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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의 음양오행 경제

호랑이는 죽어도 가죽을 남기나니

죽은 뒤에도 그 사람의 운세 순환은 이어진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7-31 10:04:36

▲ 명리학자 김태규 칼럼니스트
제멜바이스 거부반응이란 말이 있다. 영어로 Semmelweis Effect 라고 한다. 기존의 신념이나 상식에 반하는 주장이 나올 경우 일단 거부부터 하고 보는 현상을 일컫는다.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지구는 돈다고 했을 때의 거부 반응 같은 것이다.
 
오늘날 알려진 무수한 과학적 지식과 상식들은 처음 나왔을 때 아, 그렇구나 하고 순순히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일단 거부되거나 외면받기 십상이었다. 
 
새로운 발견이나 지식이 등장하면 거부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의 권위자라든가 그 지식을 통해 권력과 이득을 누리는 기득권층에 대해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리 재수 없던 어느 의학자의 억울한 이야기 
 
제멜바이스 이펙트는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란 헝가리 출신 의학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대단한 발견을 하고도 재수가 없어서 억울하게 죽은 남자의 대명사라 하겠다. 
 
1847년 무렵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수도인 비엔나 종합병원의 수석 레지던트로 일하던 제멜바이스는 당시로선 놀라운 추론을 제시했다. 가정에서 분만하는 경우보다 종합병원에서 아기를 낳는 산모들의 사망률이 현저하게 높았는데 그 원인으로서 의사들이 손을 잘 씻지 않고 수술 기구들의 소독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란 추론이었다. 
 
당시만 해도 세균 감염이란 것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제멜바이스의 주장은 절대 다수의 의사들로부터 거부당했다. 하지만 제멜은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상전격인 의사들이 시술이나 수술을 할 때마다 찾아다니며 염소 소독을 하도록 했다. 거의 싸우다시피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아기를 낳다 산욕열로 사망하는 산모들의 건수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현저하게 낮아졌던 것이다. 
 
효과가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멜은 병원에서 쫓겨났다. 어린놈이 너무 설친다는 것, 기존의 알려진 의학적 지식에 없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으니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서 잘린 것이다. 만일 제멜의 주장이 맞는다면 그간에 죽은 산모들은 죄다 의사들의 책임이 될 것이 아닌가! 
 
제멜은 그 이후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의사들과의 투쟁을 해야 했다. 의사들의 공적(公敵)이 된 셈이다. 최초 주장을 한 때로부터 15년이 흐른 1862년엔 그간의 연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문을 발표했지만 의사협회로부터 더욱 싸늘한 냉대만 받았다. 
 
대단한 의학적 발견에도 불구하고 맞아죽은 제멜바이스
 
그러다가 그간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3년 뒤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되었고 2주 뒤 철창에서 반항하다가 맞은 상처로 인한 감염 때문에 급사하고 말았다. 
 
세균이란 것이 있어서 병을 유발한다는 것은 제멜이 죽은 1865년으로부터 12년이 흐른 1877년에야 발견되었다. 알베르토 코흐가 탄저균을 발견한 것이 최초였다. 세균학과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사람 말이다. (사실 코흐 역시 세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엄청 고생을 해야 했지만 제멜바이스보다는 운이 좋았다.) 
 
제멜바이스는 죽은 뒤 철저하게 잊혀졌다. 하지만 코흐의 연구 공로에 의해 세균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산모들의 산욕열 역시 세균 감염이 원인이라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다. 제멜바이스가 입증을 하진 못했지만 그의 추론은 정확했던 것이다. 
 
제멜바이스의 명예 회복
 
그러자 의사들은 서서히 사태 수습에 나섰다. 옛날 제멜바이스를 무시했던 선배 의사들은 이제 주요 자리에서 떠났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니 수습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 선배들이 ‘잘못 했습니다’, ‘우리들은 물론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하며 제멜바이스를 인정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부랴부랴 공동묘지에 묻혀있던 제멜바이스의 시신을 찾아서 그가 태어난 고향 마을로 이장을 하고 무덤을 잘 꾸며주었다. 예우를 갖춘 것이라 하겠으니 1891년이었다. 그의 사후 26년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53년이 흐른 1964년, 제멜바이스 사후 99년이 되던 해에 그의 유해는 그가 태어난 생가로 다시 이전된 뒤, 집이 제멜바이스 박물관으로 꾸며졌다. 헝가리 정부가 국가적 예우를 해준 것이다. 
 
제멜바이스의 사주와 운명
 
이 대목에서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의 사주와 운명을 간략하게나마 알아보자. 1818년 7월 1일에 태어나 1865년 8월 13일에 세상을 떠났다. 47년의 짧은 생애였다. 맞아 죽었으니 그렇다. 
 
1818년 7월 1일 생이고 생시는 미상이다. 무인(戊寅)년 무오(戊午)월 을축(乙丑)일이 된다. 생시를 몰라도 운기의 절정인 입추(立秋)는 1835년인 을미(乙未)년이고 입춘 바닥은 1865년인 을축(乙丑)년이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침 공교롭게도 1865년에 사망했으니 입춘(立春) 바닥에 죽은 셈이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맞아죽었다는 사실. 새로운 사실을 함부로 주장했다는 죄로 말이다. 세상은 이토록 무서운 곳이다. 다만 조금씩 좋아져가긴 한다. 
 
의학 공부를 했고 그 바람에 일생을 통해 가장 화려한 운세이던 한로(寒露)의 운, 일생을 한 해로 치면 가장 좋은 때인 10월 초 무렵인 1846년에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비엔나 종합병원의 수석 레지던트로 임명이 되었다. 이제 열심히만 하면 앞날은 보장되었다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너무 열심히 일한 게 탈이었다. 다음해인 1947년 그는 산모들의 높은 사망률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오염물질에 의한 것이란 확신을 얻었고 그 결과 자신의 추론을 병원의 의사들, 즉 자신의 상사들에게 제시했다. 
 
쫄다구 주제에 엄청나게 싸워가며 시술할 때마다 돌아다니며 기구와 손을 소독하도록 했고 그로 인해 대단히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그게 오히려 탈이 되었던 것이다. 그 뒤로 제멜바이스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가망성 없는 1인 시위 격이라고나 할까. 미친 놈 취급을 받았을 것은 당연지사. 한창 운이 좋을 때에 획기적인 주장을 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된 셈이다.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된 상태에서 반항을 하다가 구타를 당한 것이 원인이 되어 급사하고 말았으니 때는 운세가 입춘 바닥인 1865년 8월 13일 이었다. 
 
죽은 날의 간지(干支)를 보면 전후 사정을 읽어낼 수 있다. 을축(乙丑)년 갑신(甲申)월 을묘(乙卯)일이니 운세가 큰 바닥에서 뭔가 희망을 찾으려는 몸부림 때문에 결국 구타로 인한 상처가 감염으로 번져서 죽은 날은 더 이상 희망이 사라지는 날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원혼(冤魂)이 되었을 것이니 참으로 억울한 죽음이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세상의 이치
 
하지만 하늘은 무심하지 않고 옳은 것은 반드시 세월이 흘러도 되살아나는 법이다. 제멜바이스의 억울한 원혼은 죽은 지 99년이 흘러 생가가 박물관으로 꾸며지면서 풀어졌을 것이고 지금은 박물관 안에서 편히 지내고 있으리라.
 
나 호호당은 오랜 연구를 통해 세상 이치에는 어김이 없다는 점을 무수히 통찰해왔기에 확신을 가지고 드리는 말이다. 
 
그가 사후일지언정 인정을 받아 처음 이장된 때는 1891년이었는데 이 시기는 그가 비록 죽었으나 운세 흐름이 입추 다음에 오는 명예의 운, 나 호호당이 쓰는 표현으론 황금의 관운(官運)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박물관이 만들어진 것은 1964년 갑진(甲辰)년이니 그 역시 또 다시 운세가 피기 시작하는 소만(小滿)의 운이란 점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의 운세 흐름에 있어 재운이 돋아나는 1969년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의과대학을 개명해서 제멜바이스 의대로 개명이 되었다. 
 
사람은 죽었어도 그의 운세 순환은 이어져가는 법이라
 
이처럼 사람은 죽었어도 그 사람의 운세 순환은 이어져간다. 신기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 호호당은 그간 이런 케이스를 워낙 많이 검증해온 터라 전혀 놀랍지 않다. 
 
나 호호당은 사람이 태어난 날의 사주 간지를 보면 일정한 주기, 즉 60년 그리고 더 길게는 360년에 걸쳐 진행되는 운의 순환 과정이 있음을 발견했다. 기존의 사주명리학과는 차원이 다른 법칙이다. 무수한 검증, 거의 10만 건의 케이스를 통해 검증해봤고 확인할 수 있었기에 너무나도 명확한 과학적 법칙이다. 
 
하지만 내가 대단한 발견을 했다고 해서 서두를 마음 전혀 없다. 이거 진짜입니다,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하고 떠들어 본 들 쉽게 될 성질의 것이 아닌 까닭이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의 내용이 기존의 틀을 흔들어놓는 강도가 클수록 쉽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가령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이 인정을 받으려면 오늘날 글로벌 권력의 중심인 미국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라 본다. 그런 다음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쪽으로 역수입될 것 같으면 가능할 일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나 호호당이 죽은 뒤 한참 후의 일이겠지만. 
 
실제 상담은 물론이고 구글이나 위키를 통해 무수한 사람들의 운명을 검증해오는 과정에서 나 호호당은 이런 억울한 케이스를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유전법칙을 발견한 ‘그레고어 멘델’ 역시 당시 유럽의 후미진 시골 마을 수도원의 수사였기에 그가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 인정받기까지 무려 35년이나 걸렸다. 그가 죽은 뒤 16년 뒤의 일이기도 하다. 
 
죽은 뒤에도 그 사람의 운세 순환은 이어진다. 물론 망자(亡者)가 그 흐름을 인지할 것인지는 당연히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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