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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편하게 사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다. 오히려 사소한 일로 감정이 쌓이면서 불편하게 지내는 경우가 있다. 국가 간의 관계도 대동소이하다.
특히 과거 약육강식이 횡행하던 시기에는 힘 있는 국가가 그렇지 못한 이웃 국가를 짓누르고 배속시켜 주변을 정리하려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리같이 주변에 열강들이 다수 포진돼 있으면 쉽게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기 일쑤며, 힘이 없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십상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한민족에 많은 굴절의 역사가 있었지만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흡수당하지 않고 국가의 틀을 유지해 나온 것은 그나마 평가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단면들을 볼 때 굴종과 패배의 시기가 적지 않았으며, 이는 현재의 세대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이조 500년 동안 중국에 대한 조공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36년간의 식민지, 그리고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멍에가 드리워져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당당한 국가로 자리를 잡아가느냐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안고 있는 크나큰 숙제다.
요즘 한·일 간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자주 인용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온당한 말이다. 그러나 역사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미래를 부정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지나 않은 지도 되돌아 볼일이다. 치욕적인 역사를 가진 국가들이 이를 극복해 나가는 방법과 과정을 보면 다소간의 차이점이 발견된다. 치부를 간직한 채 의연하게 현실적인 대응을 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가해 국가에 대해 사사건건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긴장을 조성하는 쪽도 있다.
후자의 경우 가해자의 진솔한 사과와 반성이 미흡하다는 것이 원인 제공을 한다. 상대와의 마찰은 물론이고 때론 내부적인 분열이 일어나면서 갈등을 겪는다. 반면 전자는 지나간 과거에 구태여 연연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철저하게 실리를 챙긴다. 이는 단지 옳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쪽이 더 현명한 지를 신중하게 판단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감성에 치우치다 보면 흥분하게 되고, 가해자를 넘어서는 진정한 역사 극복과 더 멀어지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20세기, 지구상의 많은 약소국들이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와 1∼2차 대전의 희생양이 돼 엄청난 수모를 겪었다. 베트남과 같은 나라는 통일을 위해 미국, 프랑스 등 외세들과 무려 25년에 걸친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이들 국가들이 입은 피해와 상처, 그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고난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한편으론 원수와 같은 가해자들과 화해를 하면서 손을 잡고 대등하게 협력하는 국가들도 많다. 역사 청산에 민감한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어색하고 과연 배알이 있기나 한 지 의문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도 아픈 역사는 결코 잊을 수 없겠지만 치유하고 극복해 나가는 방법이 다름을 알게 되면서 숙연해진다. 아픈 역사를 자꾸 들추어내어 긁어 부스럼을 만들거나, 과거에 대한 반성을 외면하고 있는 상대에게 구차하게 종용하는 것 또한 공허하기만 하다. 우리도 이제 먹고 살만한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왔으니 좀 더 성숙해지고 의연해지려는 노력을 할 때가 되고 있다.
역사 평가에 매번 일희일비하기보다 긴 안목으로 실시구시적인 접근을 해야
위안부 소녀상이나 강제 징용자상을 군데군데 세우고 일제 잔재를 뿌리 뽑겠다는 학교 내의 나무를 베고 친일 인사가 만든 교가를 폐지하는 등의 행위가 중단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울분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진정한 극일(極日)과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일제의 만행이나 그들이 저지른 무자비한 행위에 대해서는 한·일 역사박물관 같은 한 곳에 집결시켜 미래 세대들이 잊지 않고 산 교훈을 얻도록 할 수는 없을까? 여기저기에 산발적으로 분산시켜 시도 때도 없이 분노를 충동질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지는 새겨볼 일이다.
친일 행위에 대한 비판도 같은 맥락이다.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해 공개하되 역사에 대한 비판은 후세에 맡기는 편이 낫다. 독립운동 등 애국적 행위를 한 인사들은 추앙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사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일인가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구한말 위정자들의 시대착오적 판단과 무지로 인해 나라를 빼앗긴 과오가 더 크다. 먹고 살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을 쳤던 굴곡진 민초들의 삶은 일정 부분 이해돼야한다. 이는 통한의 역사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성숙한 국가들의 모범 사례들이기도 하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번 일본의 행동은 떳떳하지 못하다. 자칫 이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거나 감정적으로 격앙이 되면 오히려 일본의 술수에 말려들 수도 있다. 보다 의연하고 냉정하게 현실을 관리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아베 정권의 무리수에 대한 일본 내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정치적 타협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동북아 정세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고 미국의 중재 조짐도 보이고 있어 그리 오래 가지 않고 봉합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다만 이번 일이 타산지석이 돼 소탐대실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한·일 양국 관계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치를 새롭게 정리해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가 일본의 아성을 제치고 당당하게 글로벌 밸류 체인의 중심에 서게 된 것도 본연의 자세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동남아나 중동 등 서구 열강의 횡포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시장에서는 우리의 포지션을 견고하게 유지해 왔다. 안타깝게도 이 엄중한 시기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일 갈등 혹은 친일 패러다임이 집권당에 유리하다는 해괴한 분석이나 하고 있는 자들을 보면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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