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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기억으로는 국내 사업 환경이 좋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자영업자건 기업이건 간에 ‘사업 할만하다’란 소리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아도 사업하는 사람들은 엄살을 떤다. 대기업은 호황일 때도 리스크-가장 큰 리스크는 국내 정치다-를 핑계로 투자를 꺼리고 몸을 사렸다. 그러면서 사내유보금을 천문학적으로 늘려나갔다.
물론 주자(朱子)의 안불사난패후회(安不思難敗後悔)란 교훈처럼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는 것을 뭐라 할 순 없어도 경기활성화를 위해서는 위기만 논해서는 안 된다. 경제심리란 말이 있듯이 경제는 소비심리에 지배를 받는다. 심리가 경기 활성화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변수인 것이다. 소비심리 전선(戰線)에서 가장 먼저, 심각한 타격을 받는 업종이 외식업이다.
경기가 위축되면 의식(衣食) 등 피복비와 외식비를 줄인다. 의식주에서 주거는 쉽게 줄이고 늘릴만한 요소가 아니다. 해서 가장 접근이 쉽고 빈도가 높은 ‘의식’ 분야에 손을 대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횟수가 더 잦은 외식에 대한 지출을 줄이기 시작한다. 국민들이 하루 한 끼 외식만 줄여도 외식업은 실시간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다.
최근 직장 문화가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워라밸’로 바뀌고 있다. 강제적이고 틀에 박힌 회식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과거처럼 부어라 마셔라 음주 문화가 없어지고 영화관람 등 다른 형태로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워라밸’ 때문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곳은 어디일까.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외식업이 1차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먹고 마시는 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워라밸’ 중시 등 회식문화 변화로 외식업 휘청
외식업은 2016년 9월28일부터 시행에 들어 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으로 인해 이미 한방 얻어맞아 그로기 상태였다. 법인카드 사용이 줄면서 직장의 접대, 회식문화를 바꾸게 만들었다. 회식이 사라진 자리를 워라밸이 차지하면서 북적이던 식당가는 발길이 뜸해졌고 2차 여파로 노래방과 생맥주집 같은 2차 업종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최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권리금 없이 나온 노래방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올 봄에 서울의 대표적인 원도심이자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북촌일대를 밤 마실 한 적이 있다. 오후 7시 무렵이면 식당에 손님이 한창 북적일 시간인데, 헌법재판소 뒤편 일대 상권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해외 관광객이 줄어든 여파도 있지만 인근 익선동 상권이 발달하면서 손님을 빼앗긴 탓이다. 3~4년 전 상업시설이 불과 2~3곳 밖에 없었던 익선동 한옥골목은 이제 일반주택이 2~3채 밖에 남지 않은 상업지역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 지역은 최신 외식업 트렌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외식업을 흔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한다. 좋은 입지, 최고의 조리 기술, 경영마케팅 능력이 뛰어나다고 식당을 모두 성공시킬 수 없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맛이 좋으면 산골짜기도 찾아가고 별 맛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늘 대기줄이 서 있는 식당이 있는 반면, 최고의 음식 실력을 가진 유명 셰프 식당도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외식업은 운이 따라줘야 하는데, 운을 등에 업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딱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노력’이다.
경기 이천 <오동추야> 이완성 대표,
“더 높은 목표를 위해 과감한 투자”
노력은 몇 가지 요소를 내포한다.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 능력과 끊임없는 벤치마킹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다. 3년 전 경기도 안성 숯불갈비전문점 <오동추야> 이완성 대표를 만날 일이 있었다. 돼지갈비와 함흥냉면이 유명한 집이다. 당시도 영업 비교적 잘되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능동적인 환경변화를 통해 한 단계 도약을 꿈꿨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조력자를 구하고 있었다.
음식 만드는 데 기본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메뉴와 사이드반찬 등에 변화를 주는 것이 어렵지 않은 상황. 널찍한 실내와 주차공간도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였다.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후 전문 컨설팅 팀이 투입됐다. 필자는 옆에서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컨설팅이 거의 끝날 때까지 세 번 정도 방문을 했는데, 늘 음식과 업장 운영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던 이 대표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또한 함께 일하던 그의 부인에게서 역시 훌륭한 내조자, 조력자, 동업자로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2년이 지난 올 봄 우연치 않게 지역을 지나면서 일행과 식사를 하기 위해 들렀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두 가지 달라진 점을 발견했다. 좌식테이블이 입식으로 바뀌었고 또 하나는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찬 업장 모습이었다. 뒤이은 상차림도 전 보다 풍성하고 짜임새 있었다. 메뉴도 늘어나고 실내도 밝아졌다. 이제는 경기도 이천의 대표적인 맛집이 됐고 자가 건물을 지어 식당을 하겠다던 이 대표의 목표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동력이 됐다.
마포 <고로리야 하루카> 박동채 대표
“공부 더 필요해서 2년 정도 휴업”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 있는 오마카세 일식당 <고료리야 하루카>의 박동채 대표는 이달 말까지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는다고 했다. 단기간이 아닌 2년 이상의 장기다. 문 닫는 이유에 대해 박 대표는 “공부가 더 필요해서”라며 말을 아꼈다. 스페인 카탈루냐에 있는 세계적인 레스토랑 엘 불리(El Bulli)가 문을 닫는 이유와 겹쳤다. 이달 초 찾은 <하루카>는 여전히 간판도 없고 자주색 노렌(暖簾, 일본 상점 입구에 걸어 놓은 천)에도 상호를 적어 놓지 않았다. 그래서 식객들은 이 집을 ‘간판 없는 일식집’이라고 부른다.
다찌에 좌석이 열세 개로 예약손님만 받는다. 1인당 오마카세 7만원. 오마카세는 주방장 특선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날그날 주방장이 메뉴를 정해 손님한테 선보이는 코스요리다. 이날도 차가운 감자샐러드를 시작으로 일본 요리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감과 담음새가 앙증(?)맞은 요리들이 줄지어 나왔다. 오너 셰프 설명에 따르면 대부분 식재료들이 일본에서 건너 온 것이다. 필자 입맛에는 치구젠니(ちくぜんに, 筑前煮)가 양적으로나 맛으로나 마음에 들었다.
치쿠젠(筑前)은 후쿠오카에 있는 지명이고 니(煮)는 조림음식을 말한다. 곤약, 닭고기 등을 간장에 조려냈는데 맥주와 궁합이 잘 맞았다. 참지 중뱃살‧붉은살, 참돔, 우럭, 청어, 한치, 관자 등 적당히 숙성한 어패류의 식감은 쫄깃한 활어와 달리 뭉근한 면이 있는 데,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어서 색달랐다. 2년 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 온 <하루카>의 변화는 어떨지 기대된다.
강남대로 <서경도락> 성현석 대표
“자존심 버리고 안 되면 되게 하라”
“검증된 노하우로 오랫동안 운영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서경도락> 성현석 대표가 <장수가>라는 브랜드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할 때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때가 소위 한창 잘 나갈 때였다. 본점까지 합쳐 가맹업체가 11개까지 늘어났던 때다. 부대찌개와 두루치기가 유명세를 타서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해마다 돼지 구제역이 터지면서 영업을 위협했고 무제한 삼겹살 등이 나타나면서 시장 상황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익이 악화됐다.
성 대표는 과감하게 브랜드 리빌딩에 나섰다. 그러나 단순한 리빌딩으로는 위기 극복이 어렵다는 진단 결과가 나오자 대변신을 도모했다. 11개였던 <장수가>는 여의도에 한 곳만 남겨두고 모두 정리했다. 대신 <서경도락>이라는 직화 소불고기와 평양냉면 전문점 브랜드를 론칭했고 지금은 강남대로와 마포 등 2곳에서 선전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을 하는 과정에서 성 대표는 자존심을 버렸다. 일단 생존하는 데 집중했다. 큰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위기를 탈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컨설팅을 통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다행히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성공적인 컨설팅보다는 이를 적극적으로 단행했던 성 대표의 결정에 방점이 있다. 만약 당시 구조조정 시기를 놓쳤다면 지금은 <서경도락>은 탄생도 못했고 <장수가> 역시 하나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외식업이 위기다. 국내 경기가 한 번도 좋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외식업도 호황이 없었다. 좋아질 호재는 없고 악화될 악재만 줄줄이 대기 중이다. 심지어 한일간 갈등이 애꿎은 일식집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외식업을 하는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다양하게 목격된다. 운칠기삼의 외식업, 정답은 없다. 경영개선을 위한 업주의 노력과 변화대처 능력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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