 비록 국민들은 이런 체제적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른 채 그 번영을 만끽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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