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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22>

당서, 삼국사기에 있는 일본국호 일본서기에 왜 없는가!

왜(倭) 일식집중관측지 일본열도 아닌 이유 말해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7-20 10:12:41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서기 720년 편찬된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사실과 다른 날조를 역사라 하고 있다. 예컨대 제1대왕은 진무황(神武皇)이며 서기전 660년 구력(舊曆)으로는 11(新曆으로는 211)에 즉위했다고 조작하고 있다. 메이지정부(明治政府)211일 이날을 기원절(紀元節)로 정했다.
 
그런데 이 조작된 진무왕(神武王)의 허구기록을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조작된 것이기에 일시 폐지했다. 그런데 일본은 다시 이 허구의 역사를 현재 다시 건국기념일로서 부활시키고 있다. 일본의 사서(史書)를 들여다보면 참으로 가공할 만큼 과감히 역사 왜곡날조하고 있음을 본다.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들을 살펴봐도 일본의 국호가 언제 부터인가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고 있다. 여기서 이해 할 수 없는 의문점은 일본역사를 쓰면서 일본국호를 변경한, “왜국호갱일본(倭國號更日本)”이라 하여 국호를 변경한 기록이 당서(唐書)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당서(唐書)만이 대륙의 왜()가 일본으로 국호(國號)를 변경한 사실을 분명히 표기하고 있는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국호가 언제 변경되었는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은 역사(歷史) 편찬자체가 처음부터가 잘못 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일식집중관측지(日蝕集中觀測地)는 양자강 이남임으로 왜왕계보(倭王系譜)도 이 지역으로 보아야함에도 일본역사서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본사교재는 하나같이 일본이 본래부터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있었던 것으로 날조(捏造)하여 말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허구의 왕계보(王系譜)는 왜()670년 타이완(臺灣)에서 국호를 변경하고 난지 390년이 지난 후에 이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 왜왕계보(倭王系譜)도 지역왕통(地域王統)으로 보아야 함에도 기록을 잘 못하고 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670년 이전은 왜왕(倭王)이고 그 이후는 일본왕(日本王)인 것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차분히 검토해 보면 그 내용이 일본열도에서 일어난 기록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어려운부분이 많아 일본열도의 역사로 볼 수가 없다. 사실이 앞뒤가 맞지 않음에서다.
 
여기서 잠시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짚어본다면,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일본의 위치는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라 타이완(臺灣)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은 타이완에서의 역사를 숨기고 있다. 그러나 이를 숨길 수 없다. 그것은 일식 등 자연현상으로도 충분히 입증 된다는 것이다.
 
오늘은 일본의 역사서라고 편찬된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얼마나 허황된 허구의 역사를 쓰고 있는지! 일식과 지진 등 자연현상에 나타난 기록은 과연 일본열도(日本列島)인지 아닌지. 아니면 어디인가? 일본서기의 그 곳은 일본열도가 아닌 타이완(臺灣)인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서기의 왜()와 일본은 일본열도가 아니었다
 
일본의 역사서를 보노라면 그들의 얼마나 대륙에서의 역사를 일본열도로 가져가기 위하여 사실을 숨기고 왜곡한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들의 역사는 8세기 히에다노 아례와 안만려萬呂)를 중심으로 712년의 고사기(古事記)720일본서기(日本書紀)를 편찬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첫 임금이라는 진무왕(神武王)이란 이름은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가 나온 후 800년경에 와서야 처음 등장한다. 어찌해서 그렇게 사서(史書)를 만드는데 정력을 기우린 역사서를 편찬하였는데 16세기에 와서야 등장한 것인가?! 그 누구도 의문을 갖게 된다. 여기에는 부여기마족의 일부가 왜()를 정벌한 사실을 숨긴데 있다고 보아진다.
 
또한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는 백제계인 인사가 이 사서를 썼기 때문이 아닌가! 도 생각되나 그 보다는 4세기 후반 왜()에 변화가 아주 급격한 사건이 일어난 것을 암시해 준다. 그것은 부여(夫餘) 기마족이 왜()를 정벌한 것에서 그 원인이 있다고 사료된다.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왕가(王家)의 분열상을 감추려는 끊임없는 조작이 행해 진 것 같이 말하고 있으나 당시 왜()가 원시생활을 하는 때라 수렵(狩獵)과 어노(漁勞), 채집(採集)에 의한 원시생활로 분열은 생각할 수 없는 시기로 사치가 아닌가! 본다.
 
한편 3세기의 중국사서 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에는 (;日本)에는 말()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갑자기 많은 말의 존재가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말들은 북방지역의 부여족이 길들여 사용하던 몽골말로 부여족이 왜()를 정복하여 지배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사에 동부여가 바다로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일본사는 이를 회피한다. 부여족의 일본 정벌을 최근까지도 역사에서 논하지 않았다가 도쿄대학의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교수가 이미 다 들어난 사실을 숨길 수 없어서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을 말하였다.
 
에가미(江上波夫)교수는 서기전 660년의 일본건국은 사실이 아니며 진무왕(神武王)의 존재도 허구(虛構)이고 4세기 기마민족(騎馬民族)이 왜()로 침입해 왔음을 선언했다. 그의 아들은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4세기 기마민족의 일본침입이란 예술사(藝術史)를 연구해 냈다.
 
이에 관한 연구도 일본보다 미국이 앞서고 있는 셈이다. 8세기 일본의 초기역사서를 편찬한 사가들은 왕가(王家)의 계보(系譜)가 신()의 시대에서부터 내려온 것으로 각색(脚色)했다. 일본왕실은 만세일계의 정통성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학자들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연구도 하지 않으면서 왜곡역사만추종하는 반도식민사관의 한심한 자들만이 이 이론을 따르며 지금도 부여기마족의 진실을 외면한다. 지금까지 이 사실을 숨기고 온 일본학계와 학자들도 모두 인정하고 역사를 바로 해 가는데 우리나라 학계는 모루쇠로 일관하는 한심한 지경이다.
 
이 당시 왜()는 주거(住居)나 집락(集落)도 수호(數戶)~십수호(十數戶)로 해안(海岸), 하천(河川), 늪지대에서 수렵(狩獵)과 어노(漁勞), 채집(採集)을 공동으로 작업하며 장로에 의한 지도, 혈연적 결합이 중심인 시대로 원시생활을 하는 시대라 국가도 왕가(王家)도 없는 시대이었다.
 
이 때 신공왕후(神功王后)신라를 정벌하여 굴복하였다느니’ ‘고구려를 침입하였다느니’ ‘왕자를 왜() 땅에 낳을 수 있도록 자궁에 돌을 끼워 막아서 출산을 지연시켰다등 허황된 억설을 늘어놓았다. 진실은 신공왕후(神功王后)가 신라 고구려가 아닌 왜()를 정벌한 것이었다.
 
일본 사가들은 부여기마족(騎馬族)이 왜() 원정(遠征) 중 두 인물의 전설적인 무공(武功)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당시 북방 부여기만족(騎馬族)이 신무기를 들고와 왜()를 정복한 것이다.
 
일본은 왜() 땅에서 태어난 자주적인 왕가라는 연출로 우리와의 혈연관계도 덮어버리게 역사를, 전후좌우를 엮어놓았으나, 이 기록은 허구임이 다 밝혀졌다. 고대 일본은 열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음이 과학적으로 다 밝혀졌고, 일식 등 자연현상은 오늘날의 과학으로 다 밝혀졌다.
  
▲ 일본서기의 일식관측지는 일본열도 아니었다
 
일본은 그들의 꾸민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통해 일본족이 일본열도에서 발전해온 것 같이 말하고 있으나 그 기록된 내용은 거의가 허구(虛構)요 날조임이 밝혀졌다.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보면, 그 내용이 일본열도에서 일어난 기록으로 엮어져 있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천황(天皇)이라는 호칭도 최소한8세기 왕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천황제도는 우리배달국시대부터 써 왔으나 왜는 해당되지 않는다. 실제로 8세기에 이르기까지 일본왕실은 전적으로 우리의 감독과 후견아래 있었다.
 
부여족의 왜() 정벌(征伐)은 일본사(日本史)에 결정적인 큰 변화의 역할을 했는데, 130여 년 간 지속된 부여족 가야伽倻)의 지배는 왜()에 처음으로 중앙집권체제(中央集權體制)’를 구축했다. 당시 문자(文字)가 일반화 되지 못해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8세기 일본사가(日本史家)들이 부여가야족의 왜()침입을 부정하고 반대로 왜()가 가야(伽倻), 신라, 고구려(高句麗)를 침입으로 바꿔서 설정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일본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일본이 일본열도(日本列島)에서 일어난 것인 양, 말하고 있으나 당시 자연현상이나 홍수(洪水) 지진(地震), 일식관측의 기록들은 양자강 이남의 대륙으로 나타나고 있고, 특히 일식집중관측지(日蝕集中觀測地)가 중국 남부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밝힌바 대로 일본의 국호(國號)670년 타이완;(臺灣)에서 당()의 승인으로 쓰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부정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일식집중관측지(日蝕集中觀測地)가 양자강 이남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일본열도기록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곳은 고구려, 백제가 남으로 오월(吳越)과 북으로 유연제로(,,,,)에 있을 때, 안휘성(安徽省)을 중심으로 그 곳에 있던 사로신라(斯盧新羅=西新羅)와 왜()의 역사이지,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 중국 남부로 확인되고 있기는 것이다.
 
이는 670년 이전의 왜()는 양자강이남에서 쫓겨난 왜인(倭人)들이 본토회복(本土回復)을 못하고 타이완;臺灣)을 근거지로 하고 신천지를 개척하며 분주하던 때의 기록으로 보아야 한다.
 
양자강 이남이라면 임나(任那)나 왜()의 위치는 어디인가? 여기에서 왜(), 임나(任那)의 위치를 밝혀줄 기록은 숭신(崇神)65년 기록에서 축자국의 위치를 알 수 없음으로 임나위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신라, 백제 가라(加羅)와 같은 곳에 있을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중국25사 동이(東夷)의 위치에서 벗어 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임나(任那)의 위치도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와 왜()의 위치도 삼국사(三國史)()46과 남제서 권58에 나타낸 유연제노오월(,,,,,)지역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일본서기의 일식(日蝕), 지진(地震) 기록
 
먼저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보는 일식(日蝕)을 보면, (1), 스이코(推古;593~628)36(628410일의 일식, (2), 죠메이(舒明;629~641) 81월과 9(637) 3월 일식(실현41), (3), 텐무(天武)9(6801127일 일식과 68110월 일식(실현11,16)(4), 지토우(持統)510월일식, 76933, 9월일식(실현693105), 8(6943, 9월 월식. 10(6967월 일식들의 위치는 모두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라 타이완;臺灣)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으로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보는 지진기록(地震紀錄)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진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마큼 지진이 많은 나라이다. 필자가 일본유학 시 10여 년 간의 지진은 아래 말하는 지진보다 더 많은 지진이 있었다. 수도 없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일본열도에서 유사 이래 687년까지 지진이 13회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가되지 않는다. 이정도의 지진은 1년간의 것도 못 미치는 기록은 이곳이 일본열도가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보는 지진기록을 보면, 한제이(反正;406~410) 5(4117월 지진, 스이코(推古;,7(599) 41일 지동(地動), 코우쿄쿠(皇極;642~645)때인 642108~9일의 지진이 있었다. 231년 동안 13번밖에 지진이 없었다하는 것은 이곳이 일본열도 아닌 것이다.
 
텐무(天武)4(67511월의 지진, 6791114일의 지진, 6811018일 지진, 682119일과 37, 717812일과 19일의 지진 6841014일 지진 때는 산이 문어지고 냇물이 넘쳤다고 하고 있다. 1210일과 19일의 지진을 기록하고 있어서 이 텐무(天武)왕 때가 7번으로 가장 많이 기록하고 있다. 지토우(持統) 16871117일 지진이 있었을 뿐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타난 장마 비의 기록을 보면 닌토쿠(仁德;(395~427)4년에 풍우
(風雨)가 오고, 닌토쿠(仁德) 11년에 4월 장마가 졌고 스이코(推古) 34(626)에는 3월부터 7월까지 장마가 졌다고 했다. 우리나라나 일본의 위도 상 3월과 44월 장마는 찾아 볼 수 없다.
 
또 죠메이(舒明);8(636) 5월에 장마가 졌고, 홍수가 났다고 했으며 코우교쿠(孝德;645~ 654) 3년 때인 6474월에는 장마 큰비가 9일째 계속 와서 집이 문어지고 논에 심어놓은 모가 상()했다고 했다. 당시 일본열도에 모를 4월 다 심어서 장마 때 상한 예가 있는지 의문이다.
 
일본열도(日本列島)3~4월부터 장마는 없었다. 장마가 졌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과연 이 곳이 일본열도(日本列島)인가? 아닌가! 역사는 제아무리 숨기려 하여도 일식(日蝕), 장마, 메뚜기 피해 등 자연현상까지 일본열도와 양자강 이남의 왜()가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이 제아무리 역사를 날조하며 왜곡해도 일식과 장마철과 자연현상에서 벌어지는 것을 숨길 수 없다. 또한 일본열도에 코뿔소가 있고 코끼리가 있으며 물소가 있는가?! 중국 일본사를 읽다보면 도저히 말도 되지 않은 사실을 진실인양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조작 날조일 뿐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일식집중관측지(日蝕集中觀測地)도 양자강 이남의 타이완을 가리키고 있다. (以上吳在成, ‘九黎系 倭-日本史’ 58~61面 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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