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변기·아메리카의 신선한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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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변기·아메리카의 신선한 조합

스카이데일리 칼럼

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19-09-20 05:02:23

지난 주말 영국에서 전시 중이던 설치작품 ‘황금변기’가 도난당해 언론에서는 영국이 발칵 뒤집어졌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탈리아 작가가 만든 이 작품은 영국 옥스퍼드셔에 있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생가 블레넘궁에서 전시되던 중 주말 새벽에 감쪽같이 사라졌던 것이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이 변기는 전시장에 온 관객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됐다. 때문에 수도 배관이 연결된 변기를 떼어가면서 범인은 전시장인 블레넘궁을 물바다로 만들어놓고 떠났다.

도난당한 황금변기는 18K 황금 103kg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재료 가치만 따져도 47억원이 넘고 작품 가치로는 70억원에 육박한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황금을 가지고 역시 보통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멀리하고자 할 만한 변기를 만들겠다는 작가의 발상도 재미있는데 더 흥미로운 것은 작품명이 ‘아메리카’라는 사실이다.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황금과 변기를 결합시킴으로서 지나친 부(富)에 대한 조롱과 풍자의 뜻을 작품에 담았다. 여기에 ‘아메리카’라는 타이틀을 붙인 것은 꽤나 적절해 보인다.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선도하는 미국의 상징적 위상도 그러하거니와 실제로 전 세계 금의 80%에 가까운 양이 미국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사실 금이 인류의 눈을 현혹한 이래 거의 8000년 동안 황금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물질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다. 인간이 금을 귀히 여기게 된 것은 그 아름답게 빛나는 황금빛 광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느 금속과 달리 세월이 가도 녹슬지 않는 변함없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세월에 시달리지 않는 영원성, 그것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세계의 속성이다.

15세기~18세기에 걸친 대항해 시대에 유럽에서는 황금으로 도배된 도시에 대한 전설이 있었다. 스페인어로 황금을 뜻하는 ‘엘도라도’는 대항해 시대에 특히 스페인 정복자들을 탐험에 나서도록 유혹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탐험가들이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향한 꿈과 목숨을 바꿔야 했다.

누구나 그 세계를 염원하지만 어느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그 세계를 눈부신 황금이 가리키고 있었다. 또 누구나 가질 수 없는 희소성으로 인해 금은 그 가치가 더욱 빛났다. 힘이 있어야 황금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또 황금을 손에 넣은 자가 권력도 함께 쥐게 됐다.

황금변기 ‘아메리카’의 작가 카텔란은 자신의 대표작인 이 작품의 의미를 “99%를 위한 1%”라고 설명했다.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이 작품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한 사람 당 3분 동안 변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해 두었다. 블레넘궁에서 70억원 가치의 초호화 변기가 도난당하도록 감독을 소홀히 한 이유도 누가 ‘더러운 변기’를 훔쳐갈까 하고 방심한 데에 있었다.

카텔란의 의도대로 상위 1%의 수퍼리치들만이 누릴 수 있는 황금변기의 호사를 99%의 대중들이 전시장에서 누릴 수 있었다. 가장 고귀한 황금 덩어리를 깔고 앉아 가장 더러운 것을 담는 도구로 써보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작가 카텔란의 작품은 예술작품들이 그러하듯 기존의 관념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틀에 박힌 인습에 저항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작가는 황금과 변기라는 전혀 이질적인 사물을 조합해서 낯선 개념을 만들어냈다. 또 거기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붙여 제3의 의미를 창조했다.

사물과 이름의 관계, 즉 기호와 사물 혹은 개념과의 관계에 구조를 대입한 이는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였다. 그에 따르면 기표와 기의는 구조적으로 맺어진 관계이며 이는 달리 말하면 사회적 약속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소나무를 보고 소나무라 부르든 대나무라 부르든 소나무 자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사회적 약속체계 속에서 대나무가 아닌 소나무로 구분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사회적 약속을 깨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카텔란의 황금변기 이전에도 변기가 작품으로 전시되어 충격을 준 적이 있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물(Fountain)’이다. 그는 화장실에서 가져온 듯한 소변기를 그대로 작품이라면서 전시장에 내놓았다. 그 작품이 일반 변기와 다른 점은 작가의 서명이 적혀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작가는 서명을 통해 ‘나는 이것을 평범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거부한다’고 주장한다. 어찌보면 예술작품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새로운 시선 속에 있다고 강조한 셈이다.

황금변기 도난 소식을 전해들은 작가 카텔란의 반응이 신선하다. 그는 “누가 멍청하게 변기를 훔쳐가느냐”고 말하고는 그것이 황금덩어리라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고 덧붙였다. 같은 사물을 두고 변기가 아닌 황금으로만 가치를 인식한 범인의 변기탈취사건은 작가에게는 그저 새로운 관점과 통찰력을 부여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