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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기업에게 모국(母國)이라는 개념이 희석된 지 오래다. 적은 비용으로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해 터를 잡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과거에는 코스트가 저렴하고 시장이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것이 원인이었다. 이제는 규제가 덜 심하고, 이익에 대한 세금이 낮으며, 대를 이어 기업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갈 정도로 그 원인이 훨씬 더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산업의 공동화나 애국심에만 호소하면서 모국에 남아달라고 애걸복걸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더 이상 한국에서 기업을 하는 것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판단 하에 해외로 옮겨가는 기업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당연히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 기업의 수도 감소하고 있다.
심지어 있는 기업마저 떠나려는 채비를 한다. 사용자의 위상은 갈수록 약화되는 반면 노동자의 위세가 상대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비정상이 정상을 압도, 글로벌 기준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이를 부추긴다.
최근에는 기업에 이어 개인에게도 조국(祖國)이라는 실체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지난 1970년대에 상당수의 국민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유도 다양했다. 한국에서 먹고 살기 어려워서, 그리고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서 소위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품고 이주를 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 중 일부는 한국에서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낙인이 찍혀 더 이상 이 땅에 살기가 어려워서 옮겨간 부류들도 꽤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2∼3세 교육을 희생을 하면서 꿈을 이룬 사람들은 불과 극소수에 불과하다. 기회가 많다고 하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 성공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지만 여러 가지 여건 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살아간다. 자연스럽게 한동안 한국인들의 해외 이주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다른 나라의 여건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의 삶이 그리 나쁘지 않고 찬스를 잡을 수 있는 확률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경제가 그나마 버텨줄 때의 이야기다.
다시 상황이 반전되고 있는 것인가. 요즘 강남 일대에서는 주말에 미국 투자 이민 설명회가 성황리에 열린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관심 인사들이 몰려들면서 북새통이다. 미국 영주권 취득 조건이 오는 11월부터 EB-5 간접투자의 경우, TEA (낙후된 고용 촉진 지역)에 투자하는 최소 투자 자금이 50만 달러에서 90만 달러로 인상된다는 발표가 이들을 분주하게 하고 있다. 관심 국가도 미국뿐만 아니고 캐나다·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이주 희망자도 5060 세대에서 3040 세대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한국에서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는 세태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결과여서 씁쓰레하다. 갈수록 나빠지는 경제 환경에다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안보 상황도 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교육 환경도 젊은 부부들을 합류시킨다. 심지어 부자들의 경우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을 줄이고 쾌적한 노후를 즐기기 위해 이 흐름에 편승한다. 완전한 이민이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영주권이라도 얻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정치는 4류, 경제는 악화일로, 안보는 갈수록 불안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조장
지방도 예외는 아니다. 일자리 없는 곳에서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이주를 하는 무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10년 전에 같은 주물단지 유치를 발표했던 경남 밀양과 충남 예산의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 밀양에는 28개사가 들어와 2200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예산은 주민들의 반대로 1개사 유치에 그쳤다. 지자체의 역할도 컸다.
환경 공해에 대한 주민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 여하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3년 이상 숙련공의 연봉이 5천만 원을 넘고 있어 밀양에는 타지에서 청년들이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유사한 사례를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치열한 기업 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입 정착금으로 직원들에게 20만원을 지급하는 지자체까지 생겨날 정도다.
반면 강원도 도민의 숙원사업이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다. 환경 영향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관광 혁신과 주민들의 이익이 침해를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규제, 혁신, 비전, 주민 마인드 등이 지방의 미래를 크게 바꿔놓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인바운드(In-bound)와 아웃바운드(Out-bound) 경제를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세계의 국가, 지역, 도시들은 인바운드 경제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다. 즉, 나가는 경제가 아닌 들어오는 경제를 만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경쟁자보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현재 들어와 있는 경제적 파이는 나가지 못하게 꽁꽁 묶고 새로운 파이를 끌고 들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당연히 기업이나 개인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빠르게 움직인다.
이들을 두고 이기적이다 혹은 매정하다고 손가락질을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각박하다. 이런 현상을 목도하면서도 우리 정부는 아웃바운드 경제를 조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우습게보고, 세금은 천정부지로 올리면서 지출은 물 쓰듯이 한다. 장바구니 물가는 스위스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생산 원가가 높고 유통 단계가 많은 것이 원인이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더 높아지고 있다. 지방의 경우도 우는 곳과 웃는 곳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인구의 이동이 자주 목격된다.
우리가 처한 제반 여건을 보면 단기적으로 좋아지기 보다는 나빠질 공산이 더 크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갈수록 증폭된다. 정치는 난장판이고, 경제는 이제 1% 대 성장도 지켜내지 못할 정도로 성장 동력이 가라앉고 있다. 특히 남북 대치 상황에서 안보에 대한 공포가 커지면 한국을 떠나려는 심리적 압박을 급상승시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랏빚이 늘어나면서 미래 세대의 부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미래 세대들이 반격의 시동을 걸었다. 자칫 세대 간의 전쟁으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꼰대 세력들의 내로남불에다 온갖 비리·편법·불법의 진면목이 드러나면서 이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이렇듯 국가나 지방에 닥친 위기가 막중한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처하는 국가의 어젠다를 보면 이게 과연 제대로 나라인지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분노가 차고 넘치고 온기는 보이지 않는다. 있는 자들은 한국을 포기하고 밖으로 도피하려고 한다. 기업들은 한국에서 더 이상 생존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미래 세대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고 마침내 죽창을 꺼내들었다. 이성(理性)을 회복하지 않으면 이상한 나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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